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차곡차곡

19.07.28(주일)

by 어깨아빠

눈을 떴더니 이미 9시가 넘었다.


"여보. 오늘도 12시 10분 예배드려야겠지?"

"그래야겠지?"

"애들 먹을 건 있어?"

"아니. 계란밖에 없는데"


"아빠. 계란밥 해주세여. 계란밥"

"아빠아. 계엔밥?(계란밥)?"


냉동실에 있던 만두를 같이 으깨서 볶음밥을 만들어 줬다. 물론 계란도 함께 넣고. 급히 날림으로 만든 아침인데 소윤이, 시윤이 둘 다 너무 맛있게 먹어주니 괜히 미안했다. 심지어 아내도.


"여보. 너무 맛있는데?"


밥 먹고, 자두 먹고, 참외 먹고, 우유 먹고. 아침부터 참 많이도 먹었다.


"이제 얼른 먹고 샤워하자"

"여보. 애들 세수만 시켜도 되지 않을까?"

"안 돼. 식초 냄새나"

"아니야. 어제는 땀 많이 안 흘려서 괜찮아"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머리 쪽으로 코를 갖다 대고는 차례대로 냄새를 맡았다.


"킁킁. 안 나네. 괜찮네"

"그래? 그럼 세수만 하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아빠. 왜 비 와여엉?"

"음, 지금 장마라서"

"왜여어어엉?"

"어. 왜냐하면..."


소윤이가 말을 가로챘다.


"어, 시윤아. 그래야 식물들이 목마르지 않고 물도 마시고 쑥쑥 자랄 수 있거든"

"왜 목 말라아앙?"

"식물들도 물을 마셔야 하니까"


소윤아, 앞으로도 종종 대신 좀 부탁할게.


시윤이는 예배 시간에 두어 번 큰 울음소리를 내서 안고 들락날락했다. 요즘 괜찮더니 오늘은 손가락 빠는 것 때문에(빨지 말라고 했더니) 그리됐다.


아내는 내가 목장 모임 하는 동안 집에 갔다가 다시 온다고 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40분이고 정작 집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안 될 텐데, 아내는 그래도 교회에서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다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시윤이 낮잠도 재우고, 소윤이는 간단히 간식도 먹고 그러다가 목장 모임 끝날 시간에 맞춰 아내와 아이들은 다시 교회로 왔다.


(내) 아빠가 금요일에 생신이라 오늘 동생네랑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중간에 시간이 남아서 마트에 가서 시간을 좀 보내기로 했다. 점심을 굶은 나와 시윤이는 허기를 달랠 겸 빵을 하나씩 사 먹었다. 소윤이는 점심을 먹었지만 빠질 리가 없었고. 내 빵을 다 먹고 소윤이와 시윤이한테 한 입씩 달라고 해봤다.


"소윤아. 아빠 한 입만"

"자여. 아빠 한 입만 먹어여?"


"시윤아. 아빠 한 입만"

"아아아. 시더여어엉"

"아빠 배고픈데"

"아빠. 쪼오오오끔?"


소윤이는 일단 후히 나눠주고 혹시나 많이 가져가면 어쩌나 걱정하고, 시윤이는 일단 거절하고 조금만 나눠준다. 시윤이의 '시' 자가 '베풀 시'인데 먹는 것 앞에서는 다 필요 없구나. 마트에서도 이것저것 시식을 했는데 시리얼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한 컵씩 쥐여줬는데, 시윤이는 받자마자 고개를 뒤로 젖혀서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소윤이는 한 알씩, 한 알씩.


"아빠. 저는 원래 맛있는 건 아껴 먹어여. 그런데 시윤이는 한 번에 다 먹는 게 좋은가 봐여"

"그러게. 그러고 누나꺼 또 달라고 징징댈지도 몰라. 얼른 안 보이게 먹어"


내가 내 동생에게 그랬듯, 아내 오빠가 아내에게 그랬듯, 시윤이도 그러고 있다. 엄연히 할당량이 있는데 먼저 먹어 치우고는 또 안 준다고 떼써서 강탈하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층 별로 다 구경했다. 소윤이도 지겨웠나 보다.


"아빠. 얼른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여"

"맞아. 아빠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약속 시간 되겠다. 조금만 참아"


드디어 시간이 됐고 식당으로 갔다. 엄마, 아빠, 동생네는 먼저 와 있었다.


"우와. 소윤아, 시윤아. 할머니랑 할아버지다. 고모랑 고모부도 있네"


자, 가라.


밥을 다 먹고 나서 바로 위 층에 있는 카페에서 생일 축하 의식을 거행했다. 소윤이는 아침에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그림도 그렸다.


"할아버지. 이거 봐봐여. 이거 제가 편지도 쓰고 그림도 그린 거에여. 이거는 뭐냐면여 무지개 케잌이에여"


아직 글씨 쓰는 데 꽤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데 아침에 정말 오랜 시간 앉아서 열심히 준비했다. 기특한 녀석.


생일 축하와 선물 전달을 마친 뒤에는 소윤이의 쾌락의 시간. 초코 케잌을 종이컵에 떠줬다. 시끄럽던 소윤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윤이도 좋아하긴 했는데 소윤이만큼은 아니었다. 시윤이는 끝이 있고, 소윤이는 끝이 없다.


소윤이는 할아버지 차에 가서 좀 놀아야 한다면서 할아버지를 데리고 먼저 차에 갔다. 시윤이도 같이 갔다. 잠시 후 (내) 엄마에게 전화를 하더니 다른 사람은 가만히 있고 할머니만 내려오라는 지령을 내렸다.


모두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엄마는 화장실에 가느라 아내와 내가 먼저 등장했다. 우리를 발견한 소윤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윤아. 할머니 오실 거야. 걱정하지 말고 더 놀아"


좁은 차 안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소윤이의 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 나와 아내, 동생네는 문 앞에 앉아서 조금 더 얘기를 나눴다. 충분히 놀았는지 소윤이가 먼저 차에서 나와 우리가 있는 쪽으로 왔다.


"소윤아. 다 놀았어?"

"네. 이제 가자여"


아내와 나는 오늘도 피로에 허덕였다. 어디서부터 쌓였는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풀린 적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늘 생각한다. 피로와 살처럼 돈이 쌓이면 얼마나 좋을까. 소윤이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잠들었는데 시윤이는 오늘도 아내를 힘겹게 했다.


한참 시끄럽던 방 안이 잠잠해져서 조용히 들어가 봤더니 모두 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아내는 눈을 뜨긴 했지만 난 알아차렸다. 눈은 떴지만 아직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다는걸. 나랑 짧게 대화도 나눴지만 아내에게 그건 무의식의 시간이었을 거다. 아내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도 컴퓨터 앞에 앉긴 했는데 계속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샤워하고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아내가 깨서 나왔다.


"괜찮아?"

"아, 머리 아파"


여보, 힘내. 이틀만 지나면 휴가야. 휴가라고 애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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