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파마

19.06.07(금)

by 어깨아빠

"다 같이 머리나 하러 갈까?"

"소윤이 파마도 해주고?"


아침 먹다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오래전부터 소윤이 파마는 고려했고, 어제 구체화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미용실에 전화해 보니 마침 시간도 비어 있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동네가 아닌 운정에 있는 미용실이었다.


"소윤아. 우리 미용실 가자"

"저 파마도 하구여?"

"응"


"아빠. 나두 나두. 가치 가치"

"그래. 시윤이도 시간 되면 머리 자르고"


소윤이 차례가 오기까지 한참 기다렸다. 아파트 상가 1층에 있는 곳이고, 출입이 자유로운(?) 구조라 그나마 버티기가 용이했다. 기다리며 아내와 소윤이의 머리를 어떤 스타일로 할지 의논했다.


"소윤아. 머리 어떻게 하고 싶어?"

"저는 엄청 뽀글뽀글한 게 좋아여"

"어. 그래"


그 뒤로는 소윤이한테 굳이 묻지 않았다. '히피펌'이라고 불리는 스타일을 골랐다. 소윤이 차례가 되어 파마를 시작한 후로도 엄청 한참 걸렸다. 아내가 소윤이와 함께 있었고 난 시윤이를 맡았다.


"아빠. 가여. 가여. 나가여"


좀 앉아서 쉬려고 하면 가만두지 않고 계속 밖으로 나가자고 보챘다.


"우와. 아빠. 저거 뭐지여?"

"저거? 새다. 새"

"째?"

"응. 새. 인사해"

"안넝"


"아빠. 째. 째"

"어. 그러게 새가 또 왔네"


"우와. 아빠 삐쁘차(구급차, 소방차, 경찰차 등)"

"오. 삐뽀차네. 인사해"

"안넝"


"아빠. 이거 뭐지여?"

"음, 그건 솔방울이야"

"응?"

"솔방울. 해 봐"

"으브울"

"그래. 솔방울. 인사해"

"안넝"


여전히 시윤이에게는 새롭고 놀랄만한 것들이 많은가 보다. 내 머리 할 때는 아무리 오래 걸려도 별로 안 지겨웠는데, 딸 머리 하는 거 기다리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소윤아. 안 힘들어?"

"네. 재밌어여"


소윤이는 정말 하나도 힘들거나 지루한 기색이 없었다. 시윤이와 나는 끝내 지쳐 한계에 다다랐을 때도 소윤이는 멀쩡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소윤이의 파마가 끝났다.


"우와. 소윤아, 잘 어울린다"

"아빠. 예쁘져?"

"응. 예뻐"


숱하게 남자아이로 오해를 받을 만큼 머리카락이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커서 미용실도 즐기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괜히 또 부쩍 큰 느낌이었다.


시윤이도 머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소윤이가 거의 3시간을 쓴 반면, 시윤이는 5분 만에 끝났다. 5분이긴 해도 대변화를 이뤄냈다. 깔끔함과 함께 꺼벙함도 얻었다. 근처 닭국수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머리 하는 거 말고는 별다른 계획 없이 왔기 때문에 밥 먹으면서 다음 일정을 의논했다.


"여보. 어디 가지?"

"음, 그러게"

"운정건강공원이나 갈까? 킥보드도 타고"

"그럴까?"


아침 먹고 있을 때 택배 아저씨가 커다란 상자를 하나 두고 가셨다. 킥보드였다. 이것도 사연이 많은데. 소윤이는 어린이날 선물로 주니어 카시트를 받았다. 시윤이는 뭘 사줄까 고민하다가 요즘 맨날 킥보드 쟁탈전을 벌이는 게 생각나서 킥보드를 사주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소윤이 타던 킥보드가 이제 많이 작아서 올해가 지나면 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둘 다 새 걸 사 줄 수는 없으니 소윤이가 타던 걸 시윤이에게 주고 소윤이 킥보드를 새로 샀다. 시윤이의 어린이날 선물인데 소윤이가 혜택을 입은 거다.


"소윤아. 이거 킥보드 탈 때마다 시윤이한테 감사해야 돼"

"왜여?"

"왜냐하면 이거 원래 시윤이 어린이날 선물로 사주려고 했던 건데, 그럼 소윤이 지금 타는 건 버리고 소윤이 것도 새로 사야 하니까 소윤이 타던 걸 시윤이 준 거야. 시윤이도 새 거 타고 싶을 텐데 그러지 못했잖아. 소윤이가 항상 새 걸 갖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 알았지? 우리 가족의 형편이랑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소윤이가 새 걸 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건 시윤이한테 고마워해야 해. 알았지?"

