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은 강제 나들이

19.06.25(화)

by 어깨아빠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이틀간 '대란'이 이어졌던 것에 비해 오늘은 평안히 지냈다. 다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이른 아침(이라고 쓰고 새벽 of the 새벽이라고 읽어보자)부터 깼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불려 나가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고 있기는 했지만, 슬쩍슬쩍 느껴지는 볕의 밝기로 보아 한 6시 30분쯤 됐겠거니 싶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화장실 갔다 오고, 물 떠다 달라고 그러고, 일어나서 나가자고 그러고 난리였다.


"얼른 누워, 강소윤. 지금 자야 되는 시간이야. 강시윤 너도"


아내의 근엄한 목소리가 방에 퍼졌다. 난 어떻게든 다시 잠들어 보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안간힘을 썼다. 다시 잠드는데 성공했고, 내 생각보다는 더 오래 잔 느낌이었다. 알람이 울려서 깼을 때 아내도 살짝 눈을 뜨고 나한테 뭐라고 얘기도 했지만, 일어나지는 못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보니 애들이 깼던 건 5시 좀 넘었을 때였단다.


"여보, 그런데 솔직히 너무 밝긴 하더라. 아직 잘 시간이라고 하긴 했는데 너무 밝아서 당황했잖아"


1년 중 해가 가장 길고 밝을 때인데다가 안방 커튼의 암막 기능이 매우 약하기까지 하니, 별도리가 없다.


중간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깨워주고, 처치홈스쿨에 갈 시간쯤에 다시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어, 나 이제 가는 중인데 차 엄청 막힌다"

"아, 그래?"

"어, 여기 삼송역 쪽으로 왔는데 지하차도부터 엄청 막혀"


"아빠. 아빠. 꼭 주차장 같아여"

"그래?"

"아빠. 지금 거북이처럼 느리게 가고 있어여"

"아, 그렇구나. 소윤아 오늘도 처치홈스쿨 열심히 하고 와. 알았지?"

"네"


"여보. 이따 합정으로 와"

"합정? 갑자기 왜?"

"아, 나 상암에서도 별로 안 멀고 여보도 합정이 편하지 않아?"

"아, 맞다. 거기 간다고 했지"


아내는 처치홈스쿨 끝나고 상암에 있는 면허시험장에 가야 했다. 형님(아내 오빠)의 국제운전면허 재발급 업무를 대신 수행하기 위해서. 퇴근하고 합정으로 갔다. 아내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소윤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소윤아, 왜 그래? 기분 안 좋아? 무슨 일 있었어?"

"........."


"왜 그래?"

"몰라. 별일 없었는데. 소윤이 왜 그래?"


"아니, 엄마가 내가 하루애 가자고 해도 무슨 하루애냐고 그러고 소윤이네(동네 분식집 이름) 가자고 해도 무슨 소윤이네냐고 그러니까. 내가 속상했어여"


밖에서 저녁 먹고 가자며 동네에 있는 식당 두 군데를 나름 제안했는데, 엄마가 그걸 반려한 게 속상했다는 말이었다.


"소윤아. 우리 동네는 너무 머니까 여기 근처에서 먹고 갈까? 뭐 먹고 싶어?"

"치즈 돈까스 먹을까여?"

"치즈 돈까스 먹고 싶어?"

"아니면 우동?"

"우동?"


전부 하루애에서 파는 메뉴다.


"소윤아. 국수랑 녹두전은 어때? 돼지고기도 있고"


아내 친구가 인스타에 올렸던 [당인동 국수공장]이라는 곳이었다.


"좋아여"

"그럼 국수 시키고 녹두전이나 편육 시켜서 먹자"

"편육이 뭐에여?"

"어. 돼지고기야. 소윤이는 뭐 먹고 싶어?"

"음, 둘 다"

"둘 다는 안 되고 둘 중에 하나만"

"그럼 가면서 생각해 볼게여"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가면서 소윤이는 나름 신중하게 고민했고 결국 편육을 택했다. 가성비로 따지면 녹두전이 훨씬 나을 것 같았지만, 소윤이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 야외 자리가 있어서 거기 자리를 잡고 음식을 기다렸다. 옆 손님들 음식이 먼저 나왔는데 녹두전이 있었다.


