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시작은 키즈카페로부터

18.09.21(금)

by 어깨아빠

올레 올레 할렐루야. 소윤이 시윤이가 무려 9시까지 잤다. 이런 휴일 아침스러운 아침이 얼마만인가. 연휴의 출발이 좋구나. 출근하지 않는 아빠를 벼르고 벼르던 소윤이는 알차게 나를 활용했다. 아내가 시윤이를 데리고 목장 집사님에게 시윤이 한복을 빌리러 갔다 오는 동안 책을 열댓 권은 읽은 것 같다. 아내는 한복을 빌리러 갔다 오면서 카톡을 하나 보냈다.


[홍루이젠 사 감]


홍루이젠은 아내가 꽂혀 있는 샌드위치 가게의 이름이다. (유명한 브랜드인가? 실제 현지 이름인가?) 데자뷔 같은 이 느낌. 아내는 며칠 전에도


[이삭 토스트 사감]


이렇게 카톡을 보냈던 것 같은데. 소윤이를 잠시 혼자 놀게 하고 아침 준비를 했다. 밥은 아내가 나가기 전에 시윤이 몰래 불을 올려놨다. 고기만 구워 주기에는 뭔가 부족해서 어제 씻은 깍두기를 잘 먹던 소윤이를 위해 김치를 씻어서 볶아주려고 했다. 그냥 김치만 볶아주면 안 먹을지 모르니 스팸을 조금 잘라서 같이 볶아줬다. 소윤이는 스팸만 먼저 골라 먹었다. 역시 애들 반찬에 스팸 사용은 자제해야겠다.


시윤이는 여전히 엄마 껌딱지 모드다. 잘 놀다가도 앉혀서 밥 먹이려고 하면 엄마를 찾는다. 내가 기도하자고 하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다가 엄마가 와서 앉으면 바로 두 손을 모으고. 다시 내가 앉아서 먹여 주려고 하면 세상 서럽고 슬픈 표정으로 울며 아내에게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대신 오늘은 소윤이의 애정을 받았다.


"아빠가 내 옆에 앉았으면 좋겠어"


소윤이의 애정 표현은 그게 언제든 황홀하다. 쉴 틈 없는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쯤 키즈카페에 갔다. 아내가 주변 엄마들에게 수집한 정보에 따라 관산동에 있는, 처음 가보는 곳으로 갔다. 문 여는 시간이 언제인지 확인은 안 했지만 아마 우리가 도착하기 조금 전에 영업을 시작한 것 같았다. 주인 부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개시 손님 서비스였는지 원래 기본 두 시간인데 세 시간을 놀 수 있도록 해주셨다. 서비스도 좋고 넓고 한적해서 좋기는 한데 뭔가 기분이 안 났다. 애들도 좀 북적거리고 시끌시끌해야 흥이 오를 텐데 너무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소윤이는 이곳저곳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잘 놀았다. 시윤이는 처음에 신나서 활동을 시작했다가 쏟아지는 졸음 때문인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어 번 바닥에 꼬꾸라져서 크게 오열했다. 그중 한 번은 왼쪽 얼굴이 정통으로 바닥에 떨어져서 벌겋게 부어오르기도 했다. 시윤이 얼굴이 수난시대다.


오랜만에 키즈카페에 갔더니 또 소윤이가 얼마나 컸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전에는 못 하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혹은 연장자)에게 먼저 가서 몇 살이냐고 호구 조사도 하고. 한 시간 추가 서비스는 누리지 못하고 퇴장했다. 일단 시윤이가 너무 졸렸고 소윤이도 1시간 30분쯤 넘어가니 슬슬 싫증이 나는지 별로 재밌어 보이지 않았다.


아내 특유의 맛집 검색 신공으로 찾아낸 어느 허름한 국숫집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일단 시윤이는 태우자마자 실신했고 소윤이는 쌩쌩했다. 이번 주 아내가 소윤이와 낮잠 씨름으로 몇 번 고생한 이후로 아내와 의논 끝에 소윤이 낮잠은 따로 재우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소윤이가 정말 잠이 안 오는 것 같았다. 또 예전처럼 낮잠 안 잤다고 엄청 짜증 내거나 막무가내가 되지 않고 낮잠 안 잔 날의 저녁 시간도 견딜만하니 굳이 낮잠 재우는데 힘쓰고 정신 쓰지 않기로 했다.


