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18.09.27(목)

by 어깨아빠

긴 연휴를 보내고 맞이하는 첫날. 출근하기가 죽도록 싫었지만 아마 아내는 나보다 더 했을 거다. 육아 자유지대에서 다시 육아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니까. 그래도 아내가 505호 사모님과 함께 진관사에 가기로 했다길래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집에서 애들이랑 지지고 볶는 것보다는 누구라도 만나서 어디라도 나가는 게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아내, 소윤이, 시윤이 셋이 싱크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뻥튀기를 먹고 있는 사진도 도착했다. 다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빠 우리 지금 안전한 뻥튀기 먹고 있어여. (아니 소윤아 안전한이 아니라 앉아서-아내 목소리) 아빠 우리 앉아서 뻥튀기 먹고 있어여"


소윤이 목소리가 녹음된 음성 메시지도 받았다. 첫 회사 다닐 때 워커홀릭 부장님이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 후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자,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뭔지 알아? 전날 미친 듯 술을 먹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해서 하던 대로 일 하는 거. 이게 프로야. 알았지?"


다들 프로인가 보다. 아내는 프로 육아인. 소윤이는 프로 피육아인. 시윤이는 프로 피육아인2. 나는 프로 가장.


진관사에 간다던 아내는 진관사에는 가지 못하고 롯데몰에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505호 사모님이 뭐 살 게 있어서 잠깐 들렀는데 아이들이 나갈 생각을 안 하고 잘 놀았다. 잘 노는 아이들 지켜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포기하지 못하겠어서 결국 진관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롯데몰에 눌러앉기로 했다.


퇴근해서 문을 여니 불이 다 꺼져 있고 아무도 없었다. 뭐지 이 묘한 쾌감과 안락함은. 왠지 505호(하람이네)에 가 있을 것 같았다.


'곧 오겠지'


굳이 어디인지 전화하지 않았다.


[나의 퇴근을 그들에게 알리지 말라]


안 그래도 비염이 너무 심해서 오후에 약을 하나 먹었더니 집에 오는 길에 졸려서 고생을 했는데 마침 아무도 없다니. 잠깐 숨 돌릴 틈이 생겼다. 내가 생각한 '곧(약 20여분)'을 넘겨도 소식이 없길래 먼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 이상 연락을 하지 않으면 너무 속보이니까.


"여보"

"어, 여보 퇴근했어?"

"어, 했지, 505호야?"

"어, 지금 애들 밥 먹이고 있어"

"거기서?"

"어. 내가 반찬 조금 싸 왔거든. 이제 거의 다 먹었어. 얼른 갈게"


아니야 여보. 얼른 오지 않고 더 천천히 와도 돼.


슬프게도 정말 금방 왔다. 몸이 너무 노곤해서 반갑게 뛰어들어오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맞이하는 게 버거웠지만 그래도 저녁을 다 먹인 덕분에 남은 과정이 별로 없어서 그건 좋았다. 덕분에 육아 퇴근도 무지하게 빨랐다. 후다닥 씻겨서 재웠더니 7시 30분. 아내는 시간도 이른데 운동하고 나서 카페라도 다녀오라며 부추겼다. 밀린 일기를 집중해서 쓰기 위해 그러기로 했다. 운동하고 카페로 옮기면서 뭐하냐고 전화했을 때 소파에 앉아 빈둥거리고 있다고 했다. 프로 육아인이라도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는지 집에 와 보니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서 자라고 깨웠다. 양치만 하고 들어가겠다더니 밍기적거리며 눈에 보이는 과일이며 간식거리를 먹기 시작했다.


"여보. 얼른 양치하고 들어가"

"알았어. 이것만 먹고"


아니나 다를까. 잠에서 깬 소윤이가 엄마를 불러댔고 아내는 양치를 하지 못하고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소윤이가 갑자기


"으아아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매트리스에서 떨어지거나 어디 부딪힌 소리는 아니었다. 그 이후 소윤이는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방 안에서 아내랑 뭐라고 얘기도 하고 중간에 목마르다고 나오고 쉬 마렵다고 나오고. 결국 열받은 아내도 한 번 나오고. 들어가서 한 시간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소윤이한테 시달렸으니 잠결에 열받을만도 하다. 아내에게 들어보니 소윤이가 무서운 꿈을 꿨는지 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깨고 나서


"엄마, 우리 집에 병아리가 들어올 수 있어?"


라고 물었단다. 추측해보건대 꿈에서 갑자기 병아리가 나타나서 놀라는 꿈을 꾼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소윤이는 나까지 호출했다. 대충 정리하고 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 내 옆에 누워여"

"소윤아. 지금 매트리스에는 자리가 없어. 여기 바닥에 누울 게. 여기도 소윤이 옆이잖아"


그 뒤에 뭐라고 희미하게 중얼거렸는데 잠결이었는지 그대로 잠들었다. 그런 소란 중에도 시윤이는 미동 한 번 없이 잘 잤다. 마지막이 조금 힘들기는 했어도 연휴 후 첫 날을 무사히 잘 마쳐서 다행이다.


우리는 모두 프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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