"네"


이런 연유로 얻게 된 새 킥보드를 얼른 타고 싶어서 소윤이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운정건강공원에 가서 각자 킥보드를 내어줬다. 둘 다 신나게 트랙을 돌았다. 비가 온다더니 날씨도 아주 화창했다. 거기서 놀다가 처가댁에서 애들을 씻겨가지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장인어른, 장모님은 목포에 내려가셔서 계시지 않았다)


"여보. 우리 그냥 파주에서 자고 갈까?"

"진짜? 왜?"

"아니, 애들 씻겨서 집에 가면 늦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자 그럼"


주인 없는 집에서의 1박이 결정됐다.


"소윤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자고 갈까?"

"할머니, 할아버지 없잖아여?"

"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자도 되긴 해. 싫어?"

"아니여. 좋아여"


즐거웠지만 피로도 상승에 한몫한 공원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처가댁으로 향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라 앞, 뒤로 문을 열어 놓으니 선선한 바람이 들이쳤다. 나도 모르게 거실 바닥에 팔을 베고 엎드렸다. 점점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희미해지고 눈이 감겼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잤다.


"헐. 여보 나 얼마나 잤어?"

"한 시간 반?"

"깨우지"

"너무 잘 자서 그냥 뒀어. 좀 자라고"

"달콤하긴 했어. 진짜 잘 잤다"

"피로 좀 풀렸어?"

"어. 완전"


방에 들어가서 잔 것도 아니고 거실 한복판에서,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을 그대로 느끼며 잤는데도 엄청 달았다.


원래 오늘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에 갔으면 낮에 친구를 만나려고 했다. 친구는 내가 금요일에 시간 생겼다고 했더니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자기 처형네 집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러다 처치홈스쿨이 쉬게 됐고, 친구에게도 이를 알렸다. 친구는 예정대로 처형네 집에 갔다. 만남은 다음으로 미뤘는데 친구가 자기도 파주에 왔다며 연락이 왔다.(친구 처가댁도 파주다)


"여보. 원민이도 파주라네"

"진짜? 만나고 와"

"아니야. 뭘 만나. 여보랑 같이 있어야지. 초밥 먹기로 했잖아"

"괜찮아. 다음에 먹으면 되지. 만나고 와"

"나중에 만나면 돼"

"만나고 와. 연락해 봐"

"그럴까 그럼?"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애들을 재울 무렵 아내는 배고픔을 호소했다. 원래 같이 초밥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마음이 영 불편했다. 아내는 자기 혼자 뭐라도 먹겠다며 애들을 재우러 방에 들어갔다. 시윤이는 오늘 낮잠을 재우지 않았다. 소윤이야 당연하고. 아내는 금방 끝내고 나왔다.


"여보. 나 갔다 와서 같이 먹으면 안 돼?"

"몇 시에 오는데?"

"한 10시에서 11시?"

"그래? 나 배고픈데"

"그렇지?"

"그래. 그럼 갔다 와서 같이 먹자"

"내가 갔다 오는 길에 사 올 게. 내가 찾아본데 한번 봐 봐. 어떤지"

"알았어"


아내를 혼자 두고 떠나는 불편함은 현관문을 나서기 전까지 만이다. 막상 친구를 만나 플스 패드를 쥐는 순간, 프로 게이머가 된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내가 배달 앱에서 시켜 놓을 게]


다행히 생각보다 일찍 게임이 끝났다. 게임 끝나고 밥도 먹고, 차도 한잔하고 그런 거 없다. 게임하려고 만난 거다. 친구는 이제 한 6-7개월 된 아이 아빠라 나보다 더 탈육아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아내는 엄마, 아빠 없는 엄마, 아빠 집에서 남편도 없이 홀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함께 초밥을 먹으며 영화를 봤다. 커다란 TV로. 맨날 노트북으로만 보다 보니 우리에게는 TV도 멀티플렉스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소파에 앉아 TV를 봤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지만, 사실 난 TV 광이다. 휴대폰은 없어도 리모컨은 있어야 사는 남자였다.


"여보. 너무 좋다. 나 너무 행복해. 우리도 TV 사야겠다"

"그치? 이런 게 진짜 행복이지"


물론 TV 살 리도, TV가 진정한 행복일 리도 없었지만. 아내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방에 들어갔다. 난 그 뒤로도 한참이나 더 TV를 보다가 새벽 네 시에 들어갔다. 사실 더 볼 수 있었는데 내일을 위해 참았다. 자려고 누워서 생각했다.


'TV 안 두길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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