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육아의 부작용

19.06.12(수)

by 어깨아빠

웬일로 애들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나도 늦게 일어났다. 아내가 차를 쓰는 날은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해서 알람을 맞춘다. 다른 날은 굳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아주 성가신 움직이는 알람 두 개(?)가 요란법석을 떤다. 오늘은 그 알람 두 개가 고장이 났는지 근무태만이었다. 덕분에 아빠도 지각. 누누이 말하지만 기왕이면 주말이나 휴일에 그래 줬으면 한다.


오전에 한 번 통화한 이후로는 퇴근할 때까지 연락이 없었다. 중간에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걸 한 번 언급할까 하다가 알고 있겠지 싶어서 관뒀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뭐 해?"

"나는 스타필드야"

"누구랑?"

"엄마랑"

"아. 그럼 나 거기로 갈까?"

"응. 여기로 와요"

"그래, 알았어"

"여보 그런데 오늘 엄마랑 아빠가 오빠네 집에 가보 신대"

"그냥 한 번 보러?"

"응. 집도 좀 치우고 할 겸. 그런데 엄마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시려나?"

"글쎄. 여쭤봐"

"여보는 괜찮아?"

"나? 괜찮지. 그런데 오늘 수요일이야"

"여보. 알아. 알아. 내가 그걸 까먹을까 봐"


혹시나 모르고 있을까 봐 그랬지 여보.


스타필드에 갔더니 장모님과 아내는 애들 옷 고르는데 열심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날 발견하고는 우다다다다 달려왔다. 그렇게 달려오면 뭐 엄청 오래 난리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금방 자기들 할 거(멋대로 돌아다니기) 하거나, 할머니나 엄마한테 간다. 다만 소윤이는 오늘 유독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시윤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는데, 그 여파로 매우 피곤하다가 결국 엄마만 찾는 징징이가 되었다.


소윤이가 목마르다고 해서 정수기가 있는 곳을 찾아갔는데 유아휴게실 겸 수유실이었다.


"소윤아. 여기는 진짜 아가들이 오는 곳이야. 우리는 앞으로 밖에 있는 정수기에서 마시자. 알았지?"

"아빠. 그럼 여기는 나중에 우리 셋째 낳으면 오는 거에여?"


그냥 아무 때나 오자. 그게 좋겠어.


아내는 원흥에 있는 돈까스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내가 반려했다.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서. 그냥 스타필드 안에서 해결했다. 피자랑 쌀국수, 김밥을 시켰는데 소윤이도 시윤이도 먹는 게 영 시원찮았다. 소윤이는 밥 먹기 전에 단 걸 많이 먹어서 입맛이 떨어졌고, 시윤이는 졸려서 만사 귀찮음이었다.


장인어른도 우리 집으로 오셨다가 장모님과 함께 형님(아내 오빠)네로 가신다고 하셨다.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과 함께 집으로 가는데 시윤이는 끊임없이 잠들려고 했다. 장모님의 노력으로 간신히 잠드는 건 막았다.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이제 갈 게"

"아빠? 빵. 이께?(뻥 공 차러 가여?)"

"어, 맞아. 아빠 축구하고 올 게"


엘리베이터에서 장인어른과 마주쳤다. 장모님, 장인어른이 계시긴 해도 오늘은 약간 불안했다. 아내의 몸짓, 말짓에서 '오늘은 기필코 빨리 재우리라'라는 의지가 느껴졌다. 의지대로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어쨌든 장인어른, 장모님이 계시면 애들이 단 10분이라도 더 놀아야 하니까. 아내의 바람과 현실이 어긋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랄까.


축구 끝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 집을 올려다보니 불이 켜져 있었다. 잠들지는 않았다는 거다. 집에 들어섰더니 아내가 날 보며 검지를 세워 입술에 갖다 댔다.


"쉿"

"왜?"

"방금 깼어"

"누구?"

"소윤이"


안방에 들어간 아내가 바로 나왔다.


"왜?"

"아, 일단 그냥 혼자 자라고 얘기하긴 했는데, 모르겠네"


다행히 소윤이는 다시 나오거나 깨지 않았다.


아내는 오늘 낮과 저녁의 일을 전하며 반성과 자책을 겸했다. 아내는 어제 육아 종료와 동시에 본인의 하루도 끝나버렸고, 곧바로 오늘 아침이 되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육아 - 육아 퇴근 - 나만의 시간 - 취침 - 육아 출근]


이게 가장 바람직한 순환 구조인데


[육아 - 육아 퇴근 - 취침 - 육아 출근]


이 된 거다. '나만의 시간' 증발로 인한 '육아 연속'의 느낌이 극대화되었다는 말이다. 쉼표 없는 초고음의 연속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그 탓에 아내는 다정함을 잃었다.


낮에 시윤이 재울 때, 40분을 넘도록 자지 않고 자꾸 장난치고 촐랑대니까 결국 아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원인 제공자인 시윤이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혹은 모르는 척) 신났는데, 소윤이만 슬펐다.


"엄마. 문 열어여. 왜 닫아여"

"엄마 지금 좀 쉬어야겠어. 조금만 쉬고 나갈 테니까 너희끼리 놀던지 가서 눕던지 해"

"엄마. 문 열어여"

"엄마 좀 혼자 있어야 한다니까"


결국 소윤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이후로 계속 잔잔한 징징거림을 동반했다. 아내도 괜히 소윤이한테 쌀쌀맞게 굴고, 잔소리도 많이 했고. 사실 소윤이 잘못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다. 좀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왔더니 소윤이게 스윽 옆에 와서는 이렇게 물었단다.


"엄마, 이제 화 좀 풀렸어여?"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괜히 미안해진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손을 잡고 회개 기도를 했다. 다정하지 못한 것, 짜증 낸 것, 따뜻하지 못한 것 등등. 회개는 진심이었지만 밤의 피로는 별개였다.


밤에 잘 때는 낮의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데다가(몸과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바람과는 다르게 늦어진 취침시간 때문에 또 날카로워졌다. 역시 소윤이한테 괜히 차갑게 말하고. 얼른 자라고 재촉하고.


하루 종일 시윤이한테 뺨 맞고 소윤이한테 가서 화풀이 한 격이었다.


"아, 소윤이한테 미안하네"

"괜찮아. 우리 소윤이가 뒤끝은 없는 것 같아.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잘 매듭만 지어지면 그걸로 마음에 담아두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아"

"그렇겠지?"


자주 마음이 상하긴 해도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 부모라고 꼭 정확하게 보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괜찮을 거다. 이 정도쯤이야 뭐.


소윤이도 알 거야. 여보의 고군분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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