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13(목)
아내는 낮에 장모님과 장모님의 아주 친한 친구이면서 아내를 딸처럼 대해주시는 아주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 타고 가면 금방이니까”
어제 아내가 얼핏 저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못 들은척했다. “어, 맞아. 금방이지”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아니야. 여보가 차 써”라고 말하기에는 대중교통이 너무 귀찮고 힘드니까. 꿋꿋하게 차 키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여보, 미안.
소윤이랑 시윤이는 간만에 멀리까지 나가는 대중교통 나들이에 잔뜩 신이 났다.
"엄마, 뻐쯔 왜 암 와여?"
"엄마, 뻐쯔 왜 안 타여?"
시윤이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유모차에 태우자 잠들었다. 소윤이는 할머니들과 먼저 식당에 가 있었고, 아내는 시윤이 재우느라 따로 있었다. 장모님에게 식당이 너무 붐비니 그냥 따로 편하게 먹으라는 전갈을 받은 아내는, 잠든 시윤이를 유모차에 태워 곁에 놓고 1인 샤브샤브를 먹었다. 아주 평화롭게. 우아하게.
"여보, 그때 정말 행복했어"
퇴근할 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러 갔다. 아내의 손에는 짐이 한가득이었는데, 할머니들의 선물 폭격이었다. 대부분 옷이었다. 시윤이 옷은 남자아이 옷이라 그런지 할머니들이 골라도 제법 귀엽고 그럴싸한 게 많은데, 소윤이 옷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도 소윤이가 어렸을 때는 도무지 입힐 수 없어서 택도 떼지 못한 채 보관되던 것들도 많았는데, 이제 소윤이가 좀 커서 그런가 원색의, 형형색색의, 화려한 무늬를 가진 옷들도 그럭저럭 입힐만하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소윤이의 성장을. 아내와 나의 무뎌진 검열 기준을. 오늘 산 옷들도 집에 와서 입혀봤더니 그냥 볼 때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소윤이도 어찌나 마음에 들어 하는지, 빨리 빨아서 입고 나갈 거라며 난리였다. 존중한다. 너의 취향, 그리고 할머니의 취향. 시윤이 옷은 애초에 괜찮기도 하고, 누나에 비하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티셔츠 한 장이라도 생기면 감지덕지다.
아내는 내일 처치홈스쿨 반찬 담당인데, 소불고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애들 저녁 먹여서 재우는 동안 내가 좀 해놓을까도 생각했는데, 비싼 재료 망칠까 봐 나서지 않았다. 돼지고기였으면 몰라도. 소윤이는 아빠랑 놀 시간이 너무 없었다면서 아빠랑 더 놀다 자면 안 되냐고 요청했으나, 완곡히 거절했다.
"소윤아. 대신 할머니랑 한참 놀았잖아. 너무 늦고 엄마도 얼른 반찬 하셔야 된대"
"아빠가 재워주세여"
"그럴까? 진짜 아빠가 재워줄까?"
"아니여. 엄마가"
"뭐야. 아빠가 재워줄 수 있는데?"
"오늘은 엄마가여"
나랑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차마 엄마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운동 갔다 왔더니 아내는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었다.
"여보. 뭐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이제 다했어"
요리에 열중하던 아내가 잠시 후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여보. 망했어"
"왜?"
"너무 짠 거 같아?"
"그래? 물을 좀 더 넣으면 안 되나?"
"모르겠어. 물엿을 좀 더 넣으면 되려나?"
아내는 고기를 조금 볶아서 먹어 보라며 갖다 줬다.
"어때?"
"음. 조금 짠 거 같기도 하고. 짜다기보다는 간장 향이 강하달까"
"어떻게 하지?"
"저거 당면도 넣는 거야?"
"어 내일 볶을 때 넣으려고"
"그럼 훨씬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럼 좋겠다"
"괜찮아. 맛있긴 해. 많이 짜지도 않고"
그냥 나 먹으라고 저녁 반찬 해줬으면 "우와, 엄청 맛있다. 밥이랑 먹기 딱 좋은데" 하고 먹었을 테지만, 공적인 자리(?)에 내놓을 음식이니 조금은 더 정확히 평가를 했다. 물론 매우 조심스럽게. 매사에 이런 배려심과 조심스러움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긴, 그랬으면 내가 션이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