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29(토)
소윤이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계속 38도대.
"소윤아. 몸은 좀 어때?"
"괜찮아여"
완전히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최악도 아닌 듯했다. 실제로 소윤이는 좀 기운이 없고, 말수가 줄고, 웃음기가 좀 사라졌을 뿐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누워만 있거나 그러지 않고.
아침 반찬으로 (내) 엄마가 어제 싸 온 구운 돼지갈비를 데워서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체온이 38도가 넘어가는 애한테 줄만한 반찬은 아니었다. 소윤이가 너무 멀쩡해 보여서 줬는데, 소윤이는 채 한 점도 먹지 못했다.
"아빠. 못 먹겠어여"
"그래. 아플 때는 억지로 안 먹어도 돼"
시윤이는 아침부터 이게 웬 맛있는 고기냐는 듯, 쉬지 않고 집어먹었다.
"시윤아. 누나 아프대"
"왜여어엉?"
"글쎄. 어제 교회에서 너무 추워서 그랬나"
"왜여어엉? 왜 은나 아파여어엉?"
"추웠나봐. 시윤이가 누나 아프지 말라고 얘기해 줘"
"은나아아. 아파마(아프지마)"
좀 신기했다. 그 정도면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도 이상하지 않을 체온인데, 제법 멀쩡히 움직이고 말하는 게.
부모교육이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부터 나갔다. 차를 타고 가면서 또 물어봤다.
"소윤아. 안 힘들어?"
"좀 힘들어여"
"아, 아까 아침보다는 더 힘들어?"
"네"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차에서보다 더 힘이 없었다.
"소윤아. 누워 있어도 돼"
"괜찮아여"
부모교육 첫 한 시간 정도는 아이들도 의자에 앉아서 들어야 하는 건데, 소윤이는 의자에 앉겠다며 눕기를 거부했다. 평소 같았으면 계속 말을 하고, 일탈을 주도하고 그랬을 텐데, 오늘은 잠잠했다. 까랑까랑하게 친구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우다다다다 뛰어다니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첫 시간이 끝나고 그다음 시간부터는 거의 계속 누워 있었다. 아내 무릎을 베고 누워 있다가 잠이 들기까지 했다. 활력을 잃은 누나와는 달리 시윤이는 땀이 삐질삐질 흐를 정도로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시윤이도 말이 좀 되고, 소통이 가능해지니 약간의 깐족거림이 생겼다. 소윤이의 깐족거림이 다소 독성을 품고 있고 상대(그게 어른이라 하더라도)의 기분을 정말 상하게 할 수 있는 치명성이 있다면, 시윤이의 깐족은 굉장히 순수성이 높다. 그냥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만든달까. 아니면 첫째와 둘째를 대하는 마음의 차이일지도 모르고. 실제로 시윤이는 모든 질문의 끝에 'ㅇ' 받침을 붙인다. 김애경 배우님처럼.
"아빠. 이거 뭐에여어엉?"
"왜 암 줘여어엉?"
"어디 갔어여어엉?"
근처 분식집에서 점심을 사 왔는데, 소윤이는 떡국이 먹고 싶다고 했었다. 점심이 도착했을 때는 자고 있었고.
"여보. 어떻게 하지? 소윤이 꺼 남겨야 하나?"
"그러게. 일단 먹고 새로 사주든지 하자"
"그래, 그럼"
나머지 사람이 밥을 먹는 동안 소윤이는 여전히 바닥에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러다 밥을 다 먹었을 때쯤 소윤이가 깼다.
"아빠. 나도 떡국"
"소윤아. 지금 몸이 좀 안 좋아서 떡국 괜찮겠어? 소화 안 되지 않을까?"
"괜찮아여. 먹을 수 있어여"
"그래? 그럼 아빠가 집에 가서 맛있게 끓여주면 안 될까?"
"지금. 먹고 싶은데"
소윤이는 울먹거렸다. 떡국 한 그릇을 더 사 왔다. 나머지 사람들이 교육을 듣는 동안 뒤에 앉아 소윤이에게 떡국을 먹였다.
"소윤아. 몸은 좀 어때? 안 힘들어?"
"조금 힘들어여"
"배부르면 그만 먹어. 억지로 먹지 말고. 평소보다 더 많이 꼭꼭 씹고"
아침도 제대로 안 먹어서 배가 고프긴 했는지 제법 먹었다. 밥도 좀 먹고. 밥 먹고 나서도 영 기운이 없더니 부모교육이 거의 끝날 때가 되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 끝나고 어른들끼리 잠깐 앉아서 얘기하는 동안에는 꼭 아프지 않은 애처럼 놀았다.
