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근을 너희 놀이터에

19.07.08(월)

by 어깨아빠

평온한 월요일이었다. 아내도 별일이 없어서 계속 집에 있었다. 시윤이를 재우고 엄마와 오붓하게 과일을 먹는다는 소윤이의 목소리에 평안이 묻어났다.


퇴근했더니 장모님과 장모님 친구분이 집에 와 계셨다. 아내는 저녁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소윤이는 아기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시윤이는 뭐 씹은 얼굴을 하고는 거실을 뒹굴고 있었다.


"시윤이는 왜 그래?"

"앉기 싫다고 그러지 뭐"


"시윤아. 이리 와 봐"

"시더여어엉"

"아빠한테 와 봐. 일단. 얼른"


징징대는 와중에도 와서 안겼다. 시윤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윤아. 짜증 내면 안 되지요?"

"이잉이이이잉잉잉잉"

"그만. 시윤이 가서 앉을 거에요?"

"아니여어어엉"

"그럼 아빠랑 여기서 얘기하고 맴매 맞을 거에요?"

"아니여어어어어"

"나가서 앉는 거에요"

"네"

"나가서 울지 말고 떼쓰지 않고. 알았지?"

"네"


일단 순순히 앉긴 했는데 밥 먹기를 거부했다. 오래 씨름하지 않고 바로 밥그릇을 거두고 내려줬다.


"시윤이. 그럼 이제 밥 끝이야. 알았지?"

"네에"


시윤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게 놀기 시작했다. 소윤이는 느리지만 다 먹었다.


"아빠.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다 올까여?"

"안 돼. 너무 늦었어"

"아빠. 그럼 딱 10분만?"

"안 된다니까"

"그럼 딱 5분?"

"아니"

"3분?"

"아니"

"2분?"

"그렇게 놀고 싶어?"

"네"

"알았어. 그럼 밥 얼른 먹고 나갔다 오자. 대신 아빠가 들어가자고 하면 바로 들어가기"

"그럼여"


그러더니 '나는 괜찮은데 쟤가 문제'라는 듯, 소리 내지 않고 인상을 쓰며 손가락으로 시윤이를 가리켰다. 소윤이의 애교와 능청에 무릎 꿇고 말았다. 이제 원어민 수준의 청해가 가능한 시윤이도 갑자기 바빠졌다.


"아빠. 아빠"

"어. 시윤아"

"모자. 모자. 모자 어디떠여어엉?"

"모자. 글쎄. 모자는 왜?"

"더어영(더워여). 바께 더어영"

"그래? 모자가 어딨지. 아빠는 모르는데"

"엄마. 엄마 아방(가방)에. 아방에"


아내 가방에서 모자를 찾아 머리에 썼다.


"아빠. 이거 바바여엉. 모자 떠떠여엉"

"이야. 멋지네"


소윤이가 밥을 다 먹자마자 나갔다. '그래. 좀 일찍 끝낸다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나'라고 마음을 비우니 편안했다. 현관문을 나서기도 전부터 잔뜩 신이 나서 동동거리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한 가치 있는 수고겠지.


날씨가 제법 선선했다. 바깥에서 놀기에는 아주 딱이었다. 장모님과 장모님 친구분을 지하철역에 데려다 드린 아내가 운동하러 가기 전에 잠깐 들렀다. 이제 괜히 나타났다가 헤어질 때 부작용(?)이 생기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아내를 놓아줬다.


조금 더 놀다가 들어왔다. 둘을 동시에 씻겼다.


"소윤아. 여기 팬티랑 옷 좀 입어"

"네"


다행히 시윤이도 말을 잘 들어서 취침 준비의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


"아빠. 엄마 오면 내 옆에 누우라고 얘기해주고 건조기 다 되면 내꺼 시원한 이불 갖다 주세여. 알았져?"

"그래. 알았어"


시윤이는 엄지손가락 빨지 말라고 했더니 나를 등졌다. 자기 딴에는 몰래 빨아보려고 한 거 같은데, 내가 끝까지 추격(?)했다.


"시윤아. 손가락 빨지 말고 자자. 시윤이 안 빨 수 있잖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서러웠는지 억울했는지, 아니면 그냥 빨고 싶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꽤 한참이나 훌쩍거리다가 울다가 그러더니, 슬픔 가운데 잠들었다.


아내는 평소보다 조금 빨리 돌아왔다. 막 집에 돌아온 아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데 덜커덕 안방 문이 열렸다. 아내는 급히 커튼 뒤에 숨고 내가 가 보니 소윤이었다.


"소윤아. 왜?"

"물"

"그래, 알았어. 오줌도 한 번 쌀까?"

"네. 엄마는여?"

"어, 아직 안 오셨어"


소변을 보는 소윤이에게 슬쩍 물었다.


"소윤아. 쉬하고 나면 들어가서 자"

"네"

"오잉? 진짜? 혼자 들어가서 잘 거야?"

"네"

"오. 이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네"


그러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어쩜 이렇게 첫째와 둘째의 매력을 다르게 만드셨을까.


소윤이가 들어가고 나서, 커튼 뒤에 숨었던 아내도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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