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유를 위한 사전작업

19.06.03(월)

by 어깨아빠

오늘도 낮에 장모님이 오셨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평일 낮에 오시는 부모님들이 가장 큰 힘이 된다.(맞나?)


"내일 반찬 해야 되는 거 엄마한테 좀 해달라고 하려고"

"아주 오늘 나가서 부담 없이 놀려고 기를 쓰는구만"

"맞아. 크크크크크크"


처치홈스쿨 시작한 뒤로 아내에게는 월요일 자유의 시간이 항상 부담이었다. 놀긴 놀아야 되는데 다음 날 준비도 해야 하니까. 반찬이며, 수업이며, 활동이며. 내일도 돼지불고기를 해가야 하는데, 그걸 장모님께 맡긴 거다. 조리 행위는 물론이요, 재료 준비며 비용까지.


퇴근했을 때 애들은 놀이터에 있었다.


"어? 소윤아, 아빠 오셨네"


소윤이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 슬픈 것도 아니고. 똥 마려운 거 참는 것처럼 불편한 모양이랄까.


"소윤이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아빠가 오면 이제 할머니 가셔야 되니까 그런가 봐요"


그렇구나. 오늘도 아빠가 악역이었구나. 그래도 오늘은 소윤이가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아내가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 놀이터에서 마저 놀기로 했다.


"소윤아. 그럼 엄마 나오면 할머니하고 엄마한테 인사하고 들어가는 거다?"

"네, 아빠"


아내가 다시 나왔고 장모님과 아내는 차에 탔다. 소윤이는 약속한 대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 할머니. 잘 가여. 엄마, 이따 내 옆에 누워여?"

"그래, 소윤아. 아빠 말 잘 듣고"


시윤이는 아내를 놓아주지 못하고 매달렸다. 차 문에 바싹 붙어서는


"엄마. 가지마여어. 엄마. 안 돼여어어어"


를 반복했다.


"시윤아. 아빠랑 누나랑 집에 들어가서 얼른 밥 먹을까? 맘마?"

"아빠. 맘마 먹어여어. 맘마"


어이없게도 밥 먹자는 말에 쉽게 돌아섰다. 아내와 장모님이 떠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시윤이가 또 엄마를 찾으며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엄마는 이미 갔고, 이따 돌아와서 옆에 눕는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시윤아. 자꾸 고집부리고 떼쓰면 또 맴매 맞을까요?"

"아빠. 아니여어"


시윤이는 바로 짜증을 그치고 걸음을 뗐다. 며칠 전 처음 경험한 엉덩이 맴매가 아프긴 했나 보다. 누나도 경험하지 못한 걸 먼저 겪었다. 집에 들어가서는 씻고 나서 옷을 안 갈아입겠다고 버텼다. 밖에서 놀고 온 거라 더럽고 병균이 많으니 갈아입어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아까와 똑같았다.


"시윤이 또 아빠한테 떼쓰는 거예요? 아빠 말 잘 들을 수 있게 맴매로 도와줄까요?"

"아빠. 아니여어어. 아빠. 서서. 서서"


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훈육할 때 항상 똑바로 서라고 하는데, 보통 자기 고집을 부릴 때는 그걸 안 한다. 울음을 그치고, 몸에 힘을 빼고 바로 서면 그게 이제 아빠의 말을 듣겠다는 표현인 거다. 그러니까 방금 저 상황에서도 "서서" 라고 얘기한 건, 태세를 전환했다는 뜻이다.


아내가 말한 대로 한살림에서 산 즉석밥을 데워서, 한살림에서 산 주먹밥 가루를 섞어 주먹밥을 만들어줬다.


"소윤아. 아빠한테 기쁜 소식이 두 개 있는데, 말해줄까, 말까"

"말해줘여"

"아니다. 됐다"

"아아. 아빠 말해줘여"

"일단 첫 번째는 뭐냐면, 저기 달력 봐봐. 6일이 무슨 색으로 칠해져 있지?"

"빨간색이여"

"왜 빨간색인지 알아?"

"몰라여"

"그날이 쉬는 날이거든. 그래서 아빠도 회사를 안 가"

"으잉? 그럼 우리랑 계속 같이 있어여?"

"그렇지.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소식은 뭐냐면"

"네"

"그다음 날이 며칠이지?"

"7일이여"

"응. 금요일인데 아빠는 그날도 회사를 안 가. 대신 소윤이랑 시윤이는 처치홈스쿨을 가야 하잖아. 그래서 아침에 아빠가 데려다줄 수 있어"


6일 건은 눈에 띄게 좋아했는데, 7일 건은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생각해도 별로 좋을 게 없다. 아빠가 계속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 데려다주는 건 큰 유익이 없다고 느껴질 테니.


"에이. 소윤이가 별로 안 좋아하네. 그냥 회사 가야겠다"

"아니에여. 아빠. 좋아여"


소윤이도 시윤이도 일찍 누웠는데, 금방 잠들었다.


부담 없이 놀겠다며 장모님께 다 떠넘긴 아내는, 고작 한다는 게 폴바셋 라떼 먹는 거였다. 그것도 폴바셋은 일찍 문 닫으니까 같은 건물에 있는 메가박스의 빈 테이블에 앉아서.


자유를 누리고 돌아온 아내와 거실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방에서 소윤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아. 아빠아"

"어. 소윤아. 왜?"

"엄마는여?"

"엄마? 아직 안 오셨는데?"

"오셨잖아여. 목소리가 들렸는데"

"아니야. 아직 안 오셨어. 소윤이가 꿈꾼 거 아니야?"

"아빠. 그럼 엄마 이따 오면 내 옆에 누우라고 하세여?"

"그래. 알았어. 잘 자"


안방 베란다 문, 거실 베란다 문이 모두 열려 있어서 거실의 소리가 그대로 방에 전달됐을 텐데 너무 방심했다. 작은방으로 피신했던 아내가 다시 거실에 나오자마자 안방 문이 덜컥 열렸다.


"어. 소윤아. 엄마 방금 왔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아빠. 제가 아까 엄마 온 거 어떻게 알았냐면여"

"엄마 지금 막 오셨는데?"

"아니잖아여. 다 알아여"


소윤이를 너무 얕잡아 봤다. 자면 안 되는 이유는 없었다. 아내는 그저 본능적으로 몸을 숨긴 거다. 어차피 잘 생각이었는데도 말이다. 맹수를 만난 초식동물처럼 일단 숨고 본 거다.


발각(?) 되었으니 다 함께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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