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6(화)
소윤이는 아침에 잠이 덜 깼는지 괜히 짜증도 내고 출근하는 내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시큰둥했다. 그래놓고 나중에 아내한테는 며칠 동안 아빠랑 같이 있다가 없으니까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단다. 있을 때 잘 해라, 소윤아.
아내와 아이들은 별 다른 일이나 약속이 없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틈틈이 아내에게 전화해 상황은 어떤지, 아내 상태는 어떤지 파악했는데 아내의 입덧은 어제보다 딱히 나아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연휴 때에 비하면 확실히 안 좋아졌고. 놀랍다. 인체의 신비, 입덧의 신비.
퇴근하고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지금 차 대고 있어. 올라가면 돼"
"그럼 여보가 올라와서 시윤이 똥 좀 닦아줘. 오늘 세 번짼데 도저히 못 닦겠다"
"알았어. 그냥 놔 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익숙한 울음소리, 아니 괴성이 들렸다. 시윤이었다. 아내는 더 이상은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힘없이 앉아서 시윤이를 보고 있었다. 시윤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격렬하게 울고 있었다.
"여보. 시윤이 왜 그래?"
"그냥 지금 계속 고집부려. 나한테 한 대 맞았거든"
낮잠을 안 잤다고 하더니 그것도 영향이 있는 듯했다. 똥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닦지 않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냥 폭탄이었다. 터지고 있는 폭탄. 뭐 아무런 통제도 안 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혼자 폭발했다.
"시윤아. 이리 와. 아빠랑 똥 닦으러 가자"
"시더어어어. 시더어어어어. 안 따끄꺼야아아아아아"
"강시윤. 누가 지금 소리를 지르고 신경질을 내요. 이리 오세요"
"시더어어어어어. 안 가꺼야아아아아아아아아"
"강시윤. 아빠가 맴매할까요?"
"시더어어어어. 맴매 안 하꺼야아아아아아악"
"이리 오세요. 소리 지르지 말고 또박또박 얘기하세요. 그래야 시윤이 얘기 들어줄 수 있어요"
"시더어어어어어어. 안 하꺼야아아아아아악"
말로는 아무리 해도 안 될 거 같아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는데 시윤이가 더욱 폭주했다.
"아빠 미워어어어어어어. 가아아아아아아아. 아빠 가아아아아아아"
일단 똥을 해결해야 뭐 훈육을 해도 할 테니 아내와 협조해서 똥을 닦아냈다. 시윤이는 계속 아빠 밉다면서 나가라고 했다.
"그래. 그럼 아빠 나갈게. 시윤이는 엄마랑 있어. 누나랑 아빠는 나갈게"
나의 의도는 이랬다. 내가 나간다고 하면 그건 또 싫다고 하면서 진짜 나가면 안 된다고 매달리는 시윤이를 뒤로하고 '니가 한 말 때문에 이런 현실이 벌어지는거다. 다음부터는 짜증이 난다고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고. 전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일단 아내에게 소윤이 시윤이를 둘 다 맡겨 놓고 나갈 수 없으니 소윤이는 데리고 나가려고 했던 건데, 시윤이는 거기 집중했다.
"누나늠여? 누나도 나가여?"
내가 나가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누나는 나가는데 자기는 못 나가는 건지가 관심사였다. 그대로 나가면 이건 뭐 훈육도 안 되고 의도한 바를 전하지도 못하고, 아무 의미가 없었다. 소윤이는 나간다고 하니 신나서 옷을 막 갈아입었다.
소윤이를 잠깐 기다리게 하고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시윤이는 여전히 폭주하고 있었다.
"시윤아"
"으아아아아악. 시더어어어어어. 얘기 안 하꺼야아아아아아"
"시윤아. 아빠 말 들어 봐"
"으아아아아악. 얘기하지 말아줄래여어어어어어"
정확히 저렇게 얘기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얘기가 안 통했다. 너무 졸린 것도 큰 원인이었다. 시윤이는 계속 아빠 미워, 얘기하지 말아줄래여, 나가를 반복했다.
