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03(토)
자연 채광으로 인해 거실이 어느 정도 밝아져 있었고,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애들이 깨서 소란스러웠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애들은 모두 깬 것 같았고 아내도 일어나서 앉아 있었다. 얼핏 가을이의 모습도 보였다.
'이상하다. 대성 씨가 가을이(승아네 둘째, 13개월)는 아빠한테만 간다고 했는데'
억지로 잠을 더 청하려 했지만 거실이라 아이들의 움직임과 소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더 자"
참으로 덧없는 권유였다. 나도 일어났다.
"아빠. 일어나여엉"
"그래, 시윤아. 잘 잤어?"
"네에"
"아빠. 아빠"
"어, 소윤이도 잘 잤어?"
"네"
시윤이의 뺀질거림과 땡깡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소윤이는 평소에 비해 마음이 좁아졌다고 해야 할까, 욕심이 늘고 배려가 좀 줄긴 했어도 잘못을 지적하고 훈육하면 어쨌든 받아들였다. 훈육의 횟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받아들이는 건 변함이 없었다. 시윤이는 그게 아니었다. 훈육의 횟수도 늘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날도 더운데 아침부터 어찌나 말을 안 듣고 반항을 하는지.
아침 먹고 나서 설거지라도 하려고 폼을 잡았는데 등 뒤에서 대성 씨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한테 단지 안에 있는 분수에 나가보자고 말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격렬하게 환영했다. 밖은 무더웠다. 하긴 예전에도 대성 씨는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화동에 살 때 집에 놀러 왔는데, 심지어 그때는 주일이었다. 아침부터 애들을 데리고 밖에 나갔다 오겠다고 자처했다. 오늘도 그랬다. 나도 따라나섰다.
엄청 나가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나가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아침이었지만 뜨거웠다. 안타깝게도 바닥 분수는 잠잠했다. 가동 시간표를 보니 주말에는 1시부터 6시까지였다. 그때가 11시 조금 넘었을 때였으니까 당연히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단지 화단 주변에서 좀 놀았다. 가을이도 열심히 바닥을 기어 다녔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범벅이 될 정도로 더웠다. 애들은 더위를 견디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 건지 그 더위에도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슬슬 정리가 필요했다.
"얘들아, 그럼 우리 쭈쭈바 하나씩 먹고 들어갈까?"
당연히 열화와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소윤이, 은율이(승아네 첫째, 5살), 시윤이는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면서 찬양을 불렀다. 소윤이와 은율이는 제법 박자와 음정을 맞춰서 불렀고, 시윤이는 마음은 있으되 입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늘에 앉아 쭈쭈바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그걸 보고 싶어서 자꾸 사주나 보다. 인스턴트와 불량식품을 멀리해야 하는 처치홈스쿨 정신에는 위배되지만, 난 어려서부터 약간의 일탈을 일삼았고 오히려 그게 아예 포기하지 않는 윤활유 역할을 하곤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서 나와 같은 뺀질거림이 보일 때마다 지적하고 가르치면서도 뭔가 죄책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다 나에게서 물려받은 거니까. 아무튼 쭈쭈바 시간은 여러모로 저비용 고효율 행복의 시간이다.
승아네도 낮잠 시간이 있었다. ㄹ뭐 어제의 복제판이었다. 시윤이는 잤고, 소윤이는 안 잤고. 그래, 첫날 잔 게 특이한 일이었지. 함께 누워 있다가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소윤이는 없었다. 작은방에서 소윤이 목소리와 대성 씨 목소리가 들렸다. 시체처럼 누워 있기를 강요하는 아빠의 곁을 떠나 언제나 다정하게 맞아주는 삼촌 곁으로 갔나 보다.
오늘은 바다에 갔다. 울산 처치홈스쿨의 몇 가정이 일산 해수욕장에서 만나는데 우리도 함께 하기로 했다. 아빠들은 몇 명이나 오는지 물어봤는데 확실한 답은 없었다. 나와 대성 씨, 하준이, 거기에 한 두어 명 더 올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여러 가정이 모이는 거고 우리는 깍두기 느낌이니까 별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소윤아. 오늘 가는 데는 모래 해변이야. 재밌겠지?"
"아빠. 그럼 모래놀이도 할 수 있어여?"
"당연하지"
서너 가정이 모여 있었다. 그래도 지난 주전 바다하고는 다르게 거대한 타프가 견고히 쳐져 있었다. 소윤이는 바로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시윤이만 데리고 바닷가에 들어갔는데 주전 바다보다는 물이 따뜻해서 시윤이도 즐거워했다. 시윤이를 튜브에 태워서 이리저리 흔들며 놀아줬다. 다른 집의 아이들 몇몇은 다른 아빠가 만들어 준 튜브 기차를 타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잠시 후 그 튜브 기차의 가장 앞 튜브의 줄이 내게 건네졌다. 애들 네댓 명을 태워서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물속이라고 해도 애들 무게가 이렇게 무거운가 싶어서 봤더니 두어 명의 엄마도 맨 끝에 매달려 있었다. 나중에는 나의 아내도 매달렸다.
