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의도

19.07.15(월)

by 어깨아빠

아내가 애들이랑 아침 먹고, 예배드리고 일찌감치 나왔다며 사진을 보냈다. 무려 아침 10시에. 그렇게 한 시간 반을 놀고 나서는 집에 들어가서 옥수수를 쪄 먹을 거라고 했다. 아이들이랑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면 강제로 부지런해진다.


점심때가 지나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여보. 어디야?"

"나 이제 막 점심 먹고 사무실에 왔어. 시윤이는 자?"

"어. 재웠지. 아니 나 조금 전에 은영 언니한테 연락 왔는데 오늘 단이가 생일이라서 나왔는데 만날 수 있냐고 연락 왔더라고. 시윤이 일어나서 나가면 너무 잠깐 봐야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서"

"나한테 물어보는 이유는 뭐야?"

"그냥 여보의 의견을 묻는 거지. 잠깐이라도 나가서 만나는 게 좋을지 어떨지"

"아, 오늘 자유시간을 내일로 미루고 싶다는 말이야?"

"아니.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거든?"

"나갔다 와. 자유시간도 내일 해"

"여보. 진짜 그런 뜻은 없었어"

"알았어. 누가 뭐랬나"


난 믿는다. 아내의 결백을. 이렇게 펄펄 뛰는 걸 보면 분명하다. 아내는 누굴 속이고 의도를 숨기고 이런 걸 못한다. 다 티가 난다. 어쨌든 아내의 자유시간은 내일로 미뤄졌다. 아내와 아이들은 스타필드로 나갔고.


[내일 애들 잘 안 자면 어쩌지?]

[신경 쓰지 마 여보. 난 스트레스 안 받아. 애들 안 자면 놀면 돼. 애초에 마음먹고 있으면 즐겁게 놀 수 있어]


아내는 걱정스러웠나 보다. 화요일이라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고, 낮잠도 잘 테니 밤잠이 늦어질 텐데 그런(?) 아이들을 내게 넘기는 게 영 걸리는 거다. 아내에게 말한 대로 예측 가능한 고난은 얼마든 감내할 수 있다. 오늘부터 계속 생각하면 된다.


'내일은 죽었다. 내일은 죽었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는 거기서 계속 있다가 오는 거야?"

"어. 난 여기서 언니랑 저녁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들어갈게"

"그럼 난 그냥 나대로 움직이면 되지? 헬스장 갔다 오고?"

"어. 여보도 자유를 즐기면 돼"


집에 와서 옷만 갈아입고 바로 헬스장으로 갔다. 한 시간쯤 운동하고 돌아왔다.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은 없었다. 좀 빈둥거리다가 발톱이나 깎아야겠다 싶어서 엄지발톱 하나 깎았는데, 띠띠띠띠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숨어서 들어오는 소윤이를 한 번 놀랬다.


"아빠"

"어. 소윤이, 시윤이 왔어?"

"네"


애들은 활력이 넘쳤다. 들어오자마자 나한테 뛰어서 안기고 팡팡 뛰고. 나도 전혀 육아에 힘을 쓰지 않았던 터라 얼마든 받아줄 수 있었지만, 아내는 아니었다.


"얘들아. 얼른 와. 이제 씻자"


아내의 박자에 쿵짝을 맞춰줘야 한다.


"그래. 얼른 엄마한테 가. 얼른 씻고 나오면 또 좀 놀자"

"아빠 따아아악"


시윤이는 '따아아악' 을 '딱 한 번만 더요'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동시에 씻겼다. 화장실에서 간헐적 고성과 아내의 푸념이 들려왔다.


"이제 너네 같이 씻지 마. 따로 씻어. 알았어? 이렇게 말 안 들을 거면"


이미 지쳤지만 더 지쳐가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통제(엄하고 진지하게) 할까 하다가 말았다.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은 상태라면) 한 명이 엄한 역할을 할 때는 나머지 한 명은 가급적 자애로운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둘 다 쏘아붙이면 숨쉬기 힘드니까.


다 씻고 나와서도 조금 몸으로 놀았다. 질척거리기로는 둘 다 둘째가라면 서럽다.


"아빠. 딱 한 번만 더여"

"진짜 마지막이야? 알았지?"

"네"

"자 이제 끝"

"아빠 진짜 한 번만 더"


"아빠. 따아아아악"

"시윤이도 이게 마지막?"

"네에에"

"자 이제 끝났다"

"아빠. 따아아아아악"

"아니야. 아까 약속했잖아"

"아빠아아. 따아아아아악"


강력한 끈끈이를 가진 식충식물에 빨려 들어가는 곤충처럼, 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오래 걸리지 않은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여보. 고생했어"

"고생은 뭐"

"내일을 생각하며 힘내"

"여보. 내일 괜찮겠어?"

"어. 나가서 놀지 뭐. 자전거나 탈까"


여보는 뭐 하루 종일도 있는데, 그 정도쯤이야. 당연히 해야지. 걱정하지 마.


여보. 나 왜 하품도 안 했는데 눈물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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