아주 허름하고 옛 점포스러운 국숫집이었는데 맛은 대박이었다. 국수도 맛있고 녹두전도 기가 막히고. 이렇게 내 기억에 '맛있는 식당', '대박 맛집' 으로 강렬히 남은 곳은 맛도 맛이지만 상황이 한몫 한 곳이 많다. 오늘처럼. 우리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깨지 않은 시윤이가 오늘의 MVP였다.


"시윤이도 밥 먹여야 하는데"


아내와 나는 공허한 말을 주고받았다. 밥은 먹여야 하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깨울 생각은 좁쌀만큼도 없었다.


"시윤이는 일어나면 뭐 먹이지?"


글쎄, 대책 없었다.


'뭐라도 사 먹이면 되지'


국수 먹고 나서는 아내가 몇 번 가본 인스타에서 핫 하다는 디저트 카페로 갔다. 가는 길이나 카페 근처에 조그마한 분식집이라도 있으면 주먹밥 같은 거 사서 먹이려고 그랬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아내가 편의점에 들러서 뭐든 사 온다고 갔다. 아내는 불고기 컵밥을 사 왔다. 시윤이한테 많이 미안하긴 했다. 그렇게 맛있는 국수와 녹두전은 어디 가고 불고기 컵밥이라니. 카페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밥을 먹였다. 이름은 불고기인데 불에 다 타고 사라져서 불고기인지 고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고기뿐만 아니라 다른 건더기, 야채도 마찬가지였다. 더 미안하라고 그러는 건지 시윤이는 그 와중에 엄청 잘 먹었다. 컵밥 한 그릇을 싹싹 비웠다. 용무를 마친 시윤이는 활동을 시작했고 소윤이는 덩달아 돌아다녔다. 이때 약간 한계에 도달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두 녀석과 함께한 데다가 부지런히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몸과 마음의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 순간에 말리고, 막고, 못하게 해야 할 게 많은 카페에 앉아 소윤이, 시윤이랑 씨름하고. 무척이나 뺀질거리며 말도 듣지 않는 소윤이를 상대하려니 점점 이성이 마비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역시 통제할 일이 많아지면 급속도로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된다. 다행히 폭발 직전에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여보, 난 운동 좀 하고 올게"


아내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 사이 아내는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갔다. 소윤이는 좀 다듬으러 갔고 시윤이는 글쎄. 얘 머리도 자르는 행위가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빈약한 머리카락이었지만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좀 다를까 싶어서 일단 맡겨보기로 했다. 헬스 끝났을 무렵 애들 머리도 다 잘랐다고 연락이 왔다. 한살림에서 만났다. 소윤이는 끝을 좀 자르고 고데기로 살짝 웨이브를 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도 파마를 시켜주고 싶었다. 시윤이도 나름 자르고 다듬으니 훨씬 깔끔해졌다. 물론 아내와 내가 보기에만 그럴지도 모르고 남들이 보면


"얘는 머리 한 번 민 거예요?"


라고 물을 만큼 여전히 빈약한 머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아내는 시윤이 머리가 엄청 깔끔해졌다며 대만족을 했다. 집에 돌아와 잠깐 시간을 보내다 난 교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일단 소윤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고 시윤이도 그리 과하게 자지 않았으니 아내 홀로 맞는 밤 시간의 육아가 금방 끝나지 않을까 싶었다. 아내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는 훨씬 늦게 탈출에 성공했다. 늦게 눕기도 한 데다가 시윤이가 안 자고 버틴 덕분이었다.


아내는 어질러진 집과 쌓여있는 설거지, 빨래를 해야 한다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입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볼 때마다 뭔가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이기는 했는데 그만큼 많이 쉬기도 했다. 아내 특유의 스타일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먹고 일하기. 빨래 개다 말고 갑자기 일어나서 식탁에 놓인 빵 먹다가 그 주변에 있는 것들 정리하고 정리하다 말고 또 갑자기 귤 까먹고 그러다 또 갑자기 책 정리하고. 그래도 결과는 나보다 늘 낫다. 더 깨끗이 더 보기 좋게 집이 정리된다.


아내도 나도 하루 종일 육아에 매진하느라 힘들고 피곤하다고 얘기하면서도 뭉그적 뭉그적거리다. 세 시쯤 누웠다. 눈 뜨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 집(나의 엄마 아빠 집)으로 가기로 했다. 다음 날 육아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졸리면 자면 되고 힘들면 쉬면 되니까. 애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맡겨질 테니까. 한가위답게 육아의 손길이 풍성하구나. 에헤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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