"소윤아. 이제 괜찮아?"
"네. 안 힘들어여"
"그래? 아까보다 훨씬 나아졌어?"
"네"
열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는데 겉보기에는 훨씬 나아 보였다.
"여보. 저녁은 어디서 먹지?"
"그러게"
"밖에서 먹고 갈 거야? 집에서 먹을 거야?"
"음, 그냥 집에 가서 있는 반찬에 먹이자"
"그래. 밖에서 먹여 봐야 잘 먹지도 않을 거 같고"
"맞아"
아내도 나도 엄청 피곤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서 얼른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시윤이도 낮잠을 안 잤기 때문에 아마 눕자마자 잠들 것 같았고.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집이 너무 더러웠다.
"여보. 집이 너무 더러워서 들어가기 싫다"
"그치? 나도 그래"
결국 아내는 외식을 선택했다.
"소윤아. 우리 밖에서 밥 먹고 가자. 소윤이가 먹고 싶은 거 두 개 말하면 그중에 고를게"
"하루애"
"또 하나는?"
"소윤이네(분식집 이름)"
소윤이의 바람대로 [하루애]에 갔다. 시윤이는 오늘도 돈까스만 집중 공략. 소윤이는 속이 부대끼긴 하는지 그 좋아하는 돈까스는 먹지 않고 흰밥을 된장국에 적셔 먹었다. 아픈 소윤이 기운 좀 내라는 뜻에서, 밥 먹은 뒤에 식당 앞의 자그마한 공원 의자에 앉아 비요뜨 두 개를 사서 먹였다. 단 거 먹고 힘 좀 내라고. 소윤이 힘내라고 사 준 건데 시윤이가 힘내서 먹었다. 물론 소윤이도 잘 먹었지만. 비요뜨 먹을 때도 둘의 차이가 보인다. 소윤이는 초코링을 다 먹으면 요거트가 남았어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반면에 시윤이는 요거트를 다 먹으면 초코링이 남았어도 더 이상 먹지 않고.
시윤이는 너무너무 졸렸는지 차에 타자마자 막 잠들었다.
"시윤아. 자지 마. 어차피 다 왔는데 집에 가서 씻고 자자"
"아아아아아앙. 시더여어어어어어"
얼마나 짜증이 나겠나. 졸려서 자려는 걸 억지로 깨워대니.
애들도 애들이지만 아내랑 나도 엄청나게 피곤했다. 다른 날에 비해 특별히 더 고생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런가.
"여보. 너무 피곤하다"
"여보도 그래? 나도 그래.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러게"
아내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정말 정말 고마운 한마디를 내뱉었다.
"소윤아, 시윤아. 이리 와. 엄마랑 씻자"
아내가 애들을 씻기는 동안 잠시지만 좀 누워서 쉬었다. 아내가 씻겨서 내보내면 내가 옷을 입혔다. 애들을 재우러 방에 들어가는 아내도, 톡 하고 밀면 그대로 쓰러져 잘 것만 같았다. 애들한테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정리고 뭐고 일단 소파에 눕고 싶었다. 휴대폰을 들었는데 졸다가 한 두어 번 얼굴 위로 떨어뜨렸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기절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대로 아침까지 잘 각오(?)도 했다.
한시간쯤 지나고 눈이 떠졌다. 엄청 개운했다. 무지하게 달콤한 잠을 잤다. 아내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잠 좀 깨려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여보. 뭐 했어?"
"나도 좀 전에 일어났어. 애들은 금방 잤어?"
"그랬겠지? 분명한 건, 내가 제일 먼저 잠든 거 같아"
아내도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나 보다. 둘이 거실에 앉아 초점 잃은 눈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하아. 이제 집 치워야겠다"
난장판인 집을 함께 치웠다. 설거지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와서 문을 열었는데 소윤이가 아내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오잉? 소윤이 깼어?"
"히히히히히"
그러고 나서 옆을 봤더니 시윤이도 깨서 나와 있었다.
"뭐야? 시윤이도 깼어?"
"네에에에"
기왕 깨서 나오기도 했고, 소윤이도 투병(?)중이니 한껏 괴기한 동작과 표정으로 소윤이와 시윤이를 웃게 만들었다.
"소윤아. 몸은 좀 어때?"
"괜찮아여"
"열은 안 나?"
"아니. 아직 조금 나긴 나"
진정 국면에 접어든 느낌이긴 했다. 아내는 급히 씻고 다시 애들을 데리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