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31(수)
아내와 나는 해냈다. 5시에 일어나서 30분 만에 집을 나섰다. 웬만한 짐은 어제 미리 차에 실어 놨고 가장 큰 짐인 소윤이와 시윤이를 한 명씩 둘러메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복 차림 그대로.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소윤이와 시윤이는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정신을 차렸다. 잠깐 활력을 찾고 뒤에서 종알거리더니 시윤이가 먼저 잠들었다. 소윤이도 시윤이의 뒤를 따랐다.
일찍 출발한 보람이 있었다. 울산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순간도 정체를 경험하지 않았다. [자면=달린다]는 아이 동반 장거리 주행의 대전제에 입각해서 쉴 새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소윤이가 먼저 깼고, 시윤이는 좀 더 잤다. 잠에서 깬 소윤이가 칭얼대거나 힘들어하지 않아서 시윤이가 깰 때까지 더 갔다. 첫 휴식은 군위영천휴게소 였나. 아무튼 260km를 한 방에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아직 9시가 되기 전이었다. 보람찼다.
"소윤아. 우리 휴게소에 가면 아침 먹고 간식도 먹을까? 아이스크림?"
"좋아여"
"아빠. 나두?"
"어. 시윤이도"
"여보. 애들 옷도 좀 갈아입히자"
"그래. 그래야겠다"
아무리 애들이지만 그래도 여행이니 (사진을 위해서라도) 옷은 갈아입혔다.
애들은 가장 만만한(실패 확률이 낮은) 메뉴인 돈까스를 시켜줬다. 왕돈까스와 돈까스오므라이스 중에 고르라 했더니 소윤이가 후자를 골랐다. 아내와 나는 육개장을 시켜서 나눠 먹었다. 어제 만들었던 샌드위치 속(?)이 남아서 그것도 싸 왔다. 냉동실에 있던 식빵도 가지고 와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아내가 이것저것 자잘하게 많이 싸 왔다. 홍삼즙도 먹었다.
"이건 뭐야?"
"응. 힘내자고"
졸리면 언제든 아내에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운전도 예전에 비해 힘들지 않았다. 졸리지도 않고. 애들도 장거리 경험이 많아서 그런가 힘들어하지도 않고 휴게소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쭈쭈바를 하나씩 사줄까 했지만 없었다. 국화빵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반으로 잘라 나눠줬다. 적게 먹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녹아서 여기저기 묻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서였다.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원래 타던 차가 상태가 안 좋아서 장인어른의 차와 바꿔서 타고 왔는데, 활력을 찾은 시윤이는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아빠. 이거 우구(누구) 짜에여?"
"이거? 할아버지 차"
"왜 하부지 차?"
"아, 아빠 차가 상태가 안 좋아서 바꿨어"
"왜 바꺼여엉?"
"아빠 차가 상태가 안 좋아서 위험하거든"
"왜 우엄(위험)해여엉?"
"어, 오래 돼서"
"왜 오래 대여엉?"
이 대화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졸리지는 않았네. 웬일로 아내도 안 자고 끝까지 대화 상대가 되어줘서 울산에 도착할 때까지 아주 무난하게 운전을 했다.
늘 그렇듯 울산에 가면 한나(아내 친구, 애 셋 보유자), 승아(아내 친구, 애 둘 보유자)네 집에 신세를 진다. 이번에는 한나네 집에서 먼저 이틀을 지내기로 했다. 시언이(6살, 첫째)가 쓴 환영의 쪽지가 문 앞에 붙어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시작됐다. 본격적인 육아 지오..아니 휴가가.
소윤이랑 시윤이가 평소에도 뭐 엄청 모범적인(?) 언행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래도 처치홈스쿨을 하면서 적절한 훈육을 통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이번에는 좀 고생스러웠다. 여행이라 들떠서 그런 건지 동향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건지, 마치 처치홈스쿨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노는 거, 먹는 거, 말하는 거 뭐 하나 안 걸리는 게 없을 정도로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시언이네도 처치홈스쿨을 하는 집이라 쉴 새 없이 메아리가 쳤다.
