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4(주일)
한 8시쯤 살짝 깨서 실눈을 뜨고 살펴보니 아직 모두 자고 있었다. '할머니 집에 오면 항상 새벽같이 일어나더니 자기들도 피곤하긴 했나 보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소윤이가 벌떡 일어났다. 어제 막 내무반에 들어온 이등병인 줄 알았다. 기상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저쪽 방으로 갔다.
"할머니. 일어나여"
잠시 후 시윤이도 바스락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하무니. 나두 깨떠여"
아내는 미동이 없었다.
'그래, 녀석들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서 효도 좀 많이 해라. 아빠는 좀 더 잘게'
한 시간 반 정도 더 자고 일어났다. 8시에 눈 떴다가 다시 감으면서, 10시 30분 예배에 가는 건 포기했다. 여유롭게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우리 10시 30분까지 가려면 몇 시에 출발해야 되지?"
"응? 10시 30분 예배는 못 가지"
"아, 그런가?"
소윤이는 교회 갈 준비를 하다가 내게 물었다.
"아빠. 우리 교회 갔다가 다시 오는 거에여?"
"어디? 할머니 집?"
"네"
"아니. 이제 우리 집에 가는 거지"
"예배드리고 또 오면 되잖아여"
"안 돼. 할머니랑 할아버지 질려. 지금도 약간 질리셨을 거야"
"질리는 게 뭐에여?"
"그런 게 있어. 아무튼 할머니, 할아버지도 교회 갔다 와서 쉬셔야지"
소윤아, 시윤아. 너희로 인한 즐거움과 기쁨, 뿌듯함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소모하고 있거든. 그게 만만치가 않아. 파주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마약이지 마약. 만나면 힘든데 조금만 못 봐도 보고 싶고"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싶다.
시윤이는 교회 가는 차 안에서 잠들었다. 그대로 안고 가서 예배당 의자에 눕혔다. 눈부시지 말라고(깨지 말라고) 눈만 옷으로 살짝 덮어줬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도 안 깼을뿐더러 다시 로비로 올라가서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 안았는데도 잘 잤다.
아내가 소윤이 데리러 2층에 올라갔을 때 깼는데 엄마가 있었으면야 그럴 리 없겠지만, 엄마가 없으니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이런 게 강시윤의 매력이지.
12시 10분 예배를 드리면 끝나고 거의 바로 내 목장 모임 시간이라 헤어져야 한다. 축구하는 장소가 교회 근처라 평소 같았으면 아내랑 애들한테 차를 주고 집으로 가든 어디 다른 데를 가든 하도록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목장 모임이 끝나면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축구하러 갈 때도 내가 차를 가지고 가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내 목장 모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여보는 그냥 여기 있을 거야?"
"그래야 하지 않을까?"
목장 모임을 시작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소윤이가 깔깔거리며 등장했다.
"아빠. 아하하하하하하하"
웃는 이유가 특별히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갑자기 등장했다는 사실이 웃겼나 보다. 그 뒤로 30분 동안 소윤이를 무릎에 앉힌 채 목장 모임을 했다. 어떤 연유로 올라오게 됐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건 올라오는 소윤이를 아내가 막지 않았다는 거고 그건 아내가 슬슬 힘이 부쳤다는 얘기였다.
"소윤아. 엄마는 뭐 하셔?"
"그냥 시윤이랑 있어여"
역시 목장 모임을 마치고 마주한 아내는 힘겨운 모습이었다.
"여보. 그래도 오늘은 이른 퇴근을 기대할 수 있잖아"
"그러게"
축구하러 나가는 인간이 건넬만한 위로는 아니었다.
오늘은 아내와 내가 만난지(오늘부터 1일 하기로 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결혼하고 나면 연인 시절의 기념일은 1급 기념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10년이니까 맛있는 거라도 먹기로 했다.(그렇게 따지면 맨날 기념일인가)
날이 날이니만큼 축구는 안 가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아내는 상관없다며 다녀오라고 했다. 하긴 애들이 안 자면 10년이고 20년이고 무슨 의미를 찾겠나. 그냥 육아하는 거지. 그래서 애들 재워놓고 우리만의 조촐한 파티를 즐기기로 한 거다.
축구 끝나고 초밥을 사 가려고 했는데 재료가 다 떨어져서 영업을 종료했다길래 스타필드로 갔다. 마트 초밥이랑 와인, 군것질거리를 좀 사서 집에 왔다.
기대했던 대로 애들은 이른 시간에 잠들었다. 애들을 못 본 건 아쉬웠지만, 방해 없이 한 점씩 초밥을 음미하며 평화를 만끽했다.
"여보. 10년이라니"
"그러게. 그중에 절반을 소윤이랑 같이 있었다는 게 더 놀라워"
"진짜 그러네. 신기하네"
아내랑 나랑 함께한 시간이 10년인데, 그중 5년을 소윤이랑 같이 했다니. 내년부터는 소윤이도 함께 있었던 시간이 더 많아지겠구나. 점점 아득해진다. 아내랑 둘이만 있었던 시절이. 그때도 일기 좀 써 놓을걸.
아, 참. 싸이월드 커플다이어리에 좀 있기는 하지만 볼 수가 없다. 볼 수야 있지만 많은 걸 잃어야 한다. 눈, 손, 발.
여보, 십년해로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