"시윤아. 아빠 진짜 나갈까?"
"네"
"아빠 진짜 미워?"
"네"
"왜?"
"그냥여"
"이유를 말해봐. 왜 미워?"
"왜냐멈. 아빠가 엄마랑 못 있게 해서여어"
"그래서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어?"
"네"
"나가서 안 들어오고 시윤이도 안 보고?"
"네"
"그래 알았어. 시윤이도 엄마한테 가. 아빠도 나갈게"
마음의 상처는 둘째 치고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계속 훈육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나갈 수도 없고. 출구전략을 찾지 못했다. 일단 방에서 나왔다. 시윤이는 자기 소파에 가서 앉았다. 소윤이는 현관에 서서 언제 나가냐고 보챘다.
"아빠. 언제 나가여어? 어디 갈 거에여?"
"조금 기다려"
"아빠. 언제 나가여어?"
"강소윤. 아빠가 조금 기다리라고 했지. 지금 안 보여. 우리가 놀러 나갈 상황이야? 어?"
소윤이도 울음을 터뜨렸다. 실수였다. 소윤이를 감정 받이로 만들면 안 됐다. 가만히 있는 녀석을 나가자고 들쑤셔 놓은 건 나였는데. 잠시 앉아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여보. 시윤이 바닥에서 잠들었다"
시윤이를 눕혀놓고 소윤이랑 둘이 집을 나왔다. 만사가 귀찮았지만 소윤이를 위해 나왔다.
"소윤아. 주먹밥 먹고 들어가자?"
"네. 그러자여"
주먹밥 가게가 문을 닫았다.
"소윤아. 문 닫았네"
"왜여?"
"추석 연휴로 오늘까지 쉰대. 뭐 먹지? 소윤아 빵 먹을까?"
"좋아여"
소윤이는 시식 빵을 몇 개 먹어 보더니 치즈 호밀빵이 제일 맛있다며 그걸 사자고 했다. 그거 하나랑 찹쌀 도넛 하나를 샀다. 우유도 하나 사 주고.
"소윤아"
"네"
"소윤이는 아빠가 혼내면 속상해?"
"속상하기도 한데 괜찮아여"
"왜?"
"아빠가 우리가 잘못된 행동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잖아여"
"그럼 안 속상해?"
"그럼여"
"그럼 억울한 적은 없어?"
"억울한 게 뭐에여?"
"소윤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혼난다거나 그런거"
"그런 적 있어여"
"언제?"
"그건 몰라여. 잘 기억 안 나여"
"그럼 소윤이는 아빠가 소윤이 안 혼냈으면 좋겠어?"
"아니여"
"왜? 속상하잖아"
"그래도 아빠가 알려줘야 내가 다음에 그런 행동 안 하져"
"그럼 소윤이가 보기에 아빠가 시윤이를 너무 많이 혼내는 거 같아?"
"아니여"
"그런데 시윤이는 오늘 왜 그랬을까?"
"오늘은 낮잠을 안 자서 그런 거 아니에여?"
"그럴 수도 있긴 하지. 소윤이는 아빠가 혼내고 그러면 미울 때도 있어?"
"아니여"
"정말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는데"
"진짜 없어여"
"왜?"
"엄마, 아빠가 날 언제든지 사랑하는 걸 아니까여"
"시윤이는 아직 모르나?"
"아직 세 살이라 모르나봐여. 아빠가 매일매일 얘기해줘여"
"아빠. 매일 얘기해주는데?"
"그래도. 더 많이"
"그런가. 소윤이는 아빠 얼마큼 사랑해?"
"어. 이 지구에 우주를 더하고 거기에 하나님을 더하고 거기에 백에 백에 백을 더한 만큼?"
소윤이가 왜 이렇게 큰 애처럼 느껴지는지. 시윤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 같고. 특유의 능청스러운(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소윤이가 그렇게 듬직할 수가 없었다. 시윤이는 아내에게 뺨 맞고 나한테 화풀이하고, 난 시윤이한테 뺨 맞고 소윤이한테 치유받고.
롬이야, 너도 딸이면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