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06(목)
오늘부터 주일까지, 웬만한 명절 못지않은 연휴가 생겼다.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 가고 싶었지만 내일 쉬는 게 엊그저께 갑자기 결정되기도 했고, 아내와 아이들은 내일 처치홈스쿨에 가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아침에 데려다주고 나면 오후 5시까지 혼자만의 시간이 생길 예정이니, 바로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약속을 잡아놨다.
"여보. 내일 처치홈스쿨 취소될 것 같아"
"진짜? 왜?"
"아, 내일 비가 많이 온다고 그러니까 운전 위험할까 봐. 아마 1일 방학할 거 같아"
"아, 그래? 아쉽다. 그럼 어디라도 놀러 가면 좋은데"
"여보. 자유시간 없어져서 아쉬운 거 아냐?"
"응. 전혀 아니야"
정말 아쉽지는 않았다. 뭐랄까, 아무 감흥이 없었다. 금요일의 자유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상황에 관해. 오히려 당장이라도 어디 놀러 갈 곳이 없을까 고민하느라 머리를 부지런히 굴렸지만 마땅치 않았다. 또 내일 비도 많이 온다고 하고.
"여보. 어디 놀러 가면 좋은데"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아내와 잠시 덧없는 여행 고민을 하다가 접었다. 오늘 어디로 나갈지 정하는 게 더 급했다.
"여보. 오늘은 어디 가지?"
"그러게. 여보가 어제 어디 어디 말했지?"
"행주산성? 서울 식물원?"
"행주산성공원 갈까?"
"그래. 거기도 가깝고, 애들 놀기 좋대"
아침부터 하늘이 잿빛인 게 영 별로였고, 오후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어서 나들이 분위기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집에 있어 봐야 뭐 하겠나. 나갔다가 비 오면 돌아오면 되고, 잿빛이어도 비 안 오면 그걸로 또 감사하면 되지.
아침에 늦장 부리는 바람에(물론 아이들은 부지런했지만) 아침 식사가 늦었다. 시윤이는 오늘도 밥 먹다 말고 느닷없이(뭐,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겠지만 별로 납득하기 어려운) 고집을 부리고 떼를 썼다. 소윤이는 간만에 또 세월아 네월아였고. 위기의 아침이었지만 행복하고 평온한 하루, 그리고 연휴를 위해 잘 넘겼다.
행주산성공원은 전혀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단 사람이 별로 없고, 집에서 가깝고. 장소의 특성상 중년의 감성이 물씬 풍기고 실제로 40-50대 아줌마, 아저씨들도 많았지만 괜찮았다. 나도 머잖아 중년이 될 텐데 뭐. 우리 같은 가족 단위도 많았다. 넓은 잔디밭도 있고, 눈앞에는 한강도 훤히 보이고. 햇볕이 하나도 없는 날씨가 가장 큰 흠이었다.
자리를 잡은 뒤 매트를 폈다. 소윤이는 바로 킥보드를 탔다. 안타깝게도 시윤이의 킥보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시윤이는 자기도 타고 싶다며 눈물의 호소를 했다. 원하는 이는 둘인데 물건은 하나일 때, 이걸 누구도 마음 상하지 않게 적절히 조율하는 게 제일 피곤하고 힘들다. '니가 누나면 동생한테 양보하고 그래야지', '어디 동생이 누나한테 대들어. 누나가 그만할 때까지 기다려' 이러면 참 편할 텐데. 편한 길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다.
아내와 나, 소윤이는 행주산성 주차장에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시윤이는 자고 있어서 그때는 못 먹고, 자리를 펴고 앉았을 때 아내가 좀 먹였다. 사실 자리를 펴고 난 뒤 잠깐 엎드렸는데 졸음이 쏟아졌다.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한 10여 분을 잤을까. 아내가 흔들어 깨웠다.
"여보. 빗방울 떨어진다"
"진짜? 이런. 금방 그치지 않을까?"
