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육아인

19.09.17(화)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서 전쟁기념관 견학을 간다고 했다. 일찍 일어나 아내도 깨우고 씻고 나오니 시윤이도 깨서 나왔다.


"시윤아"

"아빠"

"잘 잤어?"

"네, 아빠"


어제 자기가 저지른 만행은 전혀 모른다는 듯 평소처럼 안기고 뽀뽀하고 그랬다. 소윤이는 내가 나갈 때까지도 잤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으니 시윤이는 어제 아빠한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냐는 아내의 물음에


"미워. 가. 이케"


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기억은 하고 있구만.


아내는 용산까지 가는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거기에 막히기도 했고. 시윤이는 용산 가는 길에 잠들었다고 했다. 어제 너무 일찍 누운 탓인지 새벽에도 깨서 막 이리저리 뒹굴뒹굴하더니 잠을 설쳤나 보다.


볕이 너무 뜨거워서 바깥에 오래 있기에는 힘들었다고 했다. 일반 전시는 너무 잔인해서 애들이 보기에 힘들고, 어린이 박물관만 견학했는데 엄청 짧았다고 했다. 이 모든 여정을 전해주는 아내의 목소리가 꽤 힘들어 보였다. 홀몸도 아니니 상태 봐 가면서 쉬엄쉬엄하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기도 하다. 교감 선생님 부부가 셋째 출산으로 쉬는 중이라 아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온이(시윤이 태명)가 그랬던 것처럼 롬이도 거친 풍파를 이겨내고 건강히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견학을 마친 아내가 파주로 온다고 했다. 잠깐이긴 하지만 처가댁에 들렀다가 사무실에 오겠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잠깐이라도 쉬어야 할 것 같다면서.


아내와 아이들은 퇴근 시간에 맞춰서 사무실로 왔다. 소윤이는 오자마자 두 번 정도 울었다. 일 다 끝나서 나가자고 했더니 울고, 같이 일하는 형의 딸 보고 싶다고 하길래 안 된다고 했더니 울고. 아내 말로는 오늘 내내 비슷한 기조였다고 했다. 어제는 그렇게 철이 가득 찬 맏딸처럼 굴더니 말이야.


"여보. 저녁 여기서 먹고 갈까?"

"여기서? 그럴까?"

"먹을 데가 있나?"

"그러게. 저기 옆에 닭곰탕이랑 닭개장 파는 데가 있기는 한데"

"거기 괜찮아?"

"그냥 뭐. 일단 엄청 싸. 육천원인가 칠천원이야"

"그럼 거기로 가자"


닭곰탕 하나, 닭개장 하나를 시켰다. 애들은 닭곰탕을 나눠 주고 아내와 나는 닭개장을 나눠 먹었다. 둘이 하나를 나눠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은 아니었지만, 보통의 1인분보다는 양이 많고 아내가 엄청 많이 먹지 않아서 요기하기에는 충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잘 먹었는데 특히 소윤이는 얼마나 시원스럽게 먹던지. 어른이 국밥 먹듯이 후루룩 소리 내면서 밥과 국을 말아 넘기고, 그릇째 들고 국물까지 먹었다. 시윤이는 중간에 힘들다면서 약간 꾀를 부렸지만 잘 넘어갔다.


집에 도착해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 택배가 하나 와 있었다. 소윤이 할머니가 사 주신 소윤이의 연필 깎이였다. 내가 어렸을 때도 있던 기차 모양의 그것이었다. 소윤이는 잔뜩 들떠서 언제 포장을 뜯느냐고 보챘다.


"소윤아. 다 씻고"


얼른 씻겨서 방에 넣어야 퇴근이니 1분 1초라도 빠른 진행을 위해서는 일단 씻겨야 했다. 소윤이가 너무 안달복달이라 시윤이만 씻겨 놓고 상자를 열었다. 소윤이는 바로 연필을 가지고 와서 넣고 돌렸다. 앞으로 소윤이가 연필깎이를 가지고 시윤이에게 갑질을 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소윤아"

"네"

"어, 그런데 연필깎이는 시윤이도 같이 쓰라고 사 주신 거야. 아직은 시윤이가 연필을 쓸 수 없긴 하지만 소윤이만 쓰라고 사 준 건 아니니까 시윤이도 해보고 싶다고 하면 같이 해. 알았지?"

"네, 아빠. 시윤아. 이거 해 볼래? 위험하니까 누나가 잡아줄게"


소윤이 특유의 전시 친절, 쇼윈도 다정함이 뚝뚝 묻어났다. 다행히(?) 시윤이는 아직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지난 주일에 어린이용 축구 유니폼이 하나 있어서 그걸 소윤이한테 입혔더니 왜 자기는 없냐면서 자기도 당장 입고 싶다고 애걸복걸하던 것하고는 좀 달랐다. 그래도 이제 매 상황 설명은 해줘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겠지 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아는 세 살이 되었다.


"아빠. 아까 집에 오믄 뗀뗀, 어, 어, 뗀뗀 주기로 했잖아여어어"

"아, 그래 맞다. 텐텐 줄 게"


시윤이는 요즘 텐텐에 빠져버렸다.


아내와 애들이 방에 들어가고 정말 오랜만에 헬스장에 다녀왔다. 매일 밤, 반복해서 쌓이는 집안일을 하고 노트북 앞에 앉으면 매우 고독하다. 입덧에 시달리는 아내는 일찍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밤에 혼자일 때가 많은데 썩 유쾌하지 않다. 잠깐 스치고 지나갈 감정의 기복일 가능성이 크니 잘 넘기면 된다. 오랜만에 치킨을 시켜 먹었다. 물론 아내는 자러 들어가고 혼자 먹었다. 초특급 매운맛으로 시켜서 먹었다. 입술이 얼얼했지만 스트레스 해소에는 약간의 도움이 됐다. 내일은 드디어 2주간 쉰 수요 축구하는 날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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