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갇힌 자유

19.06.04(화)

by 어깨아빠


반찬도 어제 다 해놨고, 아침에 크게 바쁘지 않을 것 같아서 아내를 깨우지 않았다. 출근하다가 한 8시쯤 되면 전화해서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7시 20분쯤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지금 지하철"

"왜 안 깨웠어?"

"아침에 별로 안 바쁠 거 같아서"

"좀 더 자라고?"

"응"

"소윤이가 깨웠어. 일어나서 떠들길래 '아빠 주무시잖아' 그랬더니 '아빠 없는데여?' 이러더라고"

"애들이 협조를 안 했구만. 아침에 안 바쁘지?"

"응. 그냥 나갈 준비만 하면 돼"


처치홈스쿨 끝나고는 아내의 아는 동생 집에 놀러 갔다. 아내랑 아이들만. 진작부터 약속이 되어 있던 건데 아침에 나올 때는 깜빡 잊는 바람에 아무것도 챙겨 오지 못했다. 안 그랬으면 나도 합정이나 홍대 어딘가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내를 기다렸을 텐데. (집으로 가는 건 1시간 30분이 걸리고, 합정으로 가면 30-40분이라 그게 더 편하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동네로 왔다.


집에 가기 전에 헬스장에 들러서 운동을 했다. 집에 들러서 노트북과 책을 챙겨서 다시 나올까 하다가 관뒀다. 왠지 느낌에 카페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내에게 연락이 올 것 같았다. 시간상으로 둘 다, 혹은 시윤이라도 잠들 시간이라 나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되기도 하고.(물론 아예 없으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있는데 없는 듯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제주도에 오분자기가 있다면, 삼송의 우리 집에는 오분대기조가 있지. 아니나 다를까 아주 애매한(카페에 들어갔으면) 시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우리는 이제 출발하려고"

"얼마나 걸리지?"

"한 30분?"

"알았어"

"아마 2호는 자지 않을까?"

"그런가?"

"도착할 때쯤 전화할게"

"그래"


자유로워도 육아에 갇힌 이 현실.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무던했다. 이게 내 숙명이려니. (아내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아내는 무지 피곤해 보였다. 시윤이는 잠들었고. 소윤이는 쌩쌩했고.


"여보. 힘들었어?"

"그냥 힘들다"

"애들은 잘 있었어?"

"어. 엄청 잘 놀았지. 소윤이는 혜민이가 너무 좋대"

"엄청 잘해줬구나"

"어. 군것질도 엄청 많이 하고. 둘 다 기분 좋게 잘 놀았어"

"여보는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

"그러게. 피곤하긴 하다"


애들이 아무리 잘 놀고, 기분이 좋았다고 해도 육아는 육아니까. 새벽 댓바람부터 달 밝은 밤까지 두 녀석을 데리고 굵직한 일정을 두 개나 소화하면 안 피곤한 게 이상하지.


안타깝게도 시윤이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여성분과 남성분의 대화 소리에 깼다.


"여보. 내가 시윤이랑 먼저 들어갈 테니까 여보는 소윤이 씻기고 옷 좀 갈아입혀줘요"

"알았어"


소윤이는 기분이 무지 좋았다. 과흥분 상태일 때는 방방 뛰고 흥을 내뿜느라 말을 안 들을 때도 많은데 오늘은 아니었다. 할 건 다 하고, 들을 건 다 들으면서도 자기 흥을 발산했다. 모두에게 유익한 흥분 상태랄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내에게 넘겼다.


"소윤아, 시윤아. 잘 자"


아내는 나오지 못했다. 그럴 것 같았다. 나도 자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뭔가 아주 쾌적한 것이 기분이 좋다. 요즘이 그런 계절이다. 적당히 창문 열어 놓고 자면 자연 바람만으로도 최적의 기온과 습도가 유지되는. 이럴 때 방심하다 감기 걸리기 딱 좋다. 안 그래도 소윤이가 침 삼킬 때 목이 아프다고 했다. 이마도 짚어보고 손, 발도 만져보고. 다행히 적당히 따뜻하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아내의 이마도 짚어봤다고 지어내려다가, 아무리 봐도 너무 작위적인 것 같아서 관뒀다. 여보, 그래도 잘 때마저 애들 틈에 뒤섞여 자고 있는 여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언제나 어떤 [respect]이 우러나. 이건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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