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21(금)
아내는 어제 자기 전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내일도 처치홈스쿨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교사모임 하느라 처치홈스쿨 한 느낌인데, 이틀 연속으로 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처치홈스쿨이야 당연히 좋아서 하는 거고, 가면 좋지만. 아침 일찍부터 시간에 맞춰 준비를 해야 하고, 가서도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여야 하니 몸과 마음의 힘을 적잖이 써야 한다. 좋긴 좋은데 힘들고, 좋긴 좋은데 부담도 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오늘도 일어나며 아내를 깨웠다. 웬일인지 애들은 깨지 않았다. 퇴근할 때쯤 아내와 다시 연락이 됐다.
"여보. 어디야?"
"아직 사무실이지. 이제 퇴근하려고"
"아, 그래? 그럼 오늘 아빠가 일찍 퇴근하셨다는데 같이 저녁 먹을까?"
"그럴래?"
"어, 그럼 여보도 아빠 차 타고 오면 되잖아"
"그래"
내심 '언제 집에 가나' 싶었는데 덕분에 편하게 집에 왔다. 집에 잠시 들렀다가 밥 먹으러 나왔다.
시윤이의 할아버지 사랑이 너무 짧게 끝나서 아쉽다. 한때 엄마도 제쳐두고 뭐든 할아버지만 찾곤 했는데, 다시 본연(?)의 모습을 찾았다. 오히려 요즘은 어떤 순간이든 일단 엄마만 찾아서 문제다. 밥도 엄마, 똥도 엄마, 옷도 엄마, 잠도 엄마. 그래도 자기 아쉬운 순간(안기고 싶을 때처럼 엄마는 못 한다는 걸 아는 경우)에는 여전히 할아버지를 찾는다.
오늘도 나가기 전에 똥을 쌌길래 닦아준다고 했더니 무조건 엄마만 찾았다. (고맙게도) 시윤아, 니 덕분에 아빠의 가운데 손가락을 순결히 지켰구나. 고맙다.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소윤이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아빠. 아빠도 아빠의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응? 신림동 할머니, 할아버지?"
"네"
"어, 보고 싶지"
"왜여?"
"아빠의 엄마, 아빠니까.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봤어?"
"아, 여기 신림동 할머니, 할아버지만 없어서여. 갑자기 생각이 났어여"
왜 신림동 할머니, 할아버지는 안 오셨냐고 물어보지 않고, 아빠도 엄마, 아빠가 보고 싶냐고 물어보다니. 소윤이가 예상을 뛰어넘는 사고와 언변으로 놀라움을 선사한다면, 시윤이는 요즘 부지런히 엄마, 아빠의 말을 복사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처치홈스쿨 다녀와서 잠시 쉬는 동안 자그마한 견과류 한 봉지를 먹었는데, 시윤이가 갑자기 마지막 남은 크랜베리 여러 개를 한꺼번에 집더니 입에 털어 넣었단다.
"시윤아, 왜 이렇게 급하게 먹어. 천천히 먹어야지"
"엄마. 바빠저여(바빠서여). 바빠여"
아내가 하도 바쁘다는 말을 자주 하니까 듣고 배웠나 보다. 요새는 아내가 뭐만 좀 하고 있으면 와
"엄마. 바빠여?"
이렇게 묻는단다. 시윤아, 엄마가 바쁘다고 하는 게 빈말은 아니야. 너도 나중에 니 아내한테 물어봐라. 애 둘 키우는 게 어디 한가로운 일인지.
난 교회에 가야 해서 밥 먹고 다시 집에 들러 차를 가지고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 장인어른은 카페에 좀 있다가 들어가기로 해서 나도 잠깐 앉았다가 나왔다.
"아빠. 어디 가여?"
"아빠? 교회 가지. 오늘 금요일이잖아"
"나도 같이 갈래여"
"그럴래? 소윤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소윤이 오늘 낮잠도 잤으니까 괜찮아. 같이 가고 싶으면 가자"
"그럼 다음 주에 같이 갈래여.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랑 놀이터도 가야 되니까여"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나. 흔쾌히 같이 가자고 했더니 오히려 당황했다. 물론 혹시라도 따라가겠다고 했으면 정말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금요일에는 낮잠을 자서 어차피 일찍 안 자니까 차라리 교회에 데리고 가면 아내는 그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빠른 퇴근은 고사하고, 엄청 늦은 퇴근이 예상됐다. 내가 떠날 때가 7시 40분쯤이었는데 여전히 카페였고, 가면서 놀이터에도 들러야 했다. (사전에 약속된 필수조항이었다) 당연히 씻지도 않았고. 물론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계시니 수고는 훨씬 덜겠지만 시간은 오히려 늦어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배가 모두 끝나고 집에 가려고 차에 탔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쫌 전에 잠 흑흑]
10시 50분이었다. 한 9시쯤 장인어른, 장모님이 가시고 그때 바로 누웠는데 소윤이가 통 잠이 안 오는지 한참 걸렸다.
"여보는 괜찮았어? 멘탈?"
"어, 괜찮았어"
"짜증은 많이 안 냈어?"
"짜증은 안 냈지"
짜증은 안 냈지만 다정함도 없었다는 뉘앙스였다.
그래, 그 상황에서 다정함까지 요구하면 그건 도둑이지. 차갑고 날카롭지 않은 것만으로도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