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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2(화)

by 어깨아빠

"아빠. 밥 줘여어엉?"

"시윤아. 아빠 출근해야 돼"

"아빠. 왜 가여어엉?"

"회사 가서 일해야지"


시윤아 오늘은 월요일이란다. 밥은 엄마에게 가서 찾으렴.


낮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의 목소리 뒤로는 거칠게 울고 있는 시윤이 소리가 들렸다.


"시윤이는 왜 또?"

"낮잠 안 자겠다고"

"왜?"

"몰라. 엄청 울어. 혜민이랑 혜윤이 놀러 온대서 얼른 집 치워야 되는데"


이럴 때 딱히 할 말은 없다. 아내가 엄청 지쳐 있거나 속상한 상태도 아니어서 깊은 위로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릎을 탁 칠만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내 아는 동생들이 집에 놀러 온다고 했다. 퇴근하고 갔을 때는 다들 저녁 먹고 카페에 가 있는 상태라 아무도 없었다. 집이 굉장히 정돈되어 있었다. 평소 애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었을 때의 상태와는 천지차이였다. 두 명의 (애들을 예뻐하는) 육아 보조자의 존재로 인해 아내에게 여유가 생겼거나, 육아 보조자들이 틈틈이 정리했거나 그랬겠지.


왔던 동생들이 아내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말하길 찍다 보니 시윤이 사진만 잔뜩이라 소윤이한테 좀 미안하다고 했다는데, 요즘 자주 보는 광경이다. 막 말문이 트여서 어설픈 발음으로 말하는 거나 겉으로 보기에는 아가 같은데 조금씩 사람처럼 행동하는 걸 보면 시윤이가 딱 예쁨 받기 좋은 때다. 둘째라 그런가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애교도 많고. 그에 비하면 소윤이는 이제 오히려 아기보다는 아이 쪽에 가까워져서 "꺄악" "까악" 소리를 유발하는 어떤 귀여움을 발산하는 때는 지났다. 오히려 어른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경탄을 유발하는 경우가 더 많다면 많다.


나는 소윤이가 오래 두고 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애가 막 달기도 하다가 쓰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또 엄청 부드럽고 그러다가 막 딱딱해졌다가. 그래서인지 주로 가족, 어려서부터 본 지인 등에게 부동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요즘은 고정 지지층조차 시윤이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소윤아, 신경 쓰지 마. 아빠는 니가 첫사랑이자 현사랑이고 막사랑이고 그래. 널 생각하면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특급 감정이 항상 생성되곤 해.

(시윤아 넌 두 번째라는 것만 좀 다르지. 너도 똑같아)


아내는 동생들을 가까운 역에 데려다주러 나갔다. 애들은 내가 씻겨서 재우고. 금방 잤다. 아내한테 치킨을 사 오라는 지령을 내렸고, 아내는 애들 잠들면 연락하라고 했다.


"여보"

"어. 애들 자?"

"어. 이제 자네"

"알았어. 그럼 이제 사 갈게"


원래 오늘 자유시간이지만 목요일에 친구를 만나야 한대서 목요일로 바꿨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도 나간 김에 그냥 좀 더 있다 오라고 하는 게 어떨까 싶었다.


"여보"

"어. 왜?"

"여보 그냥 더 있다가 와"

"지금? 여보 운동 가야지"

"운동 안 가도 돼"

"아니야. 들어갈게"

"왜. 나간 김에 더 있다 오라니까"

"괜찮은데"

"난 괜찮다니까"

"그래 그럼. 한 시간만 더 있다 갈게"


누가 보면 일기에 착한 남편인 것처럼 남기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겠네. 썩 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또 몹쓸 놈은 아니다. 이런 걸 보면.


아내가 사 온 치킨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안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시윤. 쭐래쭐래 걸어 나오더니 아내의 무릎에 앉았다. 아내는 옥수수 껍질을 까야 해서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치킨이 남아서 들어갈 수 없었고.


"시윤아. 잠깐 엄마 무릎에 앉아 있어"

"아빠 이거 뭐에여?"

"이거? 치킨"

"나두 먹고 지퍼여어엉"

"자. 이거 먹어"


가슴살을 아주 조그맣게 찢어줬다. 약간 정신을 차렸는지 조금씩 돌아다니면서 장난을 쳤다.


"시윤아. 조용히 해. 누나가 나와서 이거 보면 큰일 나"


소윤이만 빼놓고 치킨 먹고, 즐겁게 노는 걸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했다. 시윤이를 진정시키고 있는데 방에서 소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깼다. 소윤이도 거실로 나왔다. 다행히 치킨의 흔적은 어느 정도 치웠고, 나머지는 말로 대신했다.


"소윤아. 시윤이도 방금 깼네. 소윤이도 같이 조금만 기다려"


소윤이랑 시윤이는 옆에 앉아서 기다렸고, 아내와 나는 옥수수 껍질과 수염을 마저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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