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23(주일)
역시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부지런히 애들 밥을 차리려고 준비하면서 소윤이한테 물었다.
"소윤아. 오늘은 계란밥해서 얼른 먹고 가자"
"네"
냉동실에 얼려놨던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는데 시윤이가 와서 물었다.
"아빠. 밥 왜 암 줘여"
"어, 지금 준비하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아빠. 밥 이따가아 줘여어?"
"어. 이따가"
"아빠아. 고기 떠 줘여?"
"뭐라고?"
"고기 이따 떠 줘여(고기 또 주세여)"
"고기 달라고?"
"네에에"
웬만한 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애교 가득한 말투와 표정으로 고기를 청하는데 어찌 안 구워주겠나.
"소윤아. 시윤이가 고기 먹고 싶다는데 괜찮아?"
"네. 좋아여"
예배 끝나고 밥까지 먹었는데도 시간이 좀 남아서 [윌]에 갔다. 시윤이는 차에서 재웠다. 바로 잠들지는 않아서 몇 바퀴 돌았다. 시윤이는 내리지 않고 그대로 차에 뒀다. 통유리로 된 카페 입구 쪽 자리에 앉으면 바로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하고 창문을 살짝 열어뒀다. 소윤이 때는 이런 경우, 카시트를 통째로 옮기곤 했다. 이제 그 짓(?)은 못하겠다. 너무 늙었나.
시윤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팥빙수를 먹었다. 소윤이는 그 차가운 걸 어찌나 잘 먹는지. 시윤이는 아무리 맛있는 것도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딱 입을 닫는데, 소윤이는 그렇지가 않다. 정말 끝까지 먹는다. 내가 그러나. 그랬나.
목장 모임과 축구를 해야 하는 날 교회에 내려주고, 아내와 아이들은 집으로 갔다. 목장 모임이 끝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집이지"
"뭐 해?"
"나 화장실에 대피 중이야"
"왜?"
"그냥"
"애들은 괜찮아?"
"응. 잘 놀고 있어"
아내에게 나중에 들었는데 이때 또 한 번 대폭발이 있었다. 아내는 꽤 오래 화장실에 있기는 했는데, 나가보니 애들이 한살림에서 산 배도라지즙을 온 사방팔방에 묻혀 놓은 거다. 거기서 1차 분화가 일어났지만 그럭저럭 잘 추슬렀는데, 배도라지즙이 담겨있던 상자를 정리하려고 들었더니 너무 가볍더란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배도라지즙을 10포나 먹은 거다. 2차 분화 및 대폭발.
이게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기록하지만 사실 엄청난 감정의 동요와 그걸 정제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을 거다.
"아빠, 그래서 앞으로는 몸에 좋은 간식이라도 못 먹게 됐어여"
소윤이는 나중에 날 만났을 때 담담히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서술했다. 몸에 좋은 간식이라 함은 배도라지즙, 프로폴리스, 오메가3 등을 말하는 거다.
축구 끝나고 연락했더니 아내는 파주에 갔다고 했다. 화장실이 임시 대피소라면 파주는 정식 대피소랄까. 우리 집 방향으로 가시는 분이 없어서 일단 교회까지 얻어탔다. 아내도 곧 출발한다고 하고 방향도 어차피 교회를 거쳐가야 해서 태워가라고 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시윤이는 자고 있었고, 소윤이는 쌩쌩했다.
"내가 시윤이 데리고 들어가서 눕힐 테니까 여보가 소윤이 양치 시키고 들여보내"
"알았어"
"아빠. 책은 밖에서 읽어줄 거에여?"
"그래"
안타깝게도 시윤이는 차에서 내리면서 눈을 떴다.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단 아내는 시윤이와 함께 급히 방으로 들어갔고, 난 소윤이와 함께 거실에 남았다. 양치하고 책 읽고.
"소윤아. 방에 들어가면 조용히 해야 돼. 알았지? 시윤이 깨지 않게"
"알았어여"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아내가 급히 시윤이 시야를 가리는 게 보였다. 아직 안 자는 모양이었다. 소윤이가 자리에 눕는 걸 보고 문을 닫았다.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 너무 감정 소모하지 말고 편히 있어. 여차하면 나랑 바꾸자]
뭔가 아내의 2차 대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한 문자였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는 금방 탈출에 성공했다.
야식 먹고 배가 부르니 피곤이 몰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축구 때문이라기보다는 어제의 고된 육아 때문인 듯했다. 막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