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휴가의 탈을 쓴 울산 육아 2일 차

19.08.01(목)

by 어깨아빠

애들이 먼저 일어나서 나갔다. 우리 애들은 물론이고 한나네 애들도 일찍 일어났다. 평소에 한나네 애들은 늦게 일어난다고 들어서 당연히 우리 애들이 가서 깨웠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시언이가 먼저 일어나서 우리 애들을 깨우러 왔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민폐를 끼치지 않아서.


하준이는 없었다. 어제까지 휴가였고 오늘은 출근했다. 일하러 간 하준이가 부럽지는 않았지만 남겨진 나도 딱히 승자인 느낌은 아니었다. 아이의 비율이 훨씬 높은 인원 구성상 남자 어른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책무가 막중했다. 남자 어른은 나 혼자였고. 오히려 애들이 너무 많으니까 약간 현실 감각이 상실되는 건지 별로 두렵지는 않았는데 두려웠다. 오타 아니다. 두렵지는 않았는데 문득문득 두려웠다.


정말 막 차려줘도 되는데 한나는 아침부터 야채와 소고기를 넣고 볶음밥을 해줬다. 아내도 나도 앵무새처럼 말했다.


"진짜 뭐 안 차려도 되는데"


그렇게 말한 것치고는 너무 잘 먹었다. 난 일생이 그렇지만. 한나는 아무 간을 안 해서 맛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맛있었다. 난 애들 이유식도 맛있게 먹은 놈이니까.


커피가 너무 간절했다. 아침 먹고 커피를 좀 사러 갈까 했는데 소윤이가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아빠. 나도여. 나도 갈래여"

"아니야. 너무 더워"


일단 본능적인 거부를 하고 난 뒤 찰나의 고민을 했다. 정말 혼자 갈 건지 데리고 갈 건지. 데리고 가면 소윤이만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혼자냐 넷이냐의 고민이었다. 뭐 단지 안에 있는 카페에 가는 거라 별로 힘들 것 같지 않아서 용감한 결단을 내렸다.


"우리 다 같이 커피 사러 갔다 올까?"


애들은 아무리 더워도 일단 밖에 나간다고 하면 무조건 좋은가 보다. 어느 누구 하나 싫다고 하는 아이가 없었다.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시온이만 빼고. 다들 아웃사이더가 랩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신발을 신고 현관문 앞에서 복작거렸다.


아침이었지만 그야말로 휴가철 다운 더위였다. 나는 물론이고 애들도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래도 다들 즐거웠다. 나도 애들도. 넷이서 쪼르르르 줄지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반만 내 애고 반은 남의 애인데도 어찌나 흐뭇하던지. 둘만 데리고 다닐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군대로 치자면 한 달 차이 나는 선후임 관계 같은 시언이와 소윤이를 필두로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휴가를 갔는지 한나가 알려준 카페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즐겁긴 했어도 너무 더워서 어디 멀리 갈 상황은 아니었다. 그것도 애를 넷이나 데리고.


"시언아. 혹시 이 근처에 카페 아는데 없어?"

"모르는데"


내가 6살한테 너무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지긴 했다. 일단 다시 들어가서 애들을 떼어놓고 차를 타고 스타벅스에 갔다 오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들어가기에는 외출의 시간이 너무 짧기도 했고, 애들한테도 뭔가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시언아. 평소에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 주셔?"

"어. 네"

"아. 그래? 사 주셔?"

"네. 너무 더울 때는 사 줘여"


잊을 수 없다. 시언이의 흔들리는 동공을. 애들 중에 제일 커서 다 큰 것 같아도 애는 애다. 귀여운 녀석.


"그럼 우리 슈퍼 가서 쭈쭈바 하나씩 먹을까?"


아이들은 밝은 미소와 흥분으로 반응했다.


"아빠. 나는 막대 아이스크림 먹을래여"

"아, 아니야. 쭈쭈바만"

"왜여?"

"날씨가 너무 더워서 다른 아이스크림은 너무 금방 녹아서 흘러내릴 것 같아. 쭈쭈바는 녹아도 흐르지가 않으니까"

"알았어여"


아파트 단지 분수 앞에 쪼르르 앉아서 쭈쭈바를 빠는 넷의 모습을 보니 어찌나 귀엽고 흐뭇하던지. 다둥이 부모의 낙이 이런 걸까 싶었다. 시언이부터 시윤이까지 다들 쭈쭈바를 남김없이 먹었다.


애들을 집에 데려다 놓고 다시 나와서 차를 타고 커피를 사러 갔다. 근처에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이 있었는데, 차 안에서 커피를 받을 때 강력한 충동이 일었다.


