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묻는 거 싫어졌어요

19.07.23(화)

by 어깨아빠

아내가 어제 말하길 간식만 준비하면 된다고 했으니, 일찍 깨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한 8시쯤 전화해서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7시 30분쯤 먼저 전화가 왔다.


"여보"

"어. 지금 일어났어?"

"응. 어디야?"

"난 가고 있지"

"왜 안 깨웠어?"

"그냥 좀 더 자라고"


"아빠. 어디에여엉?"

"어. 지금 회사 가고 있어"

"뻐찌(버스) 타구?"

"응. 버스 타고"


"소윤이 오늘 처치홈스쿨 마지막이네?"

"마지막은 아니져. 방학 끝나면 또 하잖아여"

"아, 방학하기 전에 마지막이라고. 잘 하고 와"

"네"


퇴근하려고 사무실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200번 기다리고 있어"

"아, 그래. 나는 지금 남옥 언니랑 팥칼국수를 먹으러 갈까 고민 중이야"

"팥칼국수?"

"어. 근처에 맛있게 하는 집이 있대"

"그래? 그런데 뭘 고민해?"

"아. 여보 혼자 밥 먹어야 되니까"

"아 괜찮아. 먹고 와"

"그럴까? 그럼 얼추 시간 맞겠다. 근처에 오면 내가 태우고 들어가면 되겠다"

"그래 알았어"


지하철로 갈아타고 집 쪽으로 가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카톡을 보냈다.


[여보. 나 어디서 내려?]


답장이 없었다. 그냥 삼송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아내랑 아이들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날이 덥기도 하고 아무런 연락도 안 되고 그래서 살짝 짜증이 났다. 소파에 널브러져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집"

"우리도 이제 가"

"알았어"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오늘 운동 갈 거야?"

"그래야지. 왜?"

"아, 그럼 여보 운동 갈 거 챙겨서 스타벅스로 올래? 애들이랑 스타벅스에 있다가 집에 갈까 싶어서"

"그러자"


스타벅스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국수를 배불리 먹고 왔다는 소윤이, 시윤이는 아내가 사 온 빵까지 정신없이 먹었다. 그냥 앉아서 주면 받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빨리 달라고 채근하며 빵에 달려들었다. 밤식빵 하나(나도 많이 먹었지만), 초콜렛 크로와상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아빠. 떠 줘여엉"

"이제 없어"

"왜여어엉?"

"니네가 다 먹었잖아"


빵을 다 먹은 시윤이가 갑자기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먹었으니 싸는 건가. 특유의 구린내를 풍겼다.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냄새.

"여보. 이제 가자"

"시윤이는 어떻게 하지?"

"그냥 집에서 닦아주지 뭐"

"그러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 문을 열어줬다. 소윤이는 자기 자리에 스스로 앉아서 벨트를 채웠다. 시윤이도 보통 앉는 것까지는 스스로 할 때가 많아서 가만히 놔뒀다.


"시윤아. 얼른 앉아"

"아아아아앙(거절의사)"

"왜. 얼른 앉아"

"아아아아앙"

"그럼 아빠가 앉혀 준다?"


그러고 나서 시윤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어올렸더니 시윤이가 절규했다.


"아빠아아아. 응가아아아. 무더어어어엉. 무더어어어엉"


그대로 카시트에 앉으면 응가가 뭉개질 텐데, 이제 자기도 그게 싫다는 의사표시였다. 이건 또 새로운 단계다.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시윤아 미안해. 얼른 집에 가서 닦자? 알았지?"

"아아아. 시더어어엉"

"미안. 얼른 가서 물로 닦아줄게. 조금만 참아?"


다행히(?) 엄청 조금이었다. 냄새와 시윤이 반응으로 보면 한 바가지였는데.


"여보는 바로 운동하러 가"

"아니야. 나도 그냥 올라갈게"

"왜. 괜찮아. 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아니야. 내가 샤워 시킬게"


둘을 동시에 씻겼다. 요즘은 물을 엄청 차갑게 해서 뿌려주는 놀이(?)에 맛 들였다. 둘 다 겁도 많고, 극한의 고통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라 처음에는 좋아하다가도 어느 선을 넘어가면 갑자기 정색하거나 표정이 굳기 때문에 수위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애들 잘 씻겨 놓으면 내가 다 개운하다.


"소윤아 시원하지?"

"네. 엄청 시원해여"


아내가 집정리를 하는 시간을 이용해 숨바꼭질을 하며 자기 직전까지 놀았다.


"이제 들어가서 자자"

"네에"


한 10여분 후에 아내가 문을 열고 약가 씩씩거리며 나왔다.


"그럼 이제 너네끼리 자"

"왜?"

"자꾸 안 자고 장난쳐서"


시윤이는 끝까지 아내 말을 듣지 않고 장난을 치다가 고집으로 발전해서 결국 엉덩이를 맞았다. 시윤이는 요즘 다시 고집이 세지는 시기인가 보다.


한 30-40분 있다가 아내가 나왔다.


"하아"

"고생했어"

"낮에도 애들 재우느라 고생이고 밤까지 이러니까 내가 뭐 하는 건가 싶네"

"고생이다 고생이야. 여보 이제 뭐 할 거야"

"이제 와서 뭘 하겠어. 좀 있다 자야지"


하긴. 뭘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일은 파주에 간다니까 좀 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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