"그러다 계속 오면 어떻게 해. 그냥 얼른 정리하자"
"그래"
행주산성공원 나들이는 그렇게 마무리했다.
행주산성에 막 자리 잡았을 때 아내 친구(가족)한테 연락이 왔었다. 스타필드에 가는 길인데 혹시나 해서 연락했다며, 시간 되면 만나지 않겠냐고. 각자 일정(행주산성, 스타필드)을 소화한 뒤 다시 연락하기로 했었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급히 일정이 취소된 우리가 먼저 연락을 했다. 거기도 우리와 비슷했다. 생각보다 끝없이 늘어선 차의 행렬에 스타필드를 포기하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이라고 했다. 일단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소윤아. 도하 오빠네 만날 거야"
"왜여?"
"어, 그냥. 이모가 스타필드 근처에 있다고 해서"
"와, 신난다"
우리가 먼저 카페에 도착했다. 금방 온다던 아내 친구네는 길을 헤매는 바람에 꽤 한참 걸렸다.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다. 나는. 저번에 반나절 캠핑 같이했던 가족인데 아내는 친구니까 뭐 당연하고, 친구 남편 하고도 같은 교회에 다녀서 오빠, 동생 하는 사이다. 난 서먹서먹. 대신 애들이 서로 좋아하니까. 애 아빠들이 다 그렇게 얼굴 트는 거지 뭐.
카페에 좀 앉아 있다가 키즈카페에 갔다. 소윤이, 시윤이는 몇 개월 만에 가는 거였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잘 안 간다. 거의 안 간다. 아니, 이제 아예 선택지에서 지워졌다고 보는 게 맞겠다.
"소윤아. 우리 키즈카페 갈 거야"
"우와, 신난다. 어디로 갈 거에여?"
"글쎄. 아마 우리 동네에 있는 곳?"
"신난다. 도하 오빠랑 같이 가니까 좋다"
애는 총 네 명(6살, 5살, 3살, 3살)이었다. 6살, 5살(소윤)이 같이 놀았고, 3살 둘은 각자 따로 놀았다. 시윤이는 가자마자 차를 하나 집어타더니 내려오지 않았다. 뭔가 다른 거 하러 갈 때는 꼭 내가 앉아있는 의자 뒤에다 차를 댔다.
"아빠아. 여기 지찌(주차) 해여?"
"그래"
키즈카페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가면 애들 풀어놓고 신경 안 쓰게 되는 게 싫어서다.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좀 편하고 좋긴 하더라. 애들도 큰 문제없이 잘 놀았고.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소윤이가 뚱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뚱한데 독기가 없었다. 이건 뭔가 슬프거나 상심한 일이 있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소윤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저기 언니들이 나한테 계속 안 예쁘다고 해서여"
"응? 어떤 언니들이?"
"저기에 있는 언니 두 명이"
"소윤이한테 안 예쁘다고 했다고?"
"네. 난 그냥 놀고 있었는데 나한테 계속 안 예쁘다고 그러면서 놀렸어여"
"그랬어? 그래서 기분이 상했어?"
"네"
"그랬구나. 소윤아, 그런데 소윤이는 안 예쁘지 않아. 소윤이 예뻐. 그건 그 언니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한 말이니까 크게 신경 안 써도 돼. 다음에도 또 그러면 그냥 그 언니들 피해서 놀거나 아빠한테 와서 또 얘기하면 돼. 소윤이가 얼마나 예쁜데. 그런 말 신경 안 써도 돼"
"알았어여. 아빠"
소윤이는 곧바로 흥을 채우고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일행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소윤이도 뭐 그깟 말 몇 마디로 마음이 다칠만한 아이도 아니고. 다만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당황은 했을 거다. 집에 가서 자기 전에 '예쁨'의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조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슬쩍슬쩍 살펴보니 소윤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즐겁게 잘 놀고 있었다.
