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배변 훈련

19.07.02(화)

by 어깨아빠

얼마 전 원흥역에서 사무실까지 가는 통근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오늘 처음으로 이용했다. 원흥역에서 출판단지까지 한 방에 갈 수 있다는 초특급 장점이 있다. 거기에 무료. 다만 집에 올 때는 퇴근하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탈 수 있어서 좀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첫날이니 타보기로 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일어나 나를 배웅해 준 소윤이는 오늘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을 경험했다.(혹은 저질렀다)


"여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잠깐 설거지하러 왔어"

"아. 그래? 오늘도 애들은 잘 있었어?"

"어"

"낮잠도 잘 잤어?"

"응. 낮잠도 잘 자고.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 하나 있었어"

"왜? 무슨 사건?"

"소윤이가 밥 먹다가 바지에 똥을 쌌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밥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날 보면서 '엄마. 이거 어떻게 해여' 이러더라고. 그래서 뭔가 하고 봤더니 방구를 뀌다가 똥을 쌌대"

"진짜? 왜 그랬지? 방구를 너무 세게 뀌었나?"

"아니,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약간 물똥이었어"

"속이 안 좋았나?"

"그것도 아니래"

"소윤이는 괜찮았어?"

"응. 소윤이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내가 힘들었지"

"그러게"

"바닥이랑 매트 엄청 열심히 닦고, 소윤이 닦여서 옷 갈아입히고"

"아무튼 대박이네. 고생했어"

"그러니까"


힘줘서 뀌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피식 방구(?)를 뀌다가 무른 똥이 나왔다는 걸 보면 아마 속이 좀 불편했던 것 같다. 소윤이 스스로는 못 느꼈더라도. 아내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아내 표현에 의하면, 일을 저지르고 나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온 바닥에 난리가 났다고 하던데. 바닥도 박박 닦고, 소윤이 옷도 열심히 빨고.


때아닌 똥난리를 겪은 아내는 의연했다. 아무렇지 않게 처치홈스쿨을 끝내고, 여느 때처럼 스타필드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거기서 애들 밥까지 먹이고 퇴근하는 나를 원흥역에서 태워갈 계획이었다. 밥 먹이는 게 생각보다 늦어져서 난 원흥역에서 집까지 걷기 시작했고,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여보. 퇴근할 때는 통근 버스 못 타겠다"

"그러게. 너무 늦긴 하다"

"그러니까"


8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출근할 때만 타기로 했다. 집에 가서 애들을 씻기는데 소윤이가 나한테 괜히 툴툴거렸다. 샤워도 엄마랑 하겠다고 그러고. 왜 짜증 내냐고 뭐라고 했더니 '아빠가 나한테 장난친 게 싫었는데 계속해서 그랬다'면서 괜히 또 나를 걸고넘어졌다. 정말 기분이 상한 거 반, 보여주기용 반으로 무뚝뚝하게 했더니 살살 내 눈치를 살폈다.


시윤이도 씻기고 각자 읽을 책 하나씩 골라서 아내랑 들어가려는 찰나에 소윤이가 얘기했다. (소윤이는 이미 자기 기분을 회복하고, 방방 뛰는 상태였다)


"아빠. 말타기 한 번 해주세요"

"싫어"

"왜여?"

"아빠한테 짜증냈으면서 무슨 말타기야 말타기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윤이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진심 어린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서럽게 우니까 좀 미안했다.


"소윤아. 이리 와 봐. 왜 울어?"

"어. 어. 아빠가. 흑흑. 계속 장난쳐서. 흑흑. 하지 말라고 그런 건데. 흑흑. 아빠는. 흑흑. 갑자기 나한테. 흑흑. 얘기도 안 해주구. 흑흑. 갑자기 안 된다고. 흑흑. 해서여"

"그래. 알았어. 아빠랑 말타기 하자"


말타기 두 번에 눈물은 마르고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여보. 우리는 애들 재우고 저녁 먹자"

"뭐?"

"그냥. 뭘 사 먹든지"

"여보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여보 먹고 싶은 걸로 사 오면 돼"

"그래? 아무거나?"

"응. 뭐 부대찌개 같은 것도 있고"

"여보 부대찌개 먹고 싶어? 그냥 여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그런 것도 있다고 알려주는 거야"

"알았어. 그럼 마음대로 사 온다?"

"아, 여보여보여보여보. 족발만 아니면 돼. 아 곱창도. 아 닭똥집도"


아무튼 아내가 애들 재우는 동안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열심히 운동하는 와중에도 '끝나고 치킨 사 가야지'라고 생각하며 흐뭇해하고, 운동 끝나자마자 치킨 집에 가서 치킨을 사가지고 룰루랄라 돌아오는 부조화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운동한 게 아깝다. 먹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운동했으니까 먹어도 되겠다'로 생각이 전개되는 걸 보면, 역시 이번 생은 끝났다. 난 기독교 신자니까 다음 생도 없고. 천국에는 다이어트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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