'저 안에서 잠시라도 머물고 싶다'


아내는 커피 사러 나갔다 오면 기본 30분이던데, 난 왕복으로 따져도 15분도 안 돼서 복귀했다.


오늘은 어디를 갈 건지 명확히 정하지 못해서 어른들끼리 의견을 나눴다. 시언이는 쭈쭈바 먹을 때 물어봤더니 놀이터, 동물원을 얘기했다. 너무 더워서 밖에 있는 건 안 될 것 같다고 답해줬다. 날씨가 워낙 뜨거워서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 어딘가를 가거나 그냥 물놀이하거나 정도의 선택지 밖에 없었다. 결국 물놀이장에 가기로 정했는데 하준이가 없는 데다가 한나는 시온이(셋째, 11개월?)를 전담해야 하고 나도 왠지 시윤이를 달고 다니게 될 것 같았다. 시언이랑 소윤이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놀겠지만, 난 물에서 노는 아이를 내 시야 밖에 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과연 번개같이 사라질 시언이와 소윤이를 항상 눈에 담으면서 시아, 시윤이를 챙기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두려웠다. 대안은 없었다.


한나네 애들은 무얼 하고 있든 간에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서 한나가 자라고 하면 잔다. 밤잠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해가 중천에 떠서 이글이글 타오른 대낮을 말하는 거다. 오늘도 낮잠을 잔다길래 우리 애들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기대를 잔뜩 품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자지 않을까'


소윤이는 자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랑 내가 잠들었다. 자다 깨보니 소윤이는 없었고 거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한나랑 시온이랑 노는 모양이었다.


모두의 낮잠 시간이 끝나고 다시 물놀이 준비를 했다. 어제 이 시간쯤에도 비슷한 행위를 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차례대로 래시가드를 입혔다. 모든 채비를 마치고 잔뜩 신이 나서 집 안 여기저기를 날뛰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아. 물놀이. 재밌겠다아"


일종의 자기 최면이랄까. 언어로 의식을 지배하고자 입 밖으로 각오를 다지는데 탄식이 섞여 나왔다. 실제로도 그렇고. 난 물놀이 좋아한다. 수영은 못하지만 물에 들어가는 건 즐겁다. 즐겁지만 애들이랑 함께하는 건 또 마냥 즐겁기만 할 수 없고. 뭐 그런 거지.


한 차에 다 탈 수도 없어서 택시를 한 대 불렀다. 한나가 시온이와 시언이, 소윤이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 시윤이와 시아는 내 차에 태웠다. 작년에도 갔었던 다전물놀이장에 갔는데 사람이 많긴 했지만 그렇다고 발 디딜 틈 없이 바글거리지는 않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매트나 돗자리가 하나도 없어서 그냥 맨바닥에 앉았다.


튜브에 바람 넣고 애들 조끼 입히고. 드디어 입수. 시윤이는 어제와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물 온도가 적당하니 전혀 거부가 없었다. 오히려 가장 신이 났다. 다섯 명의 아이의 능력치가 모두 다르다는 게 가장 곤란한 점이었다. 시언이는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뛰어다니고 싶고 또 그게 가능하고, 소윤이는 오빠 따라다니고 싶은데 민첩성과 운동 능력이 좀 모자라고, 시아나 시윤이는 능력치도 안 되면서 자유분방하고 싶고, 시온이는 엄마 품을 벗어날 수 없고. 일단 시윤이는 나에게 붙었고 아내는 한나 옆에서 시온이와 시아를 맡았다. 시언이와 소윤이는 최대한 시야에 두려고 했는데 잠깐 고개 돌리면 사라지고, 잠깐 한 눈 팔면 없어지고 그랬다. 수중 육아 두려움증이 있는 나는 정신이 없었다. 계속 부르고, 찾고. 한나 말로는 시언이는 어느 정도는 혼자 둬도 괜찮다고 했다.


시언이는 저 멀리 있는 워터 슬라이드를 타고 싶어 했다. 아무리 시언이라도 거기 보내려면 어른 한 명이 따라가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남은 아이들을 한나와 아내가 모두 관리해야 하고,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한나가 시언이를 설득했다.


"아빠 퇴근하고 오시면 그때 가자"


나중에는 잠든 시온이를 성인용 튜브 속에 쏙 넣어서 우리 자리에 두고 왔다. 애 셋이 되면 많은 걸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걸 배웠다. 힘들긴 했지만 재밌었다. 애들도 즐거워하고. 하긴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한 것도 아니고, 고작 서너 시간이었다. 시온이부터 시언이까지 다 각자의 방법대로 물놀이를 즐겼다.


