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특급 연장 근무

19.07.16(화)

by 어깨아빠

처치홈스쿨 끝나고 어디 들렀다 들어가는 아내와 시간이 맞았다. 원흥역에서 만났다.


"여보 안녕. 소윤이, 시윤이 안녕"

"여보. 고생했어"

"어. 애들 낮잠은 잘 잤어?"

"응 잘 잤어"

"여보는 집에 들어갔다가 나갈 건가?"

"응. 그래야지. 애들 저녁은 점심때 먹고 남은 반찬 싸왔으니까 그거 먹이면 돼"

"그래?"


뒤에 있던 소윤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빠. 어제 오늘은 아빠랑 많이 놀기로 약속한 거 기억하고 있져?"

"그럼"

"자전거도 탈 거지여?"

"그럼. 밥 먹고 자전거 타러 나가자"


"아빠. 나두 아치? 아치?"

"응. 시윤이도 같이"

"나두 아전거(자전거) 타구 지퍼여엉"

"아, 시윤이는 킥보드 타. 자전거도 누나 안 탈 때 태워줄게"


저녁 차려서 먹고 나가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좀 하다가 밥을 싸 가지고 나가서 먹이기로 했다. 아내가 싸 온 반찬과 밥을 후다닥 비벼서 통에 담았다.


"소윤아, 시윤아. 신발 신어. 나가자"

"아빠. 밥은 안 먹어여?"

"나가서 먹자. 엄마한테도 인사하고"

"엄마 안녕"

"엄마 빠빠이"


자전거와 킥보드를 챙겨서 놀이터로 나갔다. 놀이터 정자에는 평소에도 이 시간이면 항상 모여 있는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밥이 담긴 통을 꺼냈다.


"소윤아, 시윤아. 한 번씩 와서 먹고 가"


거의 유일하게 허용되는 식사 중 자리 이탈이다. 소윤이는 제법 자전거를 끈기 있게 탔다. 워낙 겁이 많아서 조금만 휘청거리거나 장애물이 생기면 "아빠"를 찾아대지만, 그래도 이제 좀 컸다고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아직 다리 힘이 부족해서 시원스럽게 나가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는다. '애들 두 발 자전거 타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다들 그렇게 난리일까'라는 생각을 총각 때는 했었는데, 이게 키워 보니까 왜 그런지 알겠다. 두 발 아니라 네 발만 타도 이렇게 흐뭇한걸.


시윤이는 오늘도 누나가 잠시 내렸을 때 얻어 탔다. 무작정 타겠다고 떼 안 쓰고 누나 탈 때는 킥보드 신나게 타고, 누나 내리면 태워 달라고 하는 시윤이가 고마웠다.


모여 있던 엄마들이 하나, 둘 들어가고 나서도 우린 여전히 놀이터였다. 두유와 호박 부각(거의 과자나 마찬가지였다)도 먹고, 그네도 타고, 소윤이 친구도 만나고. 큰 소리 한 번 낼 일 없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소윤아. 우리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팥빙수 먹을까?"

"팥빙수여? 편의점에서도 팔아여?"

"어. 팔아"

"아. 아빠. 아빠. 나 뭔지 알아여. 본 적 있어여"

"맛있겠지? 어때?"

"좋아여. 팥빙수 맛있겠다"


"아빠. 나늠 우유. 우유"

"아, 우유도 사서 같이 넣을 거야. 시윤이도 같이 먹자"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도 자전거와 킥보드를 탔는데 소윤이는 정말 겁이 많다. 앞, 뒤 안 재고 무작정 돌진하고 달려드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과할 때도 있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오토바이가 있으면 곧 출발할 것 같다며 무서워하고, 차가 오지 않는데도 차가 나타날 것 같다며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고 그랬다.


"소윤아. 조심하는 건 좋은데 일어나지 않을 일까지 무서워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야. 아빠랑 있을 때는 아빠 믿으면 되고, 소윤이 혼자 있을 때도 어느 정도 조심하면 괜찮을 때도 많아"


시윤이도 누나 닮은 것 같다.


팥빙수 하나와 우유 하나를 사서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씩 우유를 부어가며 소윤이 한 입, 시윤이 한 입 넣어줬다.


