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끝내고 싶어

19.06.08(토)

by 어깨아빠

소윤이랑 시윤이가 먼저 일어나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잘 놀다가, 또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우리 집보다 좀 넓어서 그런가 한 번 방에서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까지(잠에 취한 아내와 나를 깨우기까지) 오래 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아침은 그냥 빵 같은 사서 먹을까?"

"그럴까?"


냉장고에 마땅한 반찬거리도, 재료도 없었다. 마침 근처 빵집이 아침부터 문을 연다길래 거기로 갔다. 주말의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날은 아주 화창하고. 아내, 나, 소윤이, 시윤이 모두 부스스한 꼴과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여보. 꼭 여행 온 거 같아"

"그러게. 여행 와서 아침 먹으러 가는 거 같네. 저 너머에 바닷가가 있어야 되는데"


우리 집, 우리 동네가 아니라는 약간의 어색함이 어우러져 정말 여행 느낌이 났다. 시윤이를 한식파라고 여겼던 게 무색할 만큼, 빵을 잘 먹었다. 소윤이는 느리게 조금씩, 시윤이는 빠르게 와구와구.


다시 장모님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는 아내가 혼자 다했다. 난 자잘한 것들 몇 개만 정리했다.


"여보. 꼭 체크아웃 하기 전에 청소하는 느낌이야. 숙소 같아"


마침 골든스테이트워리어스와 토론토랩터스의 NBA Championship 4차전을 하길래 그거 좀 보려고 했더니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TV 켜면 어떻게 해여. 그럼 우리도 보고 싶잖아여"

"지금은 아빠가 보는 시간이야"

"왜여?"

"그냥. 아빠도 보고 싶으니까. 너네는 어제 뽀로로 봤잖아"

"그럼 아빠도 20분만 봐여?"

"아니. 아빠는 아빠 마음대로"

"왜여?"

"아빠니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괜히 눈치 보여서 중간에 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TV를 사지 않은 건 아내와 나의 결혼사(앞으로도)에서 최고의 결정이 될 거다.


점심 무렵 나왔다. 역시나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상태로. 일단 시윤이는 잠들었다. 그냥 집에 가기는 아쉽고 마땅히 갈 데는 없고. 출판단지에 갈까, 그냥 동네로 갈까, 아울렛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일산호수공원을 최종 목적지로 택했다. 일단 날씨가 맑고 화창해서 어디든 밖에 있고 싶었다. 킥보드를 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소윤이의 의견도 반영됐다.


"소윤아. 아빠랑 자전거 타 볼래?"

"자전거여? 어떻게여?"

"저거 봐 봐. 저렇게 아빠 뒤에"

"좋아여"


뒷자리에 카시트처럼 시트를 거는 게 있었고, 뒷바퀴에 매달려서 끌려오는 왜건 같은 것도 있었다. 소윤이는 시트에 앉는 걸 골랐다. 소윤이는 잔뜩 기대했다. 이래 놓고 막상 출발하면 무섭다며 그만 타겠다고 할지도 모르니 일단 짧게 한 바퀴 돌아봤다.


"소윤아. 어때?"

"아빠. 재밌어여. 또 돌자여"


소윤이는 즐거워했다. 한 바퀴 돌고 다시 아내와 시윤이가 있는 곳에 가니 마침 시윤이가 깼다. 다시 출발하는 누나와 아빠를 보더니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두. 나두. 아치. 아치(같이)"


한 번 더 돌고 와서 소윤이는 내려주고 시윤이를 태웠다. 시윤이도 잘 탔다.


"시윤아. 어때?"

"응?"

"재밌어?"

"네에"

"또 탈 거야?"

"네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윤이는 그걸로 끝이었다. 킥보드 타는 데 더 열심이었다. 덕분에 소윤이는 남은 시간, 홀로 자전거를 독점했다. 소윤이를 뒤에 태우고 1시간 30분 동안 열심히 페달질을 했다. 평지라 뭐 엄청 힘들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고되긴 했다. 그래도 소윤이가 너무 좋아했다. 숲길로 들어서니 바람도 선선하고. 소윤이랑 얘기도 많이 하고.