이번에는 시윤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트램플린에서 방방 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아이가 시윤이를 확 밀었다. 마침 내가 딱 보고 있을 때. 멀리서도 시윤이의 벙찐 표정이 보였다. '애가 좀 못됐네' 생각하면서 보고 있었다. 2차 가해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시윤이가 계단(쿠션 빵빵하고, 4칸짜리. 별로 안 위험한)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아까 그 여자아이가 다시 시윤이를 밀었다. 계단은 안전한데 시윤이가 구르는 자세가 꽤 위험해 보였다. 놀라서 뛰어갔고, 곁에 있던 어떤 아저씨도 놀라서 시윤이를 잡아주셨다. 시윤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바로 안았다.
"어, 시윤아, 괜찮아. 괜찮아. 많이 아팠어?"
"으아아아아아앙"
"시윤이 놀랐어?"
"네에에에에에. 으아아아아아앙"
여자아이는 소윤이 또래 정도 돼 보였다. 여자아이의 손목을 아프지는 않게, 그렇지만 자기 힘으로 뺄 수도 없게, 그리고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지게 잡았다. 그리고 얘기했다.
"엄마, 아빠는 어디 계셔?"
"어. 아빠는 안 오셨고 엄마는 저기 계세요"
"동생 그렇게 밀면 안 되는 거예요. 알았지요?"
"네에"
"동생 그렇게 밀면 안 돼요. 알았어요?"
"네에"
"동생 밀고 때리면 절대 안 돼요. 알았어요?"
"네에"
입술은 다정했지만 눈빛은 차가웠을 거다. 여자아이도 매우 순한 태도로 대답했다.
"시윤아. 괜찮아. 누나가 이제 안 그럴 거래"
시윤이는 조금 더 나에게 안겨 있다가 안정을 되찾고 다시 뛰쳐나갔다.
내가 보지 못한 사이, 소윤이와 시윤이도 이런 악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라는 문장이 확신과 신뢰를 가지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오늘의 두 사건으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너무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끼리'만' 모이면 악행이 창조된다는 걸 확인한 하루였다) 세상에서 지켜내는 것도 어렵고, 세상이 되지 않도록 구별해내는 것도 어렵고, 세상을 바꾸게 하는 건 더 어렵겠지.
한 시간 반쯤 신나게 놀고 나왔다. 저녁도 함께 먹었다. 어른 넷, 애 넷. 중국 음식점에 예약을 했는데, 사람이 많아서 단독 방을 잡는 게 가능했다. 애들이, 특히 세 살 막내들이 식사에 열중하느라 얌전하기도 했고 좀 소란을 떨어도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훨씬 신경을 덜 썼다.
"정신없긴 해도 다른 사람들 없으니까 훨씬 낫긴 하다"
모두 공감했다.
저녁 식사를 끝으로 아내 친구네와 헤어졌다. 애들도 금방 잠들었고. 어쩌다 보니 굉장히 바쁘고 고된 하루를 보냈다. 첫날부터 너무 달린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매우 피곤했지만 아내와 나는 환희에 취했다.
"여보. 오늘 꼭 토요일 같아"
"그러니까. 나도 그래. 그런데 아직도 목요일이라니"
"좋다"
휴일이라고 해 봐야 어차피 아이들과 지지고 볶겠지만, 아내야 내가 거드니까 좋고. 난 왜 좋지? 아무튼 좋다. 그냥 쉬는 건 뭐든 좋다.
기쁨의 순간을 누리기 위해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다운로드했다. 제주도에서 '남극의 쉐프' 보다가 둘 다 깊은 졸음에 빠졌던 걸 기억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잔잔하고 차분한 감동으로 높은 평점을 받은 영화는 오히려 독이었다. 평이 좀 안 좋아도 졸 틈 없는 그런 걸로 골랐다. 다행히 둘 다 끝까지 완주했다.
"여보. 내일은 또 뭐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