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01(월)
소윤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기로 하면서 홈스쿨링을 계획했다. 아주 크고 희미한 윤곽 정도만 보일 뿐 세부적인 계획이나 일정은 아직 전혀 진행된 바가 없다. 만약 시작하게 된다면 지난번에 만났던 가정이 다녔던 교회에서 할 가능성이 크고 그 교회는 역촌에 있다. 우리 집에서 역촌까지 차로는 꽤 가까운 거리지만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가면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거기에 4살 딸, 2살 아들을 동반하면 비단 시간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소비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이러한 이유로 처음에는 싸구려 중고차를 한 대 더 마련할까 했는데 싸구려 중고차여도 몇 백인데 몇 백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우리한테는 무리한 일이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애 둘을 데리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차를 두고 출근하는 건 차로 가면 30분이면 족한데 대중교통으로 가면 거의 2시간이 걸리니 이것도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여보. 내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볼까?"
우리 집에서 원흥역까지는 자전거-원흥역에서 대화역까지 지하철-대화역에서 사무실까지 자전거. 시간 계산을 해보니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마침 형님(아내 오빠)이 타던 자전거도 생겼고 이 얘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난 뒤 아내는 계속해서 긍정적인 얘기를 쏟아냈다. 원흥에서 대화는 생각보다 오래 안 걸린다 차로 가는 것보다 조금 걸린다 대화역에서 사무실도 생각보다 조금 걸린다 등등.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라 이렇게만 얘기를 꺼내고 본격적인 시행에 옮기지는 않았었다.
오늘도 일찍 일어난 아이들의 소란을 애써 외면하고 억지로 눈을 감은채 누워 있다가 문득
'오늘 한 번 자전거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벌떡 몸을 일으키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오늘 자전거 타고 출근해볼게"
"오늘? 갑자기 왜?"
"그냥. 어차피 해보긴 해야지"
"그렇기는 한데"
이게 할 수 있는 일인지 도저히 못할 짓인지 일단 한 번 해봐야 판단이 설 것 같았다. 달랑 몸과 자전거만 준비되어 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예를 들면 자전거에 어울리는 옷이라던가 자전거에 어울리는 가방이라던가. 대충 집에 있는 티셔츠랑 츄리닝 바지를 입었다. 마땅한 가방이 없어 고민하다 뭔가 여자들이 매면 더 어울릴 법하고 정장에 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묘한 가방에 핸드폰과 지갑, 열쇠, 고구마, 커피 등을 챙겨 넣었다
"아빠. 오늘 자전거 타고 가여?"
"어. 자전거 타고"
"왜여?"
"음. 엄마가 그러래"
"여보. 나 갈게"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배웅했다. 우리 집에서 원흥역까지는 10분도 안 걸렸고 길도 좋았다. 오히려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좋았다. 원흥역에서 대화역까지는 지하철로 22분 정도. 일단 사람이 없고 한산해서 자전거를 들고 타기에 부담이 없었다. 다들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서 예전만큼 구경하는 재미가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람 구경도 하고 생각도 할 수 있으니 좋았다. 일부러 휴대폰은 보지 않았다. 내일은 책을 좀 가지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금방 대화역에 도착했다. 미리 검색해봤을 때 대화역에서 사무실까지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왔다. 열 번을 가도 열 번을 헤맬 정도의 심각한 길치라 몇 번이나 멈춰서 휴대폰으로 길을 확인했다. 덕분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사무실까지 가는 길은 많이 울퉁불퉁하고 험한 데다가 자전거가 미니벨로라 온몸으로 진동이 느껴진다는 것만 빼면 뭐 괜찮았다. 서늘한 날씨였음에도 땀이 흐를 정도로 운동도 되고. 가장 시급한 건 역시 복장이었다. 특히 메고 있는 가방이 심각하게 내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무겁더라도 다른 가방을 메고 왔어야 했다. 아무튼 총 1시간 15분 정도 걸렸다. 길이 익숙해지면 1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사무실에 도착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도착했어"
"잘 갔어? 어때?"
"어. 뭐 괜찮아"
"안 힘들어?"
"어. 뭐 괜찮아"
"계속할 수 있겠어?"
"어. 뭐 첫날이니까 그런지 몰라도 괜찮을 것 같은데?"
진짜 괜찮기도 했고 또 괜찮아야만 할 것 같기도 했고.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차도 생겼겠다 어디라도 나갔다 올 줄 알았는데 계속 집에 있었다. 퇴근시간 한 시간 전쯤
'아, 집에 언제 가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쳐 먹었다.