힘들지는 않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나가 있느니 물속에서 시원하게 거니는 게 차라리 나았다. 애들도 즐거워했고. 사실 그냥 이리저리 아주 천천히 끌기만 한 건데 아직 애들이 어려서 그런가 익스트림 스포츠보다는 그런 유람형 놀이를 더 좋아했다. 물속에서 끌 때는 괜찮았는데 물 밖으로 나오니 격렬한 노동을 마쳤을 때의 묵직한 무언가가 온몸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그 뒤로는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시윤이는 겁도 없이 혼자서 막 물가로 들어갔다. 시윤이는 계속 물가에서 놀았고, 소윤이는 모래에서 놀았다.
옥수수, 수박, 떡볶이, 치킨, 피자 등을 시켜서 먹었다. 사람도 많고 음식도 많아서 굉장히 어수선했다. 더군다나 모래 해변이다 보니 더 많은 행동의 제약이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모래가 음식으로 들어가고 그랬다. 애들이 위험에 빠져서가 아니라 모래가 잔뜩 묻은 아이들이 음식 위로 지나다닐 때, 부모들의 크게 놀라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시언이랑 소윤이는 손에 묻은 모래를 씻으러 몇 번이나 바닷물에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르겠다. 음식 먹다가 자기도 모르게 땅에 손을 짚으면 여지없이 지시가 떨어졌다.
"저기 가서 손 씻고 오세요"
소윤이도 시윤이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치킨과 피자를 제법 먹었다. 사실 어른들이 더 많이 먹긴 했다.
샤워장이 있기는 한데 온수가 나오지는 않고 그저 옷을 갈아입을 탈의실이 있는 게 간이 샤워장(야외) 과의 차이였다. 모래 해변이라 씻기는 게 좀 더 번거로웠다. '좀 더'라고 하기에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강시윤, 이리 와. 얼르으은"
"소윤이도오오오"
심지어 시윤이는 또 똥을 쌌다. 아니 물 닿으면 배변 욕구가 생기는 거니. 오늘은 아내에게 맡겼다. 여보, 부탁해. 오늘은 내 손을 지켜주고 싶어. 똥 때문에 원망이 터져 나오려고 할 때마다 시윤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변을 몇 주씩 못 봐서 걱정하다가 대학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려고 할 때마다 한 방씩 싸 주는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이렇게 똥돌이가 된 걸 감사히 생각한다.
아내와 나는 대충 흙만 털어내고 차에 탔다. 하준이네 유모차에는 애들은 안 타고 각종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 쓰레기, 일반 쓰레기를 비롯한 짐이 실려 있었다.
'무사히 돌아가. 우리 꼭 살아서 보자'
"소윤아. 재밌었어?"
"네"
"시윤이도?"
"네에"
집 주인보다 먼저 집에 도착해서 애들을 씻겼다. 소윤이부터 차례로 씻겨서 시윤이도 씻기려는 찰나에 승아네도 도착했다. 대성 씨가 가을이를 안고 급히 화장실로 들어왔다. 가을이 옷과 등에 똥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내가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아내와 대성 씨가 가을이를 들고, 똥을 닦고 그랬다.
대성 씨와 가을이가 나가고 나도 시윤이를 마저 씻겨서 내보냈다. 아내가 다시 들어왔다. 가을이의 옷을 들고. 내가 씻는 동안 아내는 옆에서 가을이의 똥 묻은 옷을 초벌 빨래를 했다. 나의 여름휴가는 물놀이와 노동이었다면 아내의 여름휴가는 똥이었다. 여보의 손에서 떠나지 않는 그 구수한 향기를 난 존경해.
애들 저녁을 먹이고 들어왔기 때문에 바로 재울 수 있다는 게 크나큰 위안이었다. 아내는 애들이 바로 잠들 걸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니 열이 받았다. 옆에서 진정시키려 해도 그런 날이 있는 거라며 매우 까칠하게 받아쳤다. 어찌 됐건 모두 재우고 식탁에 앉아 커피 한 잔씩과 울산의 초특급 빵 맛집이라는 곳에서 사 온 빵을 꺼내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집안일에 관한 이야기였나 아무튼 대화를 나누다 나의 얘기에 아내가 빈정이 상했는지 표정이 싹 바뀌었다. 뭐 별로 그럴만한 이야기도 아니었는데(내 생각에) 정색을 하더니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아주 순간적인 냉각이었지만 아마 승아와 대성 씨도 감지했을 거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말이나 일이 아니었다. 나도 할 말이 많았지만 아꼈고) 아내가 피곤했거나 아까 애들 재우다 차오른 짜증의 기운이 남아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모르는 체하고 대화를 이어 나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졸기, 아니 자기 시작했다. 앞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얘기하다가 스르륵 눈을 감고는 졸았다. 조는 아내를 보고 나머지 세 명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파했다.
옛 선인들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왜 그리도 목놓아 외쳤는지 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