"소윤아. 좋다. 그치?"

"아빠. 우리 다음에 오면 저것(왜건)도 타 보자여"

"그래. 저건 시윤이도 같이 탈 수 있겠다"

"그럼 아빠 너무 힘들잖아여?"

"아, 괜찮아. 그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

"아빠 축구 열심히 해서 다리 튼튼하니까?"

"어, 맞아"


소윤아, 아빠 축구 더 열심히 할 게. 그 외에도 아주 시답지 않은 일상의 대화를 참 많이 나눴다. 그야말로 수다 다운 수다.


자전거를 반납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페스타의 어느 즉석 떡볶이 가게에서 떡볶이를 포장했다. 아내가 즉석 떡볶이가 먹고 싶다며 찾아낸 집이었다.


"애들 재우고 먹자"

"그래"


집에 가서 바로 저녁 먹고 재우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다. 마침 소윤이도 놀이터에 가고 싶다길래 그러기로 했다. 이때쯤에는 다 떨어져 가는 링거액처럼 마지막 남은 진력을 똑똑똑똑 짜내고 있는 느낌이었다. 놀이터에서는 짧게 놀고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산 뒤 집에 돌아왔다.


"하아. 여보. 빨리 끝내고 싶다"

"뭘?"

"육아를"

"여보. 내일 축구 갔다 와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됐어. 너무 멀어. 갔다 오면 10시 넘을걸"

"갔다 와. 어차피 평소에도 거의 애들 재울 때 오잖아"

"그래도. 여보 혼자 너무 힘들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어..."

"갔다 올 게"


안 그래도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내일 축구하러 가고 싶다'. 하필 내일 의정부에서 다른 팀이랑 경기한다길래 안 가려고 했었는데, 꽉꽉 채운 3일의 육아를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애들 저녁 반찬으로 돼지고기를 좀 샀는데, 굽다 보니 누린내가 심하게 났다. 내가 돼지고기 냄새를 맡을 정도면 정말 심한 건데. 할인하는 걸 샀더니 이런 결과가. 뭔가 너무 찜찜하고 애들한테도 미안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기라고 또 엄청 잘 먹고. 원래 애들 먹이는 건 웬만하면 날짜 지나서 할인하는 거 안 사는데, 오늘은 왜 그랬지. 아마 너무 지쳐서 아내도 나도 판단력이 흐려졌나 보다. 그냥 빨리 끝내고 싶다는 일념에 사로잡혔나.


드디어 모든 과업이 종료되고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얘들아. 잘 자. 빠이빠이. 내일 만나자. 즐거웠어"


아내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일단 떡볶이 재료를 냉장고에 넣으려고 봉지를 열었는데, 참혹한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담아준 양념이 샜는지 여기저기 시뻘건 고추장이 묻어 있었다.


'하아'


이걸 포장한 점원 혹은 주인을 향한 원망의 마음과 짜증이 내면을 휘감으려고 했다.


'아니다. 그래 봐야 나만 손해다'


그래도 아예 양념을 버려야 하는 건 아니었다. 잘 모아서 수습하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 만약에 아예 양념을 쓸 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여보. 이제 거의 잠든 듯. 조리 시작]


아내의 신호에 따라 불을 올렸다. 곧이어 아내가 나왔고, 조촐한 만찬을 시작했다.


"여보. 고생했어"

"여보도"


소윤이랑 자전거 탔던 게 계속 생각이 난다.


"아빠. 아빠 자전거 운전 되게 잘한다여"

"아빠 저는 아빠가 운전하니까 하나도 안 무서워여"

"아빠. 나중에도 저랑 이거 또 타자여?"


나중에는 한강같이 좀 긴 코스가 있는 곳에서 타 봐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