'차로 가도 30분인데 고작 30-40분 더 걸리는 건데 뭐'
다시
'시간은 30분이어도 내 몸은 쉬지 못하잖아'
다시
'운동도 되고 좋지 뭐'
심한 내적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시 출발. 길치의 특징 중 하나가 가봤던 길을 기억 못 하는 건 물론이고 갔던 길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건 더더욱 헤맨다. 내가 그랬다. 길을 헤매는 덕분에 또 시간이 지체됐다. 시원하게 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차라리 자전거로만 1시간 정도 걸려서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을 것 같다.
"여보"
"어. 여보 고생했어, 어때 할 만해?"
"어. 뭐 그냥. 괜찮아"
"안 힘들어?"
"어. 뭐 그냥 괜찮아"
"계속할 거야?"
"어. 뭐 그래야지"
일종의 자기 최면이었다. 이 한 몸 희생해서 나머지 가족들이 편안할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족하다는 숭고한 희생정신까지는 아니고.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하면 건강도 챙기고, 기름값도 아끼고, 아내도 편하고. 또 죽을 만큼 힘들거나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당분간 계속 자전거 타고 가야겠다"
일주일에 두 번 축구.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 진정한 건.돼(건강한 돼지)의 길로 접어들겠군.
월요일, 아내의 (가짜)필라프리데이. 소윤이랑 시윤이는 둘 다 졸음이 머리 끝까지 차서 눈 껌뻑이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소윤이는 꾸역꾸역 잘 먹고 있었고 시윤이는 식판 엎고 짜증내서 아내가 혼냈다고 했다. 혼난 애 치고는 자동차 장난감 굴리면서 너무 해맑게 잘 웃고 있었다. 아내는 뭔가 지칠 대로 지쳐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저녁 먹고 나면 양치만 해서 재울 수 있는 상태로 모든 준비를 해놨다.
아내는 떠나고 나랑 애들만 남았다. 오후에 아내가 전화를 했었다.
"여보. 어떻게 할 거야?"
"뭘?"
"여보가 그때 소윤이 초콜렛 하나 먹은 거. 소윤이가 지금 그거 없다고 난리야"
소윤이는 울고 있었다.
"소윤아"
"아빠아아아아아아"
"소윤아. 아빠가 이따 갈 때 사갈게"
"지금 먹고 싶어어어어어. 지그으으으음"
"지금은 없잖아. 아빠가 이따 사갈게. 그러니까 울지 말고 기다려. 알았지?"
"싫어. 지그으으으으음"
"소윤아. 엄마 아빠가 안 사준다는 게 아니잖아. 이따 사준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울면 앞으로는 간식 안 사줄 거야"
"지금 먹고 싶은데에"
"없는 걸 어떻게 해"
"아빠 그러니까 그거 왜 먹었어여"
"미안해. 소윤아"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는 자고 있는 나에게 오더니 호통을 쳤다.
"아빠"
"어. 소윤아"
"아빠가 뻥튀기 먹었지"
"무슨 소리야 소윤아"
"아빠가 저기 뻥튀기 있는 거 다 먹었지!!!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아빠가 먹어서 없잖아!!!"
날 막 혼냈다. 날 혼내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고 먹지도 않은 뻥튀기를 내가 먹었다고 하는 것도 어이가 없고. 아무튼 밥 다 먹고 그놈의 초콜렛 하나 먹인 뒤 양치시켜서 방으로 입성. 둘 다 5분 만에 잠들었다. 아침에 그렇게 일찍 일어났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 혼자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자유시간을 보내고 온 아내가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나 내일 천안 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싶어 되물었다.
"천안? 왜?"
"현정이 만나러"
"내일? 갑자기?"
"어. 현정이랑 얘기하다가 갑자기 추진돼서"
"차 가지고?"
"아니. 차는 아직 그렇고 행신역에서 KTX 타면 한 시간 걸린대"
"그래? 둘 데리고 괜찮겠어?"
"뭐 해보는 거지"
아내나 나나 무모한 건지 아니면 정말 능력이 되는 건지. 그 아내에 그 남편인 건가.
"여보. 그런데 카페에서는 뭐 했어?"
"어. 현정이랑 한 시간 통화하고 어쩌구저쩌구"
한 시간을 통화하고 나면 "오늘은 얘기 좀 했네" 가 아니라 "야 안 되겠다 만나야겠다" 로 진행이 되나 보다. 아무튼 아내는 애 둘 데리고 KTX 타고 천안까지. 나는 자전거와 지하철로 삼송에서 파주까지.
이야 여보. 우리 재미있게 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