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9(목)
지하 주차장 청소를 한다고 차를 지상에 대라고 공지가 붙어 있었는데 어제 깜빡하고 지하에 주차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기도 모임이 있어서 난 버스를 타고 출근했는데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차 옮기라네]
[헐 맞다]
[어떡하지. 잠깐 애들 두고 다녀올까. 소윤이만 깬 상태]
[응. 소윤이한테만 얘기해두고]
한 5분 뒤에 아내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다행히 로비에 자리가 있었음]
[다행이군. 시윤이는 깼어?]
[응. 나가자마자 깼대요]
[안 울고 있었어?]
[응 하나도. 소윤이가 잘 얘기해줬대]
[다 컸네]
다 큰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는 뽀로로 펜 때문에 삐져서 방에 들어갔다고 했다. 하긴 삐지는 거야 뭐 어른도 마찬가지니까.
아내와 아이들은 기도 모임을 마치고 형님(아내 오빠)네 집에 갔다. 장모님도 가셨다. 점심 먹고 카페에 갔다가 내가 퇴근할 무렵에 형님과 장모님은 장인어른 회사 근처로 가셨고 아내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잘 다녀오셨어여?"
소윤이는 바로 달려와서 안기며 인사를 건네는데 시윤이는 자기가 하던 걸 멈추지 않았다.
"강시윤. 아빠한테 가서 인사하고 오세요"
"엄마. 나 이거만 하구 가두 돼여어?"
"아니요. 일단 아빠한테 인사하고 오세요"
이런 건 아내가 대신해줘야 면이 선다. 아빠 퇴근했는데 인사 안 한다고 아빠(본인)가 직접 훈계하는 건 뭔가 모양이 빠진다. 퇴근하자마자 '훈육하는 아빠'가 되는 것도 내키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야 하고 잔소리해야 하는 걸 보면 시윤이는 딱 그럴 때인가 보다. 소윤이는 이제 사실 그럴 일이 많이 없다. 아니, 없지는 않지만 결이 다르다. 시윤이는 그야말로 기초적인 것들(떼쓰지 않기, 밥 바르게 먹기, 소리 지르지 않기 등등)이라면 소윤이는 한 차원 높은 것들(상대방 배려해서 말하기, 동생이 슬플 때는 기다려주기, 말투뿐 아니라 마음에도 사랑을 담기 등등)이다.
시윤이는 오늘도 저녁 밥그릇을 박탈당했다. 먹는 내내 뺀질 대고 거부하고 그랬다. 아내가 앉아서 먹였는데 오늘은 소윤이까지 합세했다. 애들 밥 먹이던 아내가 울렁거림을 호소했다. 뭐랄까 애들 밥 먹는 걸 보면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고 해야 하나 그럴 때가 있다. 시윤이는 두세 숟가락 남기고 거의 다 먹은 상태였지만, 교육을 위해 밥그릇을 거뒀다.
"시윤이는 이제 그만 먹어요. 내일 아침 먹을 때까지 간식 못 먹는 거 알지요?"
"으아아앙. 시더어어어어엉"
그 뒤로도 한 5분을 억지 울음을 짜냈다. 아내도 나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더니 스스로 사그라들었다. 소윤이는 다 먹긴 했지만 너무 오래 걸렸다.
"소윤이는 밥 먹고 씻고 바로 자면 돼요. 소윤이가 밥을 너무 오래 먹어서 아빠랑 놀 수 있는 시간이 사라졌어요"
"아아아. 그래도오. 아빠랑 놀고 싶어여"
"어, 이건 아빠가 안 노는 게 아니라 소윤이가 밥을 늦게 먹었기 때문에 놀 시간이 사라진 거에요. 알았어요?"
"네"
소윤이는 마뜩잖아도 받아들이는 능력치가 급상승했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면서 얘기했다.
"여보. 오늘은 나 꼭 나가야 돼"
"왜?"
"엄마 선생님들이랑 오늘부터 신약 통독하기로 했거든"
"그래? 알았어. 혹시 못 나오면 운동 갔다 와서 깨워줄게"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좀 흘렀길래 운동 가기 전에 방에 들어가 봤다. 애들도 아내도 곤히 자고 있었다.
"여보. 여보"
"어. 어. ㅁ;엄ㅇ;ㅣㅏ럼ㅇ;ㄴ러"
"안 일어나?"
"어?ㅁㄴㄹㅇ;마ㅓㅇㄻ;ㅣㅏㅓㄴㅇㄹ"
아무래도 못 깰 것 같았다. 갔다 와서 다시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갔다 와서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누워있던 아내가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다. 다시 깨웠다.
"여보. 여보"
"ㅁ;ㅇ럼;ㅇ라ㅣㅓㅁ;ㅣㅏ얼;마ㅣㄴ얼"
다시 외계어를 발사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두고 나왔다. 거실도 치우고 설거지도 하고 각종 쓰레기도 버리고 난 뒤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는데 아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여보. 왜 안 깨웠어?"
"두 번이나 깨웠어. 기억 안 나?"
"아, 정말? 진짜 기억 안 나. 여보는 운동 갔다 온 거야?"
"어, 갔다 왔지. 속은 좀 어때?"
"그냥 비슷해"
우리 가족의 앞날에 관해 아내와 심도 있지만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나서 다시 나는 책상에, 아내는 소파에 앉았는데 얼마 안 가서 소윤이가 나왔다. 어제에 이어 또.
"소윤아. 그냥 자지. 엄마, 아빠 없어도 다시 눈 감고 자면 되잖아. 엄마, 아빠도 엄마, 아빠만의 시간이 필요해"
소윤이는 대답이 없었다.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 난 할 게 좀 더 있어서 아내와 소윤이만 다시 방에 들어갔다. 아내는 들어가기 직전에 토를 했다. 헛구역질이 아니라 진짜 토 말이다. 그렇게 많이 쏟아내지도 않았고, 전반적인 상태 자체가 엄청 나쁜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마, 괜찮아여?"
화장실 변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아내에게 소윤이가 가서 물었다. 역시. 시윤이는 엄마 구역질 소리 따라 하면서 깔깔댈 때, 소윤이는 진심으로 걱정한다.
소윤이가 아내 옆자리(매트리스 위)에 누우려고 했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소윤아. 오늘은 엄마 여기서 편하게 자고 싶어. 소윤이는 소윤이 자리에서 자고"
소윤이는 못 들은 체하고 아내의 품을 파고들려고 했다.
"소윤아. 자리로 돌아가"
"왜여?"
"오늘은 엄마가 불편하시대. 그러니까 소윤이는 자리로 돌아가서 자"
소윤이는 훌쩍거리며(울며) 자기 자리에 누웠다.
"아빠. 엄마 옆에 너무 눕고 싶었어여"
"어, 그랬지? 그래도 오늘은 안 돼. 그러니까 울지 말고 자. 알았지?"
"네에"
이번에도 슬픈 감정을 다스리고 엄마를 배려했다. 어린 동생에 치여 귀여운 매력을 빼앗길 때가 되니까 철든 매력이 나타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