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28(금)
연휴 후유증 중 하나인가 비염이 폭발했다. 어제오늘 콧물이 주륵주륵 흐르는 게 도무지 멈추지를 않았다. 약을 먹고 해봐도 소용없었다. 피곤하기도 엄청 피곤하고 졸리기도 엄청 졸리고. 늙어가나 보다.
점심시간이 지났을 무렵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밖에 나간 아내가 동영상을 하나 보냈다. 나오기 전까지 내내 집에 있었는데 한 숨도 자지 않은 시윤이가 유모차에 앉아서 헤롱 거리고 웃으며 잠드는 동영상이었다. 아내는 그 길로 카페에 갔다. 카페 한 편에 작은 키즈룸이 있는, 예전에 몇 번 가봤던 곳이었다. 시윤이가 잠들었으니 누구보다 좋아할 사람은 소윤이었다. 시윤이는 1시간 좀 넘게 잤고 소윤이는 정작 키즈룸에서는 별로 안 놀았다고 했다. 이케아에서 파는 강아지 인형 두 개가 있었는데 그게 무섭다면서 잘 안 들어가려고 했단다. 하여간 겁은 많아 가지고.
오후에는 또 하람이네를 만났다. 같이 동네 어느 가게에 가서 소윤이 머리핀을 하나 골랐는데 머리핀이 부착되어 있던 종이 모서리에 소윤이 눈이 긁혔다면서 아내가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오른쪽 눈 흰자 부분에 좁쌀만 한 상처(벌겋게 변색된)가 보였다. 안과에 가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소윤이가 처음에는 많이 울다가 좀 지나고 나니 아프지도 않고 괜찮다고 해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퇴근해서 살펴보니 바로 안과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고 혹시 내일 심해지거나 소윤이가 통증을 호소하면 가봐도 될 것 같았다. 검은 눈동자가 아니라 흰자 쪽이라 다행이었다.
오늘도 퇴근했더니 아무도 없었다. 아마 또 하람이네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바로 연락하지 않았다. 어제처럼 약 20분 경과 후 전화를 하려고 통화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는 집?]
역시 20분이 제한선이다.
"여보"
"어. 또 하람이네 집?"
"어. 오늘도 밥 먹이고 가려고"
"그래. 알았어"
"이제 거의 다 먹었어. 얼른 갈게"
아니야 여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러네. 참.
금방 사라질 빈둥거림의 여유를 즐겼다. 띠디디디디디디 띠로리. 왠지 모를 실망감과 슬픔을 안겨주는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아빠아아아아아아"
"압빠"
1호기, 2호기의 음성이 차례로 들렸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아무리 도어락 소리가 슬프게 들려도 곧이어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웃음소리는 모든 걸 잊게 만든다. 날 반겨준다는 그 자체가 참 행복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소윤아. 소윤이는 이제 씻고 옷 갈아입고 아빠 교회 가실 때 인사하고 바로 자러 들어가는 거야"
아내는 홀로 맞이할 독박 육아의 밤을 삭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회 갈 준비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소윤이가 쉽게 놔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많은 이별의식을 반복해서 하며 시간을 끌었다.
"소윤아. 아빠 늦어. 이제 갈게"
"아빠. 내일 만나자여"
차에 타서 열심히 가고 있는데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아아"
울먹거리고 있었다.
"어. 소윤아 왜?"
"아빠. 보고 싶어여어"
"아. 그래? 아빠가 이따 교회 갔다 오면 소윤이 옆에 누울게. 그러니까 지금은 좀 참고 엄마랑 같이 자. 알았지?"
"네에"
"울지 말고. 알았지?"
"네에"
"그래. 소윤아 잘 자"
"네에. 아빠 끊을게여"
확실히 나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는 했다. 이건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가히 지상 최고의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현재 내 삶에서 나를 보고 싶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소윤이가 유일하다. 아내야 뭐 맨날 보니까 보고 싶을 틈이 없을 테고 (아 참. 아내는 내 퇴근시간이 임박하면 그렇게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는 하다) 기껏해야 우리 엄마 아빠일 텐데 그런 낯 뜨거운 표현은 하지 않으니 들을 일이 없고. 그러니 소윤이 뿐이다. 소윤이라서 행복하고 소윤이 뿐이어서 행복하고. 머잖아 시윤이도 합류하겠지?
예배드리고 아내에게 전화해보니 아내는 깨어 있기는 했는데. 목과 어깨의 통증에서 비롯된 두통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들어가서 자라고 떠밀었다. 아내가 들어가고 나도 노트북을 폈는데 금방 졸음이 쏟아졌다. 아마 앉아서 한 30-40분 졸았던 것 같다.
'에이. 오늘은 안 되겠다'
노트북을 접고 들어가서 자려다가 잠시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본다는 게 거의 1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리석다. 그럴 거면 차라리 일찍 자고 피로나 좀 풀지. 무슨 유익이 있다고 앉아서 동영상이나 보고 있을까. 쓸데없는 한량 짓을 마치고 방에 들어갔다. 요즘은 이때가 또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모습이 자고 있는 모습이라는데 그걸 둘이나 볼 수 있으니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 둘 도 없는 천사 같은 얼굴을 번갈아 보고 손도 만져 보고 발도 만져 보고 얼굴도 쓰다듬어 보고 조심스럽게 뽀뽀도 해보고. 샤워시키지 않은 날에는 땀냄새 비스무리한 쿰쿰한 냄새도 나고. 잘 때 가장 예쁜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루 종일 팔딱거렸으니 이렇게 잠잠한 시간도 있어야지.
아무튼 이 기분, 마음 잘 이어가서 내일 아내한테 시간 좀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