"소윤아, 그거 그렇게 하지 않아요"
"시언아, 동생한테 그런 말 하지 않아요"
"소윤아, 밥 먹을 때 바로 앉아여"
"시언아,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되요"
"시윤아, 아빠가 한 번 말하면 네 대답하고 오세요"
"시아야, 다시 똑바로 대답하세요"
글로 써 놔서 그렇지 직접 들으면 비슷한 억양과 말투의 끝없는 향연이다. 아무튼 소윤이랑 시윤이는 둘이 있을 때보다 유난히 악한(?) 언행을 일삼았다. 작년만 해도 우리가 처치홈스쿨을 하지 않을 때라, 강력한(?) 훈육을 받는 시언이를 보며 좀 안쓰럽기도 했는데 이제 같은 처지가 되었다.
콩국수와 돼지고기로 융숭한 점심 대접을 받았다. 물론 이때도 훈육은 계속되었다. 굳이 나누자면 소윤이는 좀 고집스럽게 하려는 유형이고 시윤이는 깐족대는 편이다. 깐족이 귀여울 때는 귀여운데 열받을 때는 한도 끝도 없이 타오르게 만든다. 기억이 나지도 않을 만큼(워낙 흔한 일이라) 방에 데리고 가고 멈춰 세우고 그랬다.
'아, 모르겠다. 그냥 너네 마음대로 해라'
이렇게 두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었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한나네 애들은 낮잠을 재운다길래 우리 애들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시윤이는 낮잠을 잘 시간이었지만 소윤이는 기대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처치홈스쿨 하는 날만 자고 다른 날은 그런 역사가 없으니까.
"소윤아, 그래도 여기 누워는 있어. 자지는 않아도 눈 감고 좀 쉬어. 이따가 바다에 가려면"
진심이었다. 그걸 미끼로 재우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정확히는 기대가 없었다. 누워서 쉬며 체력을 좀 채우길 바랐다. 시윤이는 누운지 얼마 안 돼서 잠들었다. 소윤이는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러다 한 30분쯤 지났더니 하품을 해댔다.
'혹시, 졸린가'
하긴 졸리긴 했을 거다. 의지로 이겨내 왔을 뿐이지.
"소윤아, 눈 감고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쉬어"
이번엔 의도가 있었다. 기대도 있었고. 소윤이가 잠들었다. 아주 좋은 전개였다. 기분 좋은 바다 물놀이를 하려면 한숨 자는 게 제일 좋긴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에 쾌재를 부르며 아내와 방에서 나왔다.
하준이(한나 남편)는 참 부지런히 움직였다. 외부차량 방문증을 받으러 함께 나갈 때도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나갔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양이었다. 틈틈이 뭔가 버리고 정리했다. 물론 이전에도 알고 있었다. 그냥 알고만 있었다. 그의 행실을 보고 뭔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철이 들었는지 '저런 건 좀 배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공부와 청소는 틈틈이 하는 걸 따라갈 자가 없다고 했거늘. 나도 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애들도 잠에서 깨고 바다에 갈 준비를 했다. 일단 애들을 모두 수영복으로 갈아입혔다. 그다음 나도 갈아입었다. 당혹스러웠다. 역시 알고 있었다. 내 몸뚱아리가 그런 모양새라는 건. 1년 만에 입은 래시가드의 자태가 참으로 처참했다.
"여보. 다들 먼저 나가 있어. 난 가장 마지막에 후다다닥 가서 탈 게. 바다에 가서도 물에서 안 나올래
가슴 운동을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 배를 넣는 건 오래 걸리니까 가슴을 더 빵빵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주전 해변으로 갔다. 승아네도 함께 만났다. 몽돌 해변은 자주 갔어도 물놀이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곧 고삐가 풀릴 것 같은 말처럼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로 갔다. 승아네가 먼저 도착해서 타프를 치려고 준비 중이었다.
