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사치

19.07.10(수)

by 어깨아빠

아내랑 아이들이 출근길에 함께 했다. 소윤이가 파주(처가댁)에 가서 장모님과 키즈카페에 가기로 했단다. 장모님 친구분도 함께 가시는 거라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맡기고 자유시간을 가질 거라고 했다.


"아빠. 어디 가여어엉?"

"어, 아빠 회사 갔다가 할머니 집에"

"하무니 집에?"

"응"

"왜여어엉? 왜 가여어엉?"

"오늘 소윤이 누나랑 키즈카페 간대"

"나두 아치(같이)?"

"응, 시윤이도 같이"


아내는 내 아침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줬다. 럭셔리하게.


"소윤아, 시윤아 잘 갔다 와. 이따 만나자"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때 아내는 혼자 도서관에 있다며 사진을 보냈다. 노트북과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연애할 때부터 아내는 공부를 하든 뭘 하든 일단 도서관에 앉으면 다이어리부터 펼쳤다. 희한한 건 도서관이나 카페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기록한 다이어리를 다른 데서는 잘 안 열어 보는 것 같다. 요즘도. (이런 걸로 놀리면 안 좋아하니까 그만해야지)


아내는 점심도 혼자 먹을 거라고 했다. 며칠 전에 얘기하던 [한낮의 자유부인]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는 어느 브런치 카페에 가서 점심을 먹으러 가서 조금 더 싼 파니니와 조금 더 비싼(가격에 허영이 많이 포함된 것처럼 느껴지는)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두고 고민했다. 결국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골랐다고 했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애들 데리고 다니면 누가 그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실용과 효용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마당에, 이럴 때라도 좀 사치(라고 하기에도 너무 사사롭지만)를 좀 부려야지.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사무실로 왔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소윤이, 시윤이 얼굴이 모두 울상이었다. 눈물을 흘린 자국도 있고.


"소윤아. 왜? 왜 그래?"


소윤이는 말이 없었다.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아. 할머니 집에 아기 인형을 두고 왔대요"

"아, 그랬구나"


소윤이가 가슴으로 낳은 아기 인형이니 상심할 만했다.


"시윤이는?"

"시윤이는 여기 오다가 잠들었는데 깨워서 그래요"


낮잠을 안 잔 모양이었다. 사무실로 오는 그 잠깐(한 10여 분) 사이에 잠들었는데 깨웠더니 짜증이 났나 보다. 우울함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비가 조금씩 떨어졌다.


"아빠. 우리 오늘도 밖에서 조금 놀아도 돼여?"

"아니. 오늘은 비 오잖아"

"그럼 우산 쓰면 되잖아여"

"우산이 있는지 모르겠네"

"차에 없으면 집에서 갖고 오면 되져"

"우산도 한 개 밖에 없어. 그럼 시윤이는 어떻게 해"

"시윤이는 나랑 같이 쓰면 되잖아여"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거절하고 보니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비가 엄청 세차게 오는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 저녁은 뭘 먹일 건지 물어보니 장모님이 싸 주신 반찬이 있다고 했다.


"혹시 밖에서 먹일 수는 없지? 사 먹는 거 말고, 싸 온 걸 밖에서"

"숟가락이 없는데. 그럼 소윤이네(분식집 이름)라도 가던가"

"그럼 사 먹어야 하니까"


고민하다가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그럼 우리 소윤이네(분식집)서 주먹밥 하나씩 먹고 집에 갈 때 우산 쓰고 걸어갈까?"


소윤이는 당연히 그러자고 했다. 그리하여 오늘도 외식. 주먹밥 한 개, 만두 한 판, 열무국수를 시켰다. 난 아내가 먹는 열무국수 조금하고 애들이 남긴 주먹밥만 좀 먹었다. 만두도.


원래 축구의 수요일인데 오늘은 축구가 없었다. 내심 아쉬웠는데 비가 와서 다행이었다. 하려고 했다가 비 때문에 취소되면 어차피 못하는 건 똑같지만 더 아쉬웠을 테니.


"소윤아. 소윤이가 우산 쓰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밖에서 밥 먹는 거야"


참 별거 아니었는데, 밥 먹고 집에 가는 한 5분 정도를 우산 쓰고 걸었더니 그게 그렇게 좋았나 보다. 시윤이는 우산을 벗어나서 막 비를 맞으려고 뛰어다녔다. 아내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했다. 난 오히려 더 세차게 비가 내렸으면 애들 흠뻑 적셨을 텐데, 너무 보슬비라 아쉬웠다.


소윤이는 걸어가면서 계속 혼잣말의 탈을 쓴, 나를 향한 메시지를 계속 던졌다.


"아.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

"놀이터에서 진짜 너무 놀고 싶다. 아"

"놀이터에서 진짜 쪼끔만 놀면 좋겠다. 아"


못 들은 체 했더니 포기했다.


"여보. 애들 샤워 시킬까?"

"어. 그래야 될 것 같아"


소윤이와 시윤이를 함께 세워 놓고 씻겼다. 요즘은 자주 이런다. 이게 더 빠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둘이 홀딱 벗고 나란히 서 있으면 뭔가 좋다.


"자, 아빠가 이거(바디워시) 줄 테니까 소윤이는 시윤이, 시윤이는 소윤이 누나 닦아줘"


그랬더니 둘이 서로 등 닦아주고 배 닦아주면서 깔깔거렸다. 물론 이렇게만 쓰면 마치 유아용 바디워시 CF에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화목한 장면 같지만, 실상은 안 그렇다. 언제나 희, 노는 함께 연출된다.


"자, 이제 그만하고. 얼른 아빠 말 들어. 소윤이 고개 뒤로 젖혀"

"강시윤. 그만하라고 했지. 그만"

"어, 위험해. 그만. 그만. 그만"


자기 전의 모든 과정을 마친 후 아내에게 인계했다. 아내의 얼굴이 피로 그 자체였다. 오늘도 애들보다 먼저 자지 않을까 싶었다. 운동하고 와도 깨어 있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웬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니,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앉아서 자고 있었다.


"여보. 언제 나왔어?"

"모르겠어"

"애들은 금방 잤어?"

"어. 내가 먼저 잤지만"

"졸리면 그냥 들어가서 자"

"씻고?"

"씻고 자던가. 아니면 그냥 자도 되고"

"아, 그런데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다. 오늘 한 잔도 못 마셨어"


나름 성의를 기울여 커피 한 잔을 타줬다.


"아, 맞다. 빵도 있었지"


내가 샤워하는 동안 아내는 커피와 빵을 먹었다. 샤워하고 나왔더니 혈색이 달라져 있었다.


"여보. 이제 좀 살 것 같다"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내를 살린 건.


커피? 빵? 퇴근?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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