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밤까지

19.09.20(금)

by 어깨아빠

슬슬 볕이 들어오는지 어스름한 방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을 때 눈을 떴다. 눈이 먼저 열리고 그다음 귀가 열렸다. 그저 들었을 뿐이지만 눈으로 본 듯 확신했다.


'소윤이가 깼구나'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누가 깼는지 알아차리는 능력이 생겼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분명히 소윤이의 손에서 만들어진 소리였다. 이순신 장군은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난 기상을 알리지 않았다. 귀로 확신했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자세를 바꾸는 척하면서 슬쩍 소윤이를 봤는데 그만 딱 눈이 마주쳤다. 물론 혹시나 싶어 게슴츠레 눈을 뜨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동공을 마주했다.


"소윤아. 잘 잤어?"

"네. 아빠 지금 새벽이에여?"

"응. 아직 좀 더 자도 돼. 더 자"

"안 자고 싶어여"

"그래? 그럼 아빠랑 나갈까?"

"네"


어차피 누워 있어봐야 다시 자기도 힘들 테고 차라리 소윤이랑 뭔가 의미 있는 아침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소윤아. 아빠는 성경 읽을 건데 소윤이는 외운 성경 구절 쓸까?"

"그래여"

"그럼 소윤이는 말씀 외운 거 써 봐"

"어디다여?"

"여기 공책에. 한 칸 한 칸 잘 맞춰서 써 봐"

"아빠는 성경책 읽을 거에여?"

"응"

"왜여?"

"그냥"


막상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한 20여 분. 소윤이는 말씀 두 구절을 성실하게, 정말 열심히 썼다. 소윤이가 배우는 게 많아지면서 나도 연습을 하고 있다. 배우기 시작한 자녀를 둔 부모는 본능적으로 결과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걸 연습하고 있다. 결과가 아닌 태도와 과정에 집중하는걸. 소윤이가 [태초'애', 아'면'] 처럼 틀린 글자를 써도 일단 그건 제쳐둔다. 대신 노랗게 될 정도로 꽉 쥔 검지와 엄지, 중지를 주목하고 어떻게든 정해진 칸 안에 바르게 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본다. 신기하게도 그러면 기특한 마음이 샘솟는다. 한 구절 한 구절 쓸 때마다 엄청 큰일을 이뤄낸 것 마냥 나를 향해 공책을 흔들며


"아빠. 다 썼어요"


얘기하는 소윤이에게 진심으로 기뻐하며 반응하게 된다. 틀린 건 다시 알려주면 그만이다. 물론 소윤이가 아직까지는 가르쳐 준 걸 제법 잘 이해하는 편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참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영역은 다 연습이고 실전이니까. 말로만 해서 되면 어려울 이유가 없겠지. 매일 반복인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슉 지나가 있고, 영원할 것 같은데 어느새 아련한 과거고 그렇다. 오늘 아침은 참 귀한 시간이었다.


금요일이니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갔다. 나도 특별새벽기도와 추석 연휴 때문에 쉬었던 금요철야예배에 오랜만에 가야 했다. 퇴근하면서 아내와 통화했다.


"여보는 오늘 갈 거야?"

"나? 고민이네"

"그래?"

"소윤이는 아빠 따라간대"

"아, 그래? 그럼 어떻게 하지? 내가 둘을 데려갈 순 없는데"

"그렇지. 나는 고민을 좀 더 해 볼 게"


아내와 아이들을 삼송역에서 만났다.


"여보. 난 오늘 아무래도 힘들 거 같아"

"그래. 집에서 좀 쉬어. 그런데 시윤이는 어떻게 하지?"

"뭘?"

"누나만 간다고 하면 괜찮을까"

"그냥 엄마랑 집에서 데이트하자고 해야지"


소윤이는 처치홈스쿨에 가서 낮잠을 아주 개운하게 잔 터라 조금의 피로도 없는 듯했다. 함께 교회 가는 게 전혀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집에 가서 서둘러 저녁을 먹였다. 오가는 대화를 들은 시윤이가 아니나 다를까 말을 꺼냈다.


"아빠. 나두 나두. 교회 가고 지퍼여어"

"아, 시윤아. 오늘은 시윤이는 집에 있어야 돼"

"왜여어?"

"아, 엄마가 교회에 같이 못 가시거든. 그런데 아빠가 너희 둘 다 데리고 가기는 힘들어"

"왜여어?"

"시윤이는 아직 어른 없이 혼자 있기가 위험하거든. 아빠 드럼 치러 갈 때는 시윤이 혼자 있어야 되는데 아직은 그렇게 못 해"

"그럼 나늠여어? 집에 있어여어?"

"응. 대신 엄마랑 데이트해"


역시 엄마 카드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시윤이는 별 탈 없이 수긍했다.


저녁을 다 먹고 소윤이와 함께 교회로 갔다. 소윤이는 연습 시간인 8시부터 설교 전 찬양이 끝난 9시 30분까지, 1시간 30분을 혼자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이. 데리고 간 토야(토끼 인형)도 안아주고, 종이도 자르면서. 한 번씩 눈을 마주치면 걱정 말라는 듯 환하게 웃어주기까지 했다. 예배 다 마칠 때까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든든했다.


"소윤아. 우리 초코 우유 하나씩 먹을까?"

"에엥? 갑자기 왜여?"

"그냥. 예배 잘 드리고 나왔으니까 즐겁잖아"

"아빠도?"

"응. 아빠도 하나 먹고"


교회 앞 편의점에서 초코 우유를 하나씩 사서 마셨다. 집에 가는 길에도 소윤이는 좋은 말동무가 되어줬다.


"소윤아. 아빠는 오늘 소윤이랑 같이 예배 가니까 더 좋네?"

"왜여?"

"그냥. 심심하지도 않고 소윤이도 예배드릴 수 있고"

"아빠. 나도 아빠랑 예배드려서 좋아여"

"왜?"

"어, 어, 엄마랑 시윤이랑 다 같이 가는 게 좋기도 한데 아빠랑 둘이 가는 것도 좋아여"


아침부터 밤까지 소윤이 덕분에 마음이 꽉 차는 하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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