"얘들아,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애들을 한 쪽에 정렬시켜 놓고 튜브를 불기 시작했다. 나머지 어른들은 타프 치는데 매달렸다.
'하아, 이거 다 불면 산소 부족으로 쓰러지겠다'
고 생각 하며 후후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데 우리 옆에 텐트를 치고 앉아 있던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저기요. 이걸로(발펌프) 넣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울산 인심 죽지 않았다. 발펌프를 받아서 바람을 넣는데 이게 들어가는 건지 안 들어가는 건지 아리송했다. 한참을 헤맸다. 타프를 치는 쪽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좀 불긴했지만 그렇다고 태풍이 온 것처럼 거세지는 않았는데, 타프는 옅은 바람에도 태풍이 휘몰아친 것처럼 거칠게 무너졌다. 난 텐트 쪽에 영 소질이 없어서 별말도 생각도 보태지 못했다. 아마 돌 밭이라 고정시키기 더 힘든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러다가는 타프만 치다가 돌아갈 판이었다. 가까스로 고정을 하긴 했는데, 개미가 지나가다 툭 건드려도 쓰러지지 않을까 싶었다.
물은 생각보다 너무 차가웠다. 비유하자면 하루 종일 냉장고에 넣어 놓은 생수 정도의 온도였다. 발 담그면 으악 소리가 일단 나오고, 가슴까지 담그면 말문이 턱 막히는. 생각지도 못한 수온에 시윤이는 깜짝 놀라서 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아빠. 나가자여. 나가자여"
"시윤아, 괜찮아. 조금만 더 있으면 그렇게 안 차가워"
라고 말하는 나도 여전히 종아리까지만 잠겨 있었다. 시윤아, 이제 와서 말인데 정말 차갑긴 했다. 시언이(6살)랑 소윤이는 좀 컸다고 제법 잘 놀았다. 애들이 들어갔으니 별 수없이 나도 들어갔다. 한 쪽에 튜브 수영장과 미끄럼틀을 갖춰 놨길래 거기로 가봤다. 물이 좀 따뜻하긴 했는데 확실히 더러웠다. 인구 밀도도 너무 높았다. 시윤이는 아예 내 품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하아. 팔 아프다'
하준이도 둘(시언, 시아. 막내 시온이는 한나에게), 나도 둘, 대성씨(승아 남편, 은율/가을 아빠)도 둘씩 데리고 있으니 행동이 매우 제약을 받았다. 차라리 다시 바닷물에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삼촌. 다시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여"
시언이가 시시했는지 먼저 얘기를 했다.
"그래. 그러자. 자, 얘들아. 다시 엄마들 있는 쪽으로 가자"
다시 돌아온 우리 거처에 타프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긴 보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뭐야? 타프 쓰러졌어?"
"응. 바로 쓰러졌어. 그냥 이렇게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래. 잘 생각했다"
오늘 바다 놀이를 즐거웠다고,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 빠른 타프 설치 포기.
시윤이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돌멩이를 던지며 놀았다. 은율이(승아 아들)도 물을 싫어하는지 들어오지 않았다. 시언이, 소윤이, 시아만 물놀이를 즐겼다. 아, 그리고 승아도. 커다란 튜브에 올라타서 참 즐겁게 놀았다. 소윤이는 조금씩 몸을 떨 정도로 추워하면서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윤아, 춥지? 추우면 잠깐 나갔다 와"
"아니에여. 괜찮아여. 하나도 안 추워여"
너무 차가워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너무 원하니까 강제로 내보내지는 않았다. 좀 더 놀게 하다가 모두를 잠시 내보냈다.
"자, 이제 잠깐 쉬자. 너무 추우니까 나가서 간식도 먹고"
시윤이는 물에 좀 넣어 보려고 해도 파닥거리며 날 타고 올랐다. 참 희한하게도 이럴 때는 엄마보다 아빠를 찾는다. 간식을 먹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나왔다. 6시 이후에는 입수 금지라는 내용이었다. 그때가 거의 5시 50분쯤이었다.
"아빠. 뭐라고 하는 거에여?"
