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17(월)
뒤척이다 눈을 떴더니 시윤이가 홀로 앉아 있었다. 나랑 눈을 마주치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아빠. 나가여"
하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그러고 나서 보니 소윤이도 이미 깨 있었다.
"소윤이도 이리 와. 뽀뽀"
그래도 아직 뽀뽀에 인색하지는 않다. 둘 다. 물론 소윤이는 나랑 뽀뽀하고 나면 벅벅 입을 닦아대긴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낮에 잠깐 카페에 다녀온 것 말고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평온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반대로 아주 사소한 순간순간의 육아까지 감당해야 하는 날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후자일 경우 가랑비에 옷 젖듯,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유발한다. 애 둘이랑 하루 종일 지내는 데 어찌 특별한 일이 없겠는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내는 내일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자유시간을 내일로 미루겠다고 했다.
"여보. 내일 수정이 만나기로 했어?"
"어, 예정대로 올라온대"
"그래. 그럼 오늘은 내가 좀 나갔다 올 게"
"아, 그럴래? 아예 집에 안 들르고?"
"아니. 집에 들러서 노트북 챙기고. 애들도 잠깐 보고"
"그래, 그럼"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이나 축구를 하는 데다가 시간으로 따지면 쥐꼬리만큼 육아에 함께할 때도 많아서 나갔다 온다는 표현 자체가 좀 민망하다. 또 예전만큼 그런 욕구(?)도 없어졌다. 다 축구로 풀고 있다.
퇴근해서 집에 갔더니 또 다른 아내의 친구가 와 있었다. 뭐 줄 게 있어서 들렀다가 저녁까지 먹고 가게 됐다고 했다. 시윤이랑 나이가 같은 아들이 있었는데 시윤이랑 둘이 친해질랑 말랑하는 단계였다. 소윤이는 짧은 반바지에, 끈나시를 입고 머리는 똥머리로 묶어 올린 채 각종 음식(군것질)을 탐닉하고 있었다. 과일, 쿠키 등. 썩 달가운 모습은 아니지만 요즘은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니.
짐을 챙겨서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뜬금없이 시윤이가 매달렸다.
"아빠아. 가 암 돼(가면 안 돼)"
"시윤아. 아빠 가야 돼"
"안 돼에에. 아빠가 가 암 돼"
"왜? 아빠 안 갔으면 좋겠어?"
"네에"
"그래도 아빠 가야 되는데"
"아아아아. 암 돼. 가 암 돼"
아내가 개입했다.
"그럼 시윤이 아빠랑 갈래?"
"네"
"진짜?"
"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그래. 그럼 아빠랑 가"
"네"
정말 따라나설 기세였다.
"시윤이 그럼 엄마랑 못 자는 거야. 알지? 아빠랑 나갔다 와서 아빠랑 자"
"아아아아잉"
"그럼 아빠 나가시라고 하고 엄마랑 놀다 잘까?"
"네"
시윤이는 다시 아내의 품으로 돌아갔다. 뭐지. 시윤이는 나한테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그에 비해 소윤이는 아내와 아내 친구에게 속삭였다.
"전 아빠 나가는 거 좋아여"
"엥? 왜?"
"그럼 아빠가 못 하게 하는 거 할 수 있잖아여"
내가 못 하게 하는 건 엄마도 못 하게 할 텐데. 진심일까? 아니겠지? 아, 거 은근히 신경 쓰이네.
아내에게는 9시가 거의 다 됐을 때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애들 이제 재웠어?"
"아니. 이제 재우려고 누웠어. 흑흑흑"
"많이 늦었네?"
정말 매일매일이 치열한 육아구나. 그로부터 한 40-50분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한층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어, 여보. 이줴 놔왔눼"
"잠들었어?"
"몰롸. 그뤈가 봐. 아, 할 거 뫊은뒈"
"화이팅"
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갔는데도 아내는 여전히 내일 처치홈스쿨에 가지고 갈 반찬과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는 505호 사모님과 거의 두 시간 통화했다는 것도 말해줬다. 난 아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참 전화 통화를 길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우리 아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아내는 정말 해야만 하는 일(반찬, 간식 등)만 하고 나서는 뻗어 버렸다.
"여보,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이제 더는 못하겠다"
"그래, 내일 하면 되지"
대신해 줄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팔자 좋게 대답해주는 게 아내에게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까 얘기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