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9(화)
시윤이가 가장 먼저 일어난 듯했다. 혼자 부스럭 부스럭거렸다. 알람이 울리고 내가 눈을 뜬 걸 보더니 옆에 와서는 다정하게 얘기했다.
"아빠아. 나가여어엉"
"시윤아. 아빠 어차피 출근해야 돼"
"왜여어엉?"
"아빠 회사 가서 일해야 돼"
"히자(회사)?"
아내는 내가 깨웠다. 소윤이는 자고 있어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는데 1분도 안 돼서 소윤이도 나왔다.
"아빠. 우나(누나). 우나. 깨. 깨"
"어. 누나도 깼네"
사무실에 도착한 뒤, 아내랑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잘 가고 있는지 전화를 해봤다.
"어. 여보"
"어디야?"
"우리 도착했어"
"엄청 일찍 갔네?"
"어. 오늘 그냥 아침을 싸 왔어. 여기서 먹이려고"
"아. 애들은 괜찮았어?"
"응. 괜찮았지"
퇴근하고 대화역에서 지하철을 탈 쯤 아내와 다시 통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이제 대화역에서 타려고"
"지하철?"
"응"
"아, 그럼 얼추 시간 맞을 수도 있겠다. 난 언니랑 잠깐 자연드림 왔거든"
"그래? 어디서 시간이 맞아?"
"원흥역이나 뭐 이런 데서? 여보가 백석이나 대곡쯤에서 연락 한 번 해 줘"
"알았어"
삼송역에서 만났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은 뭐야?"
"음, 그냥 돼지고기랑 야채 볶아주려고"
"그렇군"
막상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밥 차리기가 싫었는지 탄식처럼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 외식하고 싶다"
그 말을 들은 소윤이가 득달같이 낚아챘다.
"엄마. 외식하고 싶다구여? 그럼 외식하자여"
아내는 외식=외출=늦은 귀가=퇴근지연이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여보. 외식해"
나의 지지에 아내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그래. 밖에서 먹자. 소윤아 뭐 먹지?"
"그냥 뭐 닭발이나 이런 거?"
닭발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닭발을 먹지도 않는데. 아내는 애들 먹일 밥과 반찬을 간단하게 싸서(이럴 거면 외식을 왜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원래 그런 거다. 그냥 집에서 밥 먹는 일체의 행위 자체가 싫을 때가 있다) 나갔다. 메뉴는 나가서 고르기로 하고.
사실 날씨가 우리를 불러냈다. 하늘도 파랗고 먼지도 없고, 바람은 선선하고. 조그마한 광장이 있는 집 근처 상가 지역으로 갔다. 애들도 먹을 수 있고, 아내도 먹을 수 있는, 평소에 자주 먹지 않는 특식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메뉴를 고르다 보니 치킨이 낙점됐다. 무엇보다 소윤이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고.
"엄마. 그럼 치킨 먹자여 치킨"
물론 아내와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켜 먹는 곳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여기는 이름이 뭐에여?"
"여기? 바른치킨"
"바른치킨? 여기서는 우리 처음 먹는 거잖아여"
어, 아니야. 소윤아. 너네 자면 엄마랑 아빠랑 엄청 시켜 먹어. 쿠폰으로 먹은 것도 벌써 몇 번이야. 배달시킬 때는 주소도 안 말해.
"여보. 우리가 이 시간에 나와서 얘네랑 치킨을 먹다니"
"그러게 말이야"
얘네는 치킨도 잘 먹는다. 시윤이는 살을 찢어 줬더니 야금야금 먹은 게 거의 한 조각 반은 되고, 소윤이는 아예 닭다리도 하나 잡고 뜯었다. 야물차게. 아주 만족스러운 외식이었다. 일단 소윤이와 시윤이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기만 해도 질이 달라지니까.
"아빠. 우리 다 먹고 저기 광장에서 조금만 놀아도 되여?"
"그래. 그러자"
"아빠. 나두. 나두"
"그래. 시윤이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를 타고 한참을 놀았다. 아내와 나는 한 쪽에 앉아 나름대로 쉬는 시간을 가졌고.
"여보. 커피라도 사 올까?"
"그럴까? 어디서?"
"그냥 아무 데나. 싼 데서"
"그래"
잠시 후
"여보. 이따 마트에 가서 레고 담을 통도 한 번 보자"
"아, 맞다. 그러자. 내가 갔다 올까?"
"여보. 왜 자꾸 혼자 움직이려고 해?"
아내가 자꾸 단독 행동을 하려고 했다. 여보, 우리는 가족 공동체잖아. 항상 함께 해야지.
"아빠. 놀이터에서도 조금 놀면 안 돼여?"
"그래. 조금만 놀고 가자"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는데 시윤이가 심상치 않았다. 자꾸 우리 시야를 벗어나서 쭈뼛대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격렬한 대장 활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리는 표시였다. 나랑 소윤이가 앞서서 놀이터에 도착했고, 아내랑 시윤이가 뒤쫓아왔는데 시윤이가 내게 와서 얘기했다.
"아빠아. 이따가. 바여어"
"시윤이 똥 쌌어?"
"네"
"엄마랑 먼저 들어가서 씻을 거야?"
"네. 아빠. 이따. 바여엉?"
"그래"
아내랑 시윤이는 먼저 들어가고, 나랑 소윤이만 남아서 한 15분 정도 놀았다. 다 놀고 집에 돌아왔더니 시윤이는 화장실에서 씻고 있었다. 시윤이는 집에 돌아온 나와 소윤이를 보더니 갑자기 오열했다.
"아니야아앙. 나두. 가꺼야아아아아. 이이터어어어(놀이터). 아빠아아. 나두 이이터 가고뻐어어어(가고 싶어)"
너무너무 서럽게 울었다. 아마 똥을 닦고 나서 다시 나가는 줄 알았나 보다. 이따 만나자는 인사도 그런 의미였고. 떼나 징징거림이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슬픔이었다.
"시윤아. 속상했어?"
"네"
"놀이터 가는 줄 알았는데 못 가서?"
"네"
"그래그래"
역시 사람은 공감에 목마른 동물인가. 별말 없이 속상했냐고 하면서 안아주니까 조금씩 진정이 됐다.
저녁도 맛있게 먹고, 놀기도 즐겁게 놀아서 모두 기분이 좋았다. 다만 아내는 아침(혹은 새벽)부터 이어진 육아 강행군에 바싹 말라 있었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얘들아. 처치홈스쿨 한 날에는 엄마가 인내심이 많이 없어. 그러니까 한 번 말하면 잘 들어줘?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