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3(수)
원래는 통근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했다. 피곤했다기보다는 소윤이랑 시윤이가 너무 일찍 일어나서 소란을 떠는 바람에 억울했다. 잠을 도둑맞은 느낌이랄까. 아내가 소윤이, 시윤이에게 얘기하는 소리와 소윤이가 징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억지로 잠을 청했으나, 질 좋은 잠은 아니었다.
나중에는 장난감을 방에 가지고 들어와서 시끄럽게 하길래 아내가 나가서 놀라고 얘기를 했지만 듣지 않았다. 결국 내가 일어나서 잔소리를 좀 했다. 소윤이가 계속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길래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랜만의 샤우팅이었다. 소윤이가 울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무지 후회스러웠다. 영양가가 하나도 없는 고성이었다. 1분도 안 돼서 자괴감에 빠졌다.
시윤이는 내가 소윤이한테 버럭 소리를 지르니 갑자기
"오오오오오"
이러면서 놀란 표정을 하더니 자기 하던 행동을 멈추고 자기가 알아서 누나 옆에 와서 앉았다. 정말 눈치 하나는 끝내준다. 괜히 시윤이한테도
"시윤이도, 알았어?"
라고 물어보면
"네엣"
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넌 어쩔 수 없다. 시윤아. 니 복을 니가 챙기는구나.
소윤이는 아침의 일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여느 때처럼 시윤이랑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꼭 이렇게 한 번씩 내 무덤을 판다.
"소윤아. 이리 와 봐"
"왜여?"
"아까 아빠가 소리 질러서 속상했어?"
"네"
"뭐가 속상했어?"
"어. 아빠가 갑자기 '내려놔' 이렇게 해서여"
"그래. 그건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계속 차분하게 말했어야 하는데 그건 아빠가 잘못한 거야. 미안해. 소윤이는 아빠 행동 배우면 안 돼"
"네. 아빠"
내가 말하면서도 참으로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배우지 말란다고 그게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같아서는 시윤이한테도 구구절절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러지는 않았지만.
사무실에 가서도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가 소윤이한테 말 좀 잘해봐. 그런 건 따라 하면 안 된다고]
[응. 얘기하긴 했지. 생각보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던데]
생각해 보면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소리 지르는 유이한 사람이 소윤이와 시윤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못 됐네. 소윤아, 시윤아. 늘 비슷한 변명이지만 아빠도 미숙해서 그래.
아내는 오전부터 애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며 영상통화를 했다.
"여보. 사람이 하나도 없어"
"하긴. 다 어린이집 갔겠다"
"그러니까. 아, 덥다"
"맞아. 오늘도 덥더라"
소윤이랑 시윤이는 텅 빈 놀이터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놀고 있었다. 아무도 없지만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요즘 이럴 때 정말 뿌듯하다. 오늘 아침에도
"시윤아. 일어났어? 나와서 누나랑 놀래?"
"은나. 나가. 나가"
이러고 좀 놀더니만, 소윤이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은나. 가지 마. 이기(여기) 와. 와"
이렇게 매달렸지만 소윤이가 방으로 들어가자 시윤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은나. 나와아아아아앙. 나와아아아아앙"
확실히 예전에 비하면 서로 경쟁하려고 하는 건 없어졌다. 오히려 서로 너무 똑같이 하려 그래서 문제지. 누나가 물 마시면 자기도 꼭 마셔야 하고, 누나가 뭐 가지고 놀면 자기도 똑같이 놀아야 하고. 아무튼 점점 둘이 끈끈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아내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시윤이를 재우고 밥을 먹으러 갔다. 시윤이는 유모차에 눕혀 놓고 소윤이와 앉아서 음식을 시켰는데, 시윤이가 깼다. 한 20분 만에. 아내는 이 소식을 매우 황당한 듯 내게 전했다.
"오늘 일찍 재워야지"
낮잠 패싱의 말로는 이른 밤잠뿐이지. 암.
밥 먹고는 이디야까지 갔다고 했다. 그러니까 점심시간 전에 나가서 내가 퇴근하기 직전까지 밖에 있었던 거다. 이럴 때 보면 은근히 철인의 면모가 있다. 이 더운 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삐질삐질 날 텐데 애 둘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기 할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내가 아무리 함께한다고 한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퇴근했더니 막 애들을 씻겨서 옷을 입히고 있었다.
"저녁은 뭐야?"
"글쎄. 냉장고 보고 생각 좀 해 봐야지"
호박볶음과 멸치볶음, 두부볶음(?). 그리고 버섯과 옥수수를 넣은 전이 나왔다. 소윤이는 전이 맛이 없다고 했다. 시윤이는 호박을 안 먹었고. 아내는 실망했다. 실망이라기보다 맥이 빠졌다고 하는 게 맞겠지. 나름 열심히 만들어 줬는데 깨작거리니까.
"엄마. 여기 옥수수가 맛이 없어여"
"이제 너희 반찬 안 해주고 싶다"
"왜여"
"엄마가 열심히 해줘도 잘 안 먹으니까. 봐. 소윤이도 지금 밥만 먹고 있잖아"
"소윤아. 조금 맛이 없어도 열심히 먹어 봐. 엄마가 정성스럽게 해 주신 건데 그렇게 안 먹으면 엄마도 속상하겠지?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먹으려고 노력해 봐. 그게 맞는 거야. 시윤이도. 알았어?"
소윤이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반찬을 골고루 먹기 위해서. 시윤이는 안 먹고 장난만 치는 것 같길래
"강시윤. 아빠가 반찬도 열심히 먹으랬..."
하면서 식판을 봤더니 언제 먹었는지 남은 게 별로 없었다. 하여간 강시윤은 아마 처세에 능한 사람이 될 거다.
"아빠. 이제 못 먹겠어여"
"그래. 소윤이가 열심히 먹으려고 하는 거 아빠도 봤어. 고마워. 잘했어"
소윤이가 남긴 전을 먹었는데. 음, 소윤이를 이해하게 됐다.
"여보. 여기 옥수수가 맛이 없긴 하다"
"그래?"
"응. 이게 그 조미 옥수수가 아니니까 확실히 뭔가 따로 노네"
"그렇긴 하지?"
먹기 싫어서 괜히 옥수수 핑계 대는 거라고 무시했는데, 아니었구나. 소윤아. 미안.
그래도 오늘은 서두른 덕분에 축구하러 가기 전에 모든 걸 끝내고 눕혔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갔다 올 게"
"아빠 잘 갔다 와여"
"아빠 안넝"
축구하고 왔더니 아내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뭐 하냐, 뭐 했냐, 애들은 금방 잤냐는 질문에 영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드라마 보느라 집중해서 그런가 아니면 졸려서 그런가.
그러다가 하겐다즈를 내밀었더니 시큰둥은 물러가고 다정함이 찾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저 나의 착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