"아빠. 나늠 떡 또 줘여엉"


시윤이는 떡과 팥이 모두 고갈되고, 얼음만 남았을 쯤 더 이상 먹지 않겠다며 자리를 떴다. 충분히 먹을 만큼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팥과 떡이 떨어진 빙수는 맛이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시윤이는 분명히 선이 있다. 선에 도달하면 미련 없이 돌아선다. 그에 반해 소윤이는 선이 없다. 끝이 선이다. 시윤이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소윤이는 끝까지 먹었다. 국물까지 호로록.


"자, 이제 샤워하자. 둘 다 같이 들어와"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었고 체력도 제법 떨어져서 그냥 재우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날씨가 아니었다. 나도 이렇게 씻고 싶은데 애들은 오죽할까 하는 마음으로 씻겼다.


책도 읽고, 기도도 한 뒤 자려고 누워서 시윤이한테 얘기했다.


"시윤아. 오늘은 손 빨지 말고 자? 알았지?"


시윤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를 등지고 누웠다.


"시윤아. 얼른. 대답해. 손 빨지 않고 잘 수 있지?"

"네"


모깃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하더니 갑자기 자기 이불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몰래 손을 빨려고 그러나 봤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슬쩍 이불을 걷었더니 싫다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려놨다. 처음 보는 행동이었다.


둘 다 낮잠을 많이 잤기 때문에 애초에 마음을 먹고 들어갔다.


'최소 한 시간이겠구나'


시윤이는 계속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자꾸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마 손가락을 빨고 싶은데 못 빠니까 괴로워서 내는 신음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불을 그렇게 한 건 자기 나름대로의 항명의 표현이자, 1차원적이지만 물리적으로 입을 막아서 유혹을 차단하겠다는 의미였나. 인견 이불이라 자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 것 같아 그대로 뒀는데,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아무리 인견이라도 얼굴에 뭘 뒤집어쓰고 있으니 거추장스럽긴 했을 테니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다시 이불을 걷었다.


"아아아아아. 시더여어어어"

"아니야. 시윤아. 이불 얼굴에 덮고 있으면 자다가 숨 못 쉴 수도 있고 위험해. 이제 그만하고 그냥 덮고 자자?"

"시더여어어어어"

"아빠 말 들어야지. 아빠가 위험하다고 했지?"


정말 그러기 싫다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드러냈다. 아니나 다를까, 숨 쉬는 게 편해졌는지 금방 잠들었다.


소윤이는 누운 뒤로는 한 번도 장난을 치거나 눈을 뜨지 않았는데 잠들지도 않았다. 낮잠을 너무 개운하게 잔 여파였다. 한 시간을 같이 누워 있었는데도 똑같았다. 소윤이는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잠이 안 와?"

"네"

"그런데 이제 아빠는 나가야 돼. 아빠는 나가서 할 일도 있어서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소윤이 이제 잠 거의 들었으니까 혼자 누워서 잘 수 있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아빠가 조금 더 같이 있을까?"

"네"


그렇게 한 30분을 같이 있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소윤아. 아빠 이제 진짜 나갈게. 소윤이 이제 혼자 누워서 자. 알았지? 이따 엄마 오시면 소윤이 옆에 누우라고 할 게?"

"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소윤이의 모습이 내심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10분쯤 뒤에 소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왜 나왔어?"

"쉬 하려구여"

"그래. 오줌 싸고 들어가"

"아빠. 밖에 있고 싶어여"

"밖에? 안 되지 그건. 지금 잘 시간인데"

"엄마 보고 싶어여"


소윤이는 울먹 거리며 얘기했다.


"아, 엄마 보고 싶구나. 그래, 당연하지. 아빠가 이따 엄마 오시면 소윤이 옆에 누우라고 할 테니까 얼른 들어가서 자고 있어. 알았지?"

"네"


울음을 꾹 참으며 혼자 들어가서 누웠다. 기특한 녀석. 소윤이는 그렇게 잠들었다.


모든 걸 끝냈지만 아무런 식욕이 없었다. 아내가 나가면서 고구마도 있고 감자도 있다고 알려줬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시원한 오렌지 주스나 한 잔 마시고, 애들이 먹었던 부각 과자도 좀 먹고.


아내가 먼저(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치킨을 사 가느냐고 물었다. 식욕이 돋았다. 침샘이 터지고.


이 정도 근무에 치킨 한 마리면 적당한 거래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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