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20(토)
집에 식빵이 없어서 일어나자마자 편의점에 가서 식빵을 사 왔다.
"아빠. 오늘은 아침 뭐 먹어여?"
"오늘은 토스트야"
넣을만한 재료도 없었지만 설령 있었다 해도 시간이 빠듯해서 뭘 썰고 볶고 할 시간이 없었다. 구운 식빵에 계란 프라이 한 장씩. 어차피 영양은 못 챙기는 거 맛이라도 있으라고 설탕을 좀 뿌려줬는데 그마저도 '애들 건강 지키기' 본능 회로가 작동했는지 소윤이가 바로 시식 평을 했다.
"아빠. 그런데 너무 싱겁긴 하다"
"그래? 설탕을 뿌리긴 했는데 너무 조금 뿌렸나?"
"그런가 봐여"
그 와중에 소윤이랑 시윤이는 맛있다고 더 먹겠다고 했지만 오늘은 한 개로 끝이라고 통보했다. 영양도 못 챙겨주고, 포만감도 못 준 것이 좀 미안했다. 크랜베리와 우유를 갈아서 줬다. 아내 말대로 크랜베리를 믹서에 갈고, 우유와 꿀을 섞어서 줬다. 시윤이는 살짝 입에 대더니 오만상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아빠. 마지 어떠여어엉(맛이 없어여)"
시윤이는 워낙 신맛을 싫어해서 예상은 했다. 그래도 소윤이는 좀 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빠. 그만 먹을래여"
라며 컵을 밀었다. 직접 먹어 봤더니 그럴만한 맛이었다. 역시나 꿀을 너무 조금 넣었는지 하나도 안 달았다. 미안하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아침은 영 뭐가 아닌가 보다.
소윤이는 하루 종일 여름성경학교였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소윤이를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어딘가에) 이렇게 오래도록 떨어뜨려 놓는 건 처음이었다. 아침 먹고 준비하면서 소윤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소윤아. 성경학교 가서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한테도 친절하게 얘기하는 거야. 알았지? 엄마, 아빠가 없다고 소윤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도 처치홈스쿨에서 배운 대로 실천해야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인 거야. 알았지?"
"네"
"그리고 찬양이나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정성껏 드려 봐. 그러면 소윤이도 예수님 만나고 올 수 있어. 얼마든지"
차 타고 가면서 무슨 얘기를 하다가(아마 화장실 얘기였던 것 같은데)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소윤아. 그만큼 우리 몸이 소중한 거야. 소윤이가 아무한테나 보여주면 절대 안 되는 거야. 아빠가 뭐라고 했지? 남자 중에는 누구한테만 보여줄 수 있다고?"
"아빠"
"그래. 맞아"
"여자는 엄마한테만여?"
"아니야. 할머니들한테는 보여줘도 되고"
"고모는여?"
"고모도 되지"
"숙모는여?"
"숙모도 되고. 우리 가족 중에서는 거의 다 괜찮아. 교회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엄마, 아빠가 괜찮다고 한 집사님이나 권사님, 선생님들은 괜찮아"
"남자는 절대 안 돼여?"
"어. 절대로 안 되지. 아빠 말고는. 아빠도 이제 소윤이가 조금 더 크면 마음대로 소윤이의 몸을 볼 수가 없어"
"나중에 아빠랑 나랑 헤어져서 못 만나게 되면?"
너무 대비 없이 한 방을 훅 맞았다. 살짝만 더 정신 줄 놓고 있었으면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흐를 뻔했다.
"소윤아. 아빠 우시겠다"
아내는 장난스럽게 한마디 던졌지만, 정말 그럴 뻔했다. 성교육하다가 울 뻔했네.
"아, 그렇기도 하지만 같이 있어도 아빠가 소윤이 몸을 함부로 볼 수 없는 날이 와"
"그때도 엄마나 다른 여자는 괜찮아여?"
"그렇지. 그렇다고 해도 아무한테나 막 보여주는 건 아니야. 그만큼 소윤이 몸은 소중해"
먼저 교회에 가서 소윤이를 내려줬다. 모두 내려서 소윤이를 데려다줬다.
"소윤아. 재밌게 하고 와"
"소윤아 이따 만나자"
"으나. 안넝"
아내는 결혼식에 가야 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시윤이를 데리고 갈지 말지 고민했다. 편히 혼자 가고 싶기도 하고, 데리고 가서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결국 데리고 가기로 했다.
"괜찮겠어?"
"어. 뭐 하나니까"
"그래. 하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
덕분에 난 뜻하지 않은 자유시간이 생겼다. 햄버거 사 먹고, 알라딘 가서 책 사고, 아트박스 가서 펜 사고, 스타벅스 가서 커피 마셨다. [나가면 다 돈]이라는 생활 경제계의 격언을 몸소 실천했다. 아내는 오랜만에 아는 사람(옛 교회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지 꽤 오래 있었다.
"여보"
"어. 이제 나왔어?"
"응. 여보는 어디야?"