마지막 물놀이 시간이 시작됐는데도 하준이가 도착하지 않았다. 워터 슬라이드를 강렬히 원하고 있는 시언이가 큰 상심을 격을 수도 있었다. 시언이를 데리고 가려는데 소윤이가 자기도 타고 싶다며 따라붙었다. 110cm 이상만 탑승이 가능했는데 소윤이는 110cm가 되지 않았다. 일단 데리고 갔다.


"아, 저기 얘는 혹시 절대 못 타나요?"


110cm 기준에 한 뼘 정도 모자랐다.


"몇 살이에요?"

"다섯 살이요"

"하아"


고민하는 눈치였다.


"평소에 잘 타기는 하는데"


안전 요원이 소윤이에 물었다.


"타고 싶어?

"네"


소윤이는 간절한 눈빛을 담아 대답했고, 탑승을 허락받았다.


"아, 그럼 얼른 티켓 사 올게요"

"그냥 태우세요"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냥 공짜로 한 번 태워주시는 것 같았다. 소윤이는 줄을 세워두고 시언이를 데리고 표를 사러 다녀왔다.


"시언아, 얼른 뛰어"

"네, 삼촌"


꽤 높은 곳에서부터 떨어지는 거라 막상 올라가면 소윤이가 겁을 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주 잘 탔다. 오히려 너무 가벼우니까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빠. 또 타고 싶어여"

"아, 소윤아. 소윤이는 원래 못 타는 건데 저기 삼촌이 그냥 한 번 태워주신 거야. 또 타기는 어려워. 알았지? 시언이 오빠는 여기서 이거 타라고 하고 우리는 가서 물놀이하자. 이제 여기 곧 끝난대"


안전 요원이 얘기했다.


"또 태우세요"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소윤아. 삼촌이 또 태워주신대"


그 무렵 하준이가 도착했다. 아주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거기 관리자 정도 되는 줄 알았을 거다. 하준이도 안쓰러웠다. 고된 격무 끝에 퇴근한 곳이 물놀이장이라니. 곧 끝날 시간이라 뒷정리를 위해 출동했다.


오랜만에(?) 아내를 만났다. 아내가 무용담을 펼쳐놨다.


"여보. 하아. 장난 아니었다. 화장실을 몇 번을 다녀왔는지. 시아는 똥도 싸고"

"고생했네"


시윤이가 갑자기 물 밖으로 나가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왔구나'


"시윤아. 똥 쌌어?"

"아아아아아앙"


그러면서 자꾸 도망 다녔다. 아니 내가 깨끗하게 닦아주는 것까지 사정하면서 쫓아다녀야 되나. 도망치는 시윤이를 붙잡아서 바지를 벗기고 뒤처리를 했다. 아내가 원래 쓰던 물티슈를 잃어버려서 다른 걸 임시로 가져왔다고 했는데 어찌나 얇던지. 그것의 느낌이 손끝에 그대로 전해졌다. 더군다나 내가 예상한 범위 밖에도 묻어 있어서 손에도 묻고. 역시 난 그냥 물로 씻기는 게 좋다.


샤워장이 없어서 간이 샤워장(물만 나오는)에서 대충 씻겨서 차에 태웠다. 짐이 한가득이었지만 하준이가 있어서 한결 나았다. 그래, 하준아. 그러고 보니 참 보고 싶었다. 내가 오늘 겪어보니 난 아무래도 아직 아닌 것 같아. 난 일단 둘이라도 잘 건사할 게. 대단하다, 하준아 한나야.


가는 길에 한나네가 곱창전골을 포장해서 사 갔다. 아내와 하준이는 곱창류를 잘 안 먹어서 찜닭도 한 마리 포장해 갔다. 부지런히 애들부터 씻기고 나도 씻고, 아내도 씻고. 늦은 시간에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훈육은 끊이지 않았다. 밥 먹다 말고 방에 데리고 들어가고 회초리 들고. 얘들아, 아빠도 이골이 난다. 귀에서 환청이 들려.


"~ 해요"

"~하지 않아요"


길고 긴 하루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들을 재우기 위해 흩어지기 전, 아내가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은 잠들지 말자"


다행히 오늘은 모두 살아남았다. 어두컴컴한 상태를 유지한 채 주방 식탁에 둘러앉아 수다의 장을 열었다. 하준이는 내일도 출근이었다. 하준이는 내일을 위해 먼저 자러 들어갔다. 나머지는 그 뒤로도 좀 더 대화를 나눴다.


"내일은 뭐해?"

"텃밭에 간다니까"

"텃밭? 아, 그래?"


내가 들었는데 까먹은 건지 아예 못 들었는지, 아무튼 모르고 있었다. 텃밭이라. 물과 흙을 넘나드는 엄청난 휴가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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