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최선을 다했다

19.07.25(목)

by 어깨아빠

아내는 처치홈스쿨 교사 회의가 있었는데, 장소가 505호 사모님 집이었다.


"여보. 너무 부담 없다. 너무 좋아"


집을 치워야 하는 505호 사모님을 돕기 위해 대신해서 빵을 사러 간다고 했는데, 과연 애들을 맡겨 놓고 가는 게 정말 도움이 된 건지는 모르겠다. 교사 회의하고 점심도 먹고 옆에 있는 카페도 가고 그런다고 했는데, 다 우리 동네라 아내는 심신의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여보. 얘네 둘 다 안 잤어"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의 낮잠 여부를 전해줬다. '오늘은 일찍 자겠구나'하는 생각만 하고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퇴근하면서 '오늘은 애들 내가 재울 테니 운동 갔다 오라고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가고 있어. 애들은?"

"잘 놀고 있어"

"우리 저녁에 별일 없는 거지? 그냥 집에서 저녁 먹으면 되는 거지?"

"여보. 오늘 나 일정 몰라?"

"뭐? 뭐 있었지?"

"나 수정이 만나기로 했잖아. 아 맞다. 그렇구나. 완전 잊고 있었네. 애들은 알고 있지?"

"응. 얘기했어"

"알았어. 얼른 갈게"


집에 도착했더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미끄럼틀을 타며 놀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이좋게 잘 놀더니 자꾸 서로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말과 행동을 했다. 몇 번의 주의를 줬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결국 둘이 부딪혀서 소윤이가 울음을 터뜨림과 동시에 미끄럼틀은 철거되었다.


"너희 그럴 거면 미끄럼틀 타지 마. 즐거우려고 타는 건데 왜 자꾸 서로 짜증 내고 그래. 오늘은 끝"


시윤이가 뒤집어졌다. 일단 시윤이는 너무 졸린 상태였다. 울다가 나한테 안겼다가 엄마 따라다니다가 혼자 방에 가서 누웠다가. 처음에는 저녁도 안 먹겠다고 버티더니, 누나가 밥 먹고 나서 초콜렛을 한 개 먹기로 한 걸 보고는 자기도 먹겠다고 했다. 앉긴 했지만 시윤이는 거의 밥을 먹지 못했다. 조느라고.


아내는 두 녀석이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나갔다. 아내가 요거트도 먹으라며 꺼내주고 갔는데 요거트 소리를 들은 시윤이가 눈을 부릅 떴다.


"아빠. 나두. 나두"


요거트 먹을 때도 초롱초롱한 눈은 아니었지만, 의지를 발휘해서 끝까지 먹었다. 요거트 먹고 초콜렛도 하나씩. 시윤이는 한 입에 넣으면 입에 거의 꽉 차는 정도의 크기였는데 오물오물거리면서 잘도 먹었다.


"소윤아, 시윤아. 그렇게 맛있어?"


둘 다 열심히 씹느라 대답도 못했다.


"아빠. 이거 온유 옷이에여"

"아, 그래? 왜 온유 옷을 입었지?"

"아, 아까 카페 갔을 때 시윤이가 막 바닥에 앉고 눕고 그래서 온유 꺼 빌려서 입힌 거에여"

"아, 그랬구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는 한, 소윤이에게서도 꽤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다.


"아빠. 우리 조금만 더 놀기로 했으니까 아빠랑 조금만 더 놀 수 있지여?"

"그래"


다 씻고 나와서 5분의 추가시간을 허락했다. 실제로는 10분도 더 놀았다. 10분이 정말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진짜 마음을 다해 열심히 놀면 얼마든지 애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도 소윤이의 선택은 숨바꼭질이었다. 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정할 거면서 왜 하는지 모르겠는 가위, 바위, 보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한 번씩 요상한 춤도 춰주고. 하나도 재미없는 '안 내면 침대 가위 바위 보' 같은 언어유희에도 기꺼이 웃어주고. 발견했을 때는 정말 몰랐던 것처럼 놀라고 발견되었을 때는 진짜 깜짝 놀란 듯 연기하고. 영혼을 담아서 놀다 보면 가끔은 나도 재미를 느낀다. 물론 체력과 마음이 받쳐줄 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다행히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자기 전에 누워서 책 읽을 때도 최대한 고객(소윤, 시윤)의 요구를 반영해서 혼신의 연기와 과장된 목소리를 섞어 읽었다. 덕분에 자기 직전까지 깔깔거렸다. 역시 애들이 퍽퍽 밥 잘 떠먹는 거 하고 떠나가라 웃어대는 것만큼 기분 좋아지는 것도 없다.


다만 막판에 너무 힘을 쏟았는지 나도 함께 잠들었다. 아마 애들도 거의 바로 잤을 텐데 그것도 못 보고 먼저 잤나 보다. 한 시간 정도 자다 깼다. 아내에게 돌아오는 길에 먹을 걸 좀 사 오라고 그랬더니 뭘 사 가야 하냐면서 전화를 했다.


"여보. 뭐 사 가지?"

"그냥. 여보가 알아서"

"이마튼데 뭘 살지 모르겠어"

"살 거 없으면 그냥 와"

"뭘 그냥 와. 배고프다며. 생각해 봐"

"글쎄. 생각이 안 나는데"

"그래? 그럼 뭘 사 가지?"

"아, 그럼 원흥역에 있는 떡볶이?"

"그럴까?"


아내가 사온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다. 탐욕스럽게.


오늘도 탐욕의 끝은 시윤이와의 해후. 요즘 또 계속 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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