"나는 여기 스타벅스. 알라딘 있는 쪽에"
"아. 그래? 그럼 우리 어디서 보지?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그러게. 너무 더워서 밖은 좀 그렇고"
"백화점이나 갈까?"
"아, 그럴까? 목소리가 많이 지쳤네. 힘들었어?"
"어. 생각보다 힘들더라. 덥고"
"고생했어"
호기롭게 시윤이를 데리고 간 지 두어 시간 만에 아내는 녹초가 됐다.
"여보. 그냥 여보한테 맡기고 갈 걸 그랬어"
아내는 시윤이와의 시간을 이렇게 평가했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한 놈이라고 수월할 거라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어쨌든 시윤이는 잠들었다.
"여보. 데이트다 데이트"
"그래. 데이트다"
시윤이를 유모차에 눕혀서 끌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구경했다. 옷도 구경하고, 가전도 구경하고, 식품관도 구경하고. 시윤이는 한 시간쯤 자고 깼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웃겨주려고 그래도 연신 짜증이었다. 그러다 식품관에 가서 먹을 걸 입에 좀 넣어줬더니 그때부터 조금씩 평소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꽤 많이 걸었다. 그나마 시윤이가 유모차에서 내리겠다고 안 해서 다행이었다. 시윤이와 함께 한 것 치고는 꽤 편히 보낸 건데도 고단했다.
"여보. 피곤하다"
"그러게"
소윤이 끝날 시간에 맞춰 다시 교회로 갔다. 잠시 후 소윤이가 활짝 웃으며 등장했다.
"소윤아. 성경학교 잘했어?"
"네. 아빠. 이런 것도 받았어여"
소윤이는 잔뜩 들떠 있었다.
"소윤아. 성경학교 재밌었어?"
"네. 우리 보물찾기 같은 것도 했어여"
"그랬어?"
"얼음에 직접 들어가서 찾았어여"
"얼음에? 옷 안 젖었어?"
"아. 다 들어간 건 아니고 발만여 발만"
"아. 발만 들어갔구나"
그 외에도 뭘 했고 뭐가 재밌었는지 웃음을 가득 섞어서 얘기해줬다.
집에 가려고 차에 탔는데 소윤이가 물었다.
"아빠. 이제 어디 가여?"
"어디 가긴. 집에 가지"
"집에 바로 가기는 싫어여"
"그럼 어딜 가?"
"그건 모르겠는데 아무튼 집에 바로 가고 싶지는 않아여"
소윤이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여보. 그럼 하나로 마트라도 들를까?"
"그래, 그럼"
"소윤아. 그럼 우리 하나로 마트라도 잠깐 들렀다가 갈까? 어때?"
"그러자여"
"아빠. 나두 아치? 마찌(마트)?"
늘 그렇듯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시식 음식들을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배분했다. 소윤이는 성경학교에서 저녁까지 먹고 왔다. 이런 감사한 성경학교라니. 처음에는 우리(나, 아내, 시윤이)의 저녁은 집에 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막상 늦게까지 밖에 있으니 집에 가서 뭘 하기가 귀찮았다.(특히 아내가)
"여보. 우리도 그냥 여기서 뭐 먹고 갈까?"
"그러자 그럼"
멸치국수, 냉국수(곱배기), 떡볶이를 시켰다. 소윤이도 먹겠다고 하길래 조금 넉넉히 시켰는데 소윤이는 물론이요 시윤이까지 일찍 숟가락을 놓는 바람에 아내와 나만 배 터지게 먹었다.
아내도 나도 많이 피곤했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피곤하지?"
"그러니까. 되게 피곤하다"
얼른 집에 가서 재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집 근처 스타벅스를 지나고 있을 때 소윤이가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나 스타벅스도 가고 싶다"
아내도 나도 못 들은 척했다. 그랬더니 소윤이가 몇 번을 더 혼잣말(다 들렸지만)처럼 읊조렸다.
"아. 카페 가고 싶다"
"아. 스타벅스 가면 좋을 텐데"
그러더니 결국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스타벅스도 들르면 안 될까여?"
"어, 오늘은 아니야"
"왜여?"
"엄마도 아빠도 너무 피곤하거든"
소윤아 사람은 언제나 '적당히'라는 게 있어야 한단다. 끝을 모르고 달려들다가는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야.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는데 거의 빈사 상태로 나왔다.
"아. 잘 뻔했네"
내가 보기엔 살짝 자다 나온 듯했다.
"졸리면 그냥 일찍 자지"
"그래도. 이렇게 끝내면 뭔가 억울해"
억울하다던 아내는 앉아서 웹툰 좀 보다가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여가를 즐겼다. (물론 계속 그런 건 아니고, 거의 막판에 그랬다.)
"여보. 오늘은 안 되겠다. 들어가서 자야겠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내일은 주일이잖아. 나 축구하러 갈 동안 또 폭풍 같은 육아를 하려면 체력 아껴야지. 얼른 자.
라는 마음의 소리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