19.06.01(토)
아침부터 할 일이 잔뜩이었다. 소윤이 머리도 감겨야 하고, 애들 옷도 갈아입혀야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다 아내가 했다.(재활용 쓰레기는 버리지 못했고)
"여보. 일어나. 이제 여보만 준비하면 돼"
집에 밥이 없었지만 오늘은 (내) 엄마, 아빠 집에서 자기로 해서 밥을 하지 않았다. 부모교육 들으러 가는 길에 빵집에 들러 빵을 좀 사서 먹였다.
아내의 친한 친구 결혼식도 있었다. 부모교육 시간이랑 겹치는 바람에 아내와 소윤이만 가기로 했다. 나랑 시윤이만 남고. 과연 시윤이가 엄마를 잘 보내줄지 걱정이었다. 요즘 하도 엄마를 찾아서. 어제도 아내가 시윤이한테 얘기했더니
"싫어여어. 아빠한테 안 가여어어"
라고 했다던데. 시간이 됐고, 아내는 시윤이에게 이별을 고했다.
"시윤아. 엄마는 누나랑 갈게. 이따 할아버지 집에서 만나자?"
"아니야아아. 엄마랑 가치. 가치"
"시윤아. 엄마랑 이따 만나는 거야. 아빠랑 잘 있어?"
"시러여어어어. 엄마 가치. 가치"
아내와 소윤이는 떠났고 시윤이는 매우 서럽게 울었다.
"으아아아앙. 엉엉엉엉. 엄마아아아아앙. 가치이이이이이"
"시윤아. 엄마가 가서 서러웠어?"
"네에에에에에에에에에.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래. 그래. 아빠한테 기대서 울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아앙"
"알았어. 알았어. 괜찮아. 괜찮아"
의외로 금방 그쳤다. 역시 사람은 마음을 알아줘야 하는구나.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10시부터 한 4시까지. 부모교육을 듣는 동안 시윤이는 수시로 고집을 부리고 악을 썼고, 그걸 다스리느라 진을 다 뺐다. 나중에는 애써 외면했다.
'그래, 제발 울고 짜증만 내지 말아라'
막판에는 시윤이를 안을 때마다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격훈련 마지막 날, 스쿼트 마지막 세트 때 느껴지는 피로감이었다.
"아이고오오. 주여어어"
자기도 지쳤는지 나한테 안겨 있다가 낮잠도 잤다.
시윤이만 있어도 이 정도인데, 여기에 소윤이까지 더해져서 둘이 싸우고 뺏고 그러기까지 하면. 아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다시 한번 아내의 일상에 박수를.
빨리 아내를 만나고 싶었다. 아내는 결혼식을 마치고 소윤이와 함께 먼저 (내) 엄마, 아빠 집에 가 있었다. 시윤이랑 나도 부모교육을 끝내고 그리로 갔다. 아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시윤이를 아빠에게 넘겨주며 속으로 생각했다.
'잘 가라 이 녀석아. 아빠의 육아는 이제 끝이다'
아내랑 나는 영화를 예매해 놨다. 무려 [기생충]. 아내가 어제 영화를 예매하며 얘기했다.
"여보. 우리 내일은 좀 일찍 나가자. 애들 진작에 맡기고"
"그래"
저녁 먹으러 나가면서 엄마한테 얘기했다.
"엄마. 우리 영화 보러 간다고 가영이가 얘기했어요?"
"아니? 영화 보러 가게?"
"네"
"몇 시인데?"
"10시였나? 좀 일찍 나가려고요"
"그래. 일찍 나가"
저녁 먹는데 소윤이도 거들었다.
"엄마, 아빠 오늘도 나갔다 와여"
"안 그래도 엄마, 아빠 영화 보러 간대"
소윤이 할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아내가 이어 물었다.
"소윤아. 아까 소윤이가 엄마한테 뭐라고 했지?"
"뭐가여?"
"엄마, 아빠한테 왜 나가라고 하는 거라고 했지?"
"아. 엄마, 아빠가 나랑 시윤이 보느라 힘드니까 가서 좀 쉬라구여. 엄마, 아빠도 안 쉬고 계속 우리만 보면 아플지도 모르니까"
정말 딸은 딸이다. 소윤이는 말할 때의 표정이나 몸짓 같은 걸로 어느 정도 진심인지가 나타나는데, 이건 농도가 짙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었고.
저녁 먹고 잠시 집에 앉아 있다가 나왔다. 나오기 전에 아내가 소윤이를 따로 방에 데리고 가서 여러 유의사항(?)을 주지시켰다. 다른 건 아니고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만 가면 고삐가 풀려 정신을 못 차리는(군것질이라던가, TV라던가) 걸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먹어도 되지만 조금만 먹고, 봐도 되지만 조금만 보고. 소윤이 스스로 절제하라고 알려줬다. 소윤이는 똑똑한 앵무새처럼 아내의 정신교육 내용을 따라 읊었다.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굳이 권하지만 않아도. 아니면 조금만 막아주셔도 훨씬 더 나을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게 안 되시는 것 같다. 차라리 소윤이의 절제력을 기르는 게 빠를 것 같다.
시윤이는 아내를 붙잡으며
"엄마. 가지마여어. 나랑 가치이"
이러길래 되물었다.
"그럼, 시윤이 엄마, 아빠랑 같이 갈까? 할머니, 할아버지랑 빠이빠이하고?"
"아니여어. 하부지한테"
라면서 쫄랑쫄랑 할아버지한테 가서 안겼다.
영화 시작 두 시간 전쯤에 나왔다. 신림역 어딘가의 카페를 찾아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아늑하고, 커피도 괜찮고. 함께 시킨 디저트도 괜찮고. 아내랑 사진을 찍었는데 역시나 늙게 나왔다. 아니지, 늙었다.
"여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보면 늙은 커플로 볼까? 아니면 부부로 볼까?"
"그건 맨날 왜 물어봐?"
"그냥. 애가 둘이나 있는 거 알까?"
젊음에 집착하는 걸 보니, 늙은 게 확실하다. 또 좀 신기했던 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애들 생각이 그리 많이 나지 않았다는 거다. 아내도 비슷해 보였다. 오히려 '벌써 영화가 끝났다니. 이제 돌아가야 한다니'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둘 다 곤히 자고 있었다. 시윤이 이 녀석은 신기한 게, 자고 있을 때 내가 손이나 발을 만지면 어떻게 알고는 이리 빼고 저리 뺀다. 아내가 잡으면 그렇지 않다. 가만히 있는다.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아닌데. 내 손과 아내 손을 딱딱 구별해서 내 손만 거절한다. 내가 오늘 지 때문에 고생한 게 얼만데.
오늘도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서. 난 그들의 발밑에서 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