"어, 이제 6시 되면 물에 못 들어간대"
"6시 될라면 몇 분 남았어여?"
"10분"
"아빠. 그럼 나 다시 바다에 들어갈래여"
"그럴래?"
마지막 10분이니 그러라고 했다. 호기롭게 튜브를 타고 물에 들어간 소윤이가 말했다.
"으. 아빠 너무 춥다. 못 놀겠다여. 나갈래여"
소윤이는 곧바로 나왔다. 아내들이 저녁으로 컵라면과 치킨, 떡볶이를 사 왔다. 맛있긴 맛있었다. 원래 지붕 없는 곳에서는 뭘 먹어도 맛있으니까. 물을 다 흡수해서 팅팅 불어버린 컵라면조차도 맛있었다. 맛있긴 했는데 흡사 난민촌이었다.
"아빠. 포크가 없는데 우동은 어떻게 먹어여?"
"삼촌. 포크가 없어여"
"어, 그냥 손으로 먹어"
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에는 치킨, 한 손에는 우동 면발을 들고 열심히 먹었다. 그래, 뭐 즐겁게 먹으면 그게 다 건강이지. 그래도 애초 계획했던 고기 굽기를 포기한 건 정말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 챙기다가 모든 걸 다 잃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기 굽다가 내 마음만 탈 수도 있었고.
저녁 먹고 났더니 해가 져서 급격히 쌀쌀해졌다. 자리를 정리했다.
"딱 좋게 논 거 같아요. 너무 힘들지도 않고"
"그러게. 애들도 충분히 논 거 같고"
하준이 말처럼 딱 좋았다. 느지막한 오후에 와서 두어 시간 정도. 아마 이것보다 더 길어졌으면 체력의 하향 곡선과 맞물려 큰 어려움을 겪었을 거다.
샤워장도 문을 닫아서 씻기지는 못하고 대충 물기만 닦아서 차에 태웠다. 몽돌 해변이라 모래 해변 같은 번거로움이 없는 것도 좋았다. 너무 차서 애들이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좀 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녁을 먹고 와서 애들을 씻기기만 하면 됐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애, 어른 모두 합치면 아홉 명이니 그럴 만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전히 매 순간, 훈육을 부르는 언행을 일삼았다. 아마 평소에 죽으나 사나 보던 누나, 동생이 아닌 다른 또래와 계속 일상을 지내다 보니 그러기도 했겠지만, 내 마음에도 바람이 있었던 듯하다. 그동안 처치홈스쿨에서 배운걸, 처치홈스쿨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잘 실천하는 그런 모습을 바랐는데 그게 전혀 안 되는 것처럼 보이니 더 신경이 쓰인 것 같다. 서른다섯 먹은 나도 배움과 실천의 괴리가 이토록 큰데 애들은 오죽할까 싶지만.
바닷가에서부터 애들 재우기 직전까지 시간을 제대로 못 봤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재우기 전에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와, 벌써 9시가 넘었구나"
9시 30분이었다. 늦은 낮잠을 오래 자긴 했지만 물놀이를 하고 왔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는 게 아내와 나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아내와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물놀이 한 애들도 피곤하겠지만 그 애들과 씨름한 우리는 더 피곤할 거라는 사실. 잠깐 눈 감았다 떠서 시간을 확인했더니 11시가 넘어 있었다. 아내도 나랑 비슷하게 눈이 떠졌는지 몸을 뒤척였다.
"여보"
"어. 여보. 지금 몇 시야?"
"지금? 11시 넘었어"
"진짜? 나갈까?"
"다 자지 않을까?"
슬쩍 나가서 거실을 보고 왔는데 역시나 하준이네도 모두 자고 있었다. 이것이 바다의 위엄이다.
"여보. 자자. 나도 피곤하다"
"그래. 자자"
보통 애들 재우고 밤 시간의 수다가 만남의 낙이곤 했는데, 오늘은 수다고 낙이고 다 필요 없었다. 잠. 오직 잠이 우리의 필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