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될 수 없는 자의 애환

19.06.19(수)

by 어깨아빠

아내는 이번 주에 쉴 틈이 없다. 일주일 내내 약속이 있다. 오늘은 대학 친구들을 만난다고 했다. 아내 말고는 전부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홀몸으로 나오는 거라, 아내는 늘 아쉬워한다. 본인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아쉽고, 친구들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 같아서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그냥 바쁘게 살 때는 모르고 지나가도 이럴 때 한 번씩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자유롭게 애들 맡기고 놀러 다니는데 난 아직 모유 수유 중이라 밤이고 낮이고 붙어 있어야만 할 때. 다들 어린이집이다 유치원이다 보내고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는데 1분 1초가 멀다 하고 분노와 후회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때. 그래도 아내는 이제 엄마 연차, 그것도 전업 엄마, All day-No 분리 엄마 연차가 좀 쌓여서 그런가 제법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뭐, 어쩌겠어. 데리고 가면 되지 뭐"


아, 은근히 철인 다운 면모가 있단 말이지.


그나마 오늘은 약간의 자유가 허용될 뻔했는데 무산됐다.(결과적으로는 약간의 자유를 누렸다) (내) 엄마가 낮에 오시기로 했다. 엄마는 아내에게 애초부터 애들 맡기고 자유롭게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소윤이가 거부(?)했다.


"소윤아, 내일 신림동 할머니 오신다는데 시윤이하고 할머니랑 있을래?"

"나, 현정이 이모도 좀 보고 싶은데"

"할머니는 안 보고 싶고?"

"아니, 할머니도 보고 싶은데 현정이 이모 만나는 것도 좀 기대되는데"


아내와 친구들은 스타필드에서 만나기로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다. 엄마도 아내의 모임이 끝날 시간 즈음에 맞춰 스타필드로 가겠다고 했다.


퇴근할 무렵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이제 헤어졌어?"

"응. 지금 어머님이랑 같이 있어"

"애들은 계속 데리고 있었어?"

"아니, 점심 먹고 어머님한테 1시쯤에 둘 다 맡겼어"

"몇 시까지 친구들하고 있었는데?"

"세 시까지"

"오, 그래도 나름 자유를 누렸군"

"응. 좋았지. 어머님이 여기서 저녁 먹고 가자고 하시네. 여보도 여기로 와"

"알았어"


아내의 친구들은 아내가 (내) 엄마에게 애들 둘 맡기는 걸 보더니 깜짝 놀랐다고 했다. 자기는 놀면서 시어머니한테 애를 맡기는 게 놀라웠는지, 시어머니 혼자 애 둘을 보는 게 놀라웠는지, 어느 지점에서 놀랐다는 건지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시윤이는 오늘도 [똥 싸지르고 뒤처리 거부하기]로 (내) 엄마를 힘들게 했다. 저번에는 장인어른에게 고역을 선사하더니. 퇴근하고 스타필드에 가서 만났을 때도 잔뜩 찡그린 얼굴로 아내에게 안겨 있었다. 아내는 지친 얼굴로 시윤이를 내게 넘겼으나 내게 안기자마자 엄마한테 갈 거라며 징징거렸다.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다시 넘겨주고 소윤이를 안았다.


"아빠, 목마. 목마. 목마 태워주세여"

"그래"


누나가 목마 탄 걸 보자 그제서야


"아빠. 나두. 나두"


하며 나에게 팔을 뻗었다. 오라고 할 때는 안 오더니.


소윤이가 탕수육을 먹고 싶다고 해서 집 근처 중국 식당에 갔다. 역시나 소윤이는 기복 없는 마라토너처럼 오래 앉아서 자기 몫을 먹었다. 거기에 오늘은 내내 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시윤이는 요즘 무엇 때문인지 식사가 영 지지부진하다. 반찬은 안 먹고 밥만 먹는다거나, 조금 먹고 만다거나. 오늘도 탕수육 몇 개 집어먹더니 그만 먹겠다며 자기 앞접시를 멀찌감치 밀어뒀다.


"그래, 그럼 먹지 마"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아내도 나도 애들이 밥 거르는 것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깨작거리면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계속 먹겠다고 하는' 태도에 더 분노한다. 아내와 나는 언제든 그릇을 거둘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자기 그릇을 거둬가면 '식사 끝'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리에서도 벗어나려고 하는 게 문제다. 물론 이것도 시간과 힘을 들여 가르치면 바뀌긴 하겠지만, 밥 먹을 때까지도 진을 빼고 싶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오늘은 아내가 먼저 식사를 마치고 시윤이를 데리고 나갔다.


"아빠, 우리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다 가자여?"

"그래, 알았어"


아내는 시어머니를 들이기에는 집 상태가 너무 처참하다며 잠시라도 정비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아내가 열심히 집을 위장하는 동안 엄마와 나는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놀이터에 있었다. 시윤이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고 했더니


"안 가여어어어어. 안 가여어어어"


하면서 빽빽 악을 썼다.


"시윤아. 집에 가는 거 아니야. 놀이터 가자고"

"네에? 왜여어?"


이 자식이.


"소윤아, 우리 조금만 놀고 들어가자"

"왜여?"

"그래야 집에 들어가서도 할머니랑 좀 더 놀 수 있잖아"


응, 사실은 아빠 축구하러 가야 돼.


그래도 원래는 10분만 놀기로 했는데, 20분이나 놀았다. 이것도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내의 위장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주기 위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발 하나라도 더 정리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 다 못 치웠네"

"뭘 치워. 그냥 괜찮다니까"


엄마의 말은 100% 진심이었겠지만, 아내에게는 그래도 시어머니니까.


난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아빠. 어디 가여엉?"

"시윤아, 아빠 어디 가는 것 같아?"

"아빠. 빵 이케?"

"어, 아빠 축구하러 가"


"소윤아, 시윤아 아빠 갈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축구 끝나고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방금 잠에서 깬 목소리였다.


"어. 여보"

"잠들었어?"

"어, 그런가 봐"


엄마는 아내와 아이들이 눕는 것까지 보고 가셨고, 아내와 아이들은 아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든 듯했다.


엄마가 와서 도움이 된 건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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