"와, 소윤아 저거 봐. 저게 녹두전인가 봐"

"엄마, 나 저거 먹을래여"


급히 메뉴를 변경했다. 녹두전이 먼저 나왔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모두 잘 먹었다. 시윤이는 국수가 입에 안 맞았는지 전혀 안 먹고, 녹두전만 먹었다. 공깃밥도 하나 시키긴 했는데 뜸을 들이는 중이라 좀 걸린다고 했다. 다 되면 갖다 달라고 하고 일단 나온 걸 먹었다. 소윤이는 국수도, 녹두전도 잘 먹었다.


"아빠. 맘마 왜 암 줘여?"

"어, 시윤아 지금 밥을 하고 있대. 조금 이따 주실 거야"

"맘마 이따가?"

"어. 조금만 기다려"


국수와 녹두전을 다 먹었을 즘에도 밥은 나오지 않았다.


"여보. 그냥 밥은 됐다고 할까?"

"그럴까?"

"시윤이가 녹두전만 먹어서 좀 그렇긴 한데"


밥은 취소했다.


"아빠. 맘마 왜 암 줘여?"

"어. 시윤아. 우리 맘마는 안 먹기로 했어"

"왜여어?"

"어. 음. 그냥. 많이 먹어서"


다행히 시윤이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시윤아, 미안. 합정에 자주 갔어도 당인동(당인동이라고 정확히 구분되는 지역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쪽은 처음 가봤는데 이런저런 가게가 참 많았다. 망원동처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아빠. 저 초코케잌도 먹고 싶어여"

"아니야. 오늘은 안 사줄 거야"


사 줄 생각이었지만 장난 반, 시험 반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소윤이는 바로 뾰로통해졌다.


"소윤아. 이건 아빠가 당연히 사줘야 하는 것도 아닌데 소윤이가 이런 걸로 그렇게 심통 나면 아빠는 더 안 사주지"

"아빠. 너무 먹고 싶은데 하나만 사주시면 안 될까여?"

"응, 오늘은 안 사줄 거야"


약간 시무룩하더니 금방 또 시윤이랑 장난친다고 깔깔거렸다. 브라우니를 하나 주문했다. 사장님이 애들 먹이라고 우유도 한 컵 주셨다. 아까 국수 가게에서 저녁 먹을 때도 그렇고, 브라우니 먹을 때도 그렇고. 둘 다 너무 잘 먹으니까 젓가락질, 포크질 하기가 미안했다.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고작 5살, 3살 키우는 것도 이 정도인데 더 크면 아주 장난 아니겠구나.


"여보. 오늘 샤워 시켜?"

"오늘은 그냥 세수만 시키자"

"그래"


사실 세수와 샤워가 그리 큰 노동력의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가, 시간을 현저히 더 많이 쓰는 것도 아니다. 소윤이 머리를 감기는 건 물리적으로도 큰 차이를 유발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거기서 거기다. 그냥 마음의 문제다.


잘 준비를 마친 애들은 아내와 함께 방에 들어가고 난 짐을 챙겨 헬스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나온 지 한 시간 반쯤 되어 다시 돌아갔는데, 내 기척을 들은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소윤이 아직이야]

[헐. 여보 고생이다]


잠시 후 아내가 나왔다. 아내가 보기에 소윤이는 자려고 노력했지만, 정말 잠이 안 오는 것 같아서(처치홈스쿨에서 낮잠을 푹 잤다) 뭐라고 하지도 못했단다. 그저 기다렸을 뿐. 그러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났을까. 시윤이가 깨서 거실로 나왔다.


밤에 자다 깼을 때만 볼 수 있는 특유의 귀여움이 있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나름 즐겼다. 바로 데리고 들어가지 않고 괜히 말도 걸고, 장난도 치고. 시윤이는 자기가 문 열고 나왔어도 여전히 졸리긴 하니까 아내와 나의 치근덕거림을 굉장히 귀찮아했다.


"시윤아. 이제 엄마랑 들어가자. 아빠한테 인사해"

"아빠. 안넝"


들어가서 한 10여 분 지났을 때, 시윤이가 또 문을 열고 나왔다. 이번에는 아까와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아주 개구진 표정으로.


"시윤이 왜? 왜 또 나왔어?"

"헤헤헤헤헤"


그러더니 다시 방으로 쭐래쭐래 들어갔다. 나도 따라갔다.


"시윤아. 아빠도 들어올까?"

"아니여"

"아빠 들어오지 마?"

"네"

"아빠도 이제 자야 되는데"

"아니여어어어. 시러여어어어. 나가여어어어어"


뭐 이런. 누가 누구더러 나가라는 건지.


"그래, 알았어. 잘 자"


시윤이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나를 내보냈다. 시윤아 그러지 마라. 응? 아빠도 하는 거 많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