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30(주일)
둘 다 너무 일찍 잤는지 새벽같이 일어났다. 정말 새벽부터. 한 6시 30분부터 일어나서 소윤이는 나와 아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일어나라고 매달리고. 시윤이는 누나 따라서 이쪽저쪽 잠 못 자게 방해하고. 잠깐 둘이 나가서 노는가 싶더니 금방 다시 들어왔다. 물론 실제로는 꽤 긴 시간이 지났을 수도 있지만 잠결에 느끼기에는 몇 분 같았다. 아내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여보. 잘 가. 파이팅'
푹 잔 것도 아닌데 엄청 늦게까지 안 일어나고 누워 있었다. 아내는 애들 밥도 먹이고 씻기기까지 했다. 옷만 입히면 바로 교회에 갈 수 있는 상태였다. 물론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일찍부터 일어난 바람에 시윤이는 교회에 도착했을 때 조금만 더 안아주면 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내가 시윤이를 아기띠로 안았고 역시 순식간에 잠들었다. 요즘 강해진 체력을 과시하고 있는 소윤이는 전혀 졸린 기색 없이 예배 시간을 잘 보냈다. 예배드린 뒤 밥까지 먹고 나니 조금 졸려하기 시작했다. 점심 먹은 뒤의 일정은 이랬다.
목장 모임
축구
축구모임 저녁식사
시간으로 따지자면 대략 6시간.
"여보. 나 저녁은 안 먹고 와도 되는데"
"아니야. 먹고 와. 맨날 하는 것도 아닌데"
아내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얘기했다.
"여보. 축구 매주 해도 돼"
"진짜?"
"어. 이제 적응된 것 같아"
"그래도, 힘들잖아"
"괜찮아"
역시 우리 아내는 호방하구만. 옳다구나 하고 덥석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절은 하지 않았다.
"여보는 오늘 뭐하게?"
"그러게"
일단 윌 3호점으로 갔다. 평소에는 2호점에 자주 가는데 아내가 3호점에 가자고 했다. 역시나 시윤이는 들어가자마자 밖으로 나가자고 떼쓰더니 기어코 자기 뜻을 이뤘다. 주문한 커피가 채 나오기도 전부터 밖으로 끌려 나갔고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힘듦과 짜증이 몰려왔지만 그래 봐야 20-30여분 후면 자유의 몸이 될 터이니 잘 참고 즐겁게 놀아주기로 했다. 이때쯤 소윤이도 졸음이 가득 차서 차에 태우면 금방 잠들 것 같았다.
"나 교회에 내려주고 차라리 집에 가지 말고 그냥 계속 드라이브 해"
"진짜 그럴까 봐"
소윤이는 카페에서 교회까지 가는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잠들었다가 내가 내리는 소리에 살짝 깼다.
"소윤아. 아빠 목장 모임하고 축구하고 올게. 이따 만나자"
"아빠. 이따 만나여"
아내에게도 건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대장정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엔터테인먼트 대장정, 아내에게는 독박 육아 대장정.
목장 모임하고 축구도 한참 하고 나서 아내와 연락을 했다.
"여보. 뭐해?"
"나 파주 왔어"
역시 아내는 만만한 친정을 택했다. 소윤이는 나 내리고 나서 파주에 가는 동안 눈을 감고 있기는 했는데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했다. 내려서도 한참 동안 말 한마디 없이 멍한 상태로 앉아 있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그랬다는 걸 보면 피곤하긴 엄청 피곤했는데 어쩌다 보니 잠들지 못했나 보다. 잠깐 영상통화도 했는데 그때는 소윤이, 시윤이 모두 엄청 기분 좋게 잘 놀고 있었다. 아내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한 후 마음은 더 홀가분해졌고 더 격렬하게 아내와 아이들을 잊고 열심히 공을 찼다. 축구 끝나고 저녁 먹으러 이동할 때쯤 다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아직 축구하는 중?"
"아니. 이제 밥 먹으려고 왔어"
"아 그럼 몇 시쯤 끝나나? 8시쯤 되나?"
"아니. 한 7시 30분이면 끝날 걸"
"어설프게 출발하면 애들 잠들까 봐 아예 씻겨서 좀 더 있다가 출발할까 하고"
"아 그래. 그게 낫겠네. 그렇게 해"
회식을 마치고 다른 집사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나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고 중간에 애들은 이미 곯아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내가 도착할 때쯤 잠든 두 녀석을 옮기기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시윤이는 아내가, 소윤이는 내가. 둘 다 무사히 눕혔다.
"여보. 나 수요일에도 축구할까?"
"수요일?"
"어. 아니 수요일 밤에도 축구를 하나 봐. 그런데 우리 집 근처에서 하더라고. 7시부터 11시까지. 가까우니까 난 애들 일찍 재우면 휙 갔다 와도 되니까"
아내가 막 웃었다. 어디 한 번 계속 얘기해보라는 식의 웃음이었다. 굴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니. 뭐 어차피 애들 재우면 헬스장 가고 그러니까 그 대신 가는 거지 뭐. 애들 안 자는 날은 못 가는 거고"
최대한 심드렁하게. 뭐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투로. 난 뭐 여기 목 매다는 거 아니라는 식으로. 물론 그렇게 보여지도록이지 실제로는 내심 엄청 기대했다.
여장부 중에 여장부인 아내는 39도를 찍었던 이번 여름의 어느 날 찬물로 샤워하고 나와서 적당히 물기가 남은 몸 위로 쏟아지는, 파워냉방으로 설정된 에어컨 바람처럼 시원하게. 그러라고 했다. 심지어 당장 이번 주에도 가라고 했다.
"아니야. 괜찮아. 이번 주는 휴일이잖아"
"뭐 어때. 갔다 와"
"아니야. 그리고 이번 주는 멀어"
9월의 마지막 날. 매주 주일과 수요일, 주 2회 축구를 승인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매년 9월 30일을 축구 허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표해야겠다.
아. 여보. 그렇다고 뭐 다른 A급 기념일처럼 물질적인 무언가를 동반한다는 건 아니야. 그냥 마음가짐을 다른 날에 비해 새롭게 한다는 거지. 그냥 뭐 단오 같은 느낌? 그러니까 오해는 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