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22(주일)
어제보다 더 늦게 일어났다. 더 촉박한 시간에. 아내는 일찍 일어나 밥도 해놓고 애들도 보고 있었다. 프라이팬 위에 계란 4개가 잘 익고 있었다. 시윤이는 아침부터 아내에게 반말과 짜증을 일삼다가 결국 방으로 끌려갔다. 요새 시윤이가 이럴 때인가 보다. 아내와 시윤이는 시간을 꽤 쓰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 집에서 나왔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은 더 떨어졌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긴팔을 입혔다. 아내는 겉옷까지 걸쳤다.
"아빠. 오늘도 축구 가여?"
"글쎄. 오늘은 비가 올 거 같아서 아마 못 가지 않을까"
"혹시 비 그치면 시윤이랑 저도 같이 갈 거에여?"
"아, 오늘은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같이 못 갈 거 같아"
"왜여?"
"바람도 너무 많이 불고 갑자기 비가 올 수도 있고 그래서"
애들도 애들이지만 나도 마음을 접고 있었다. 일기 예보에는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새싹꿈나무 예배, 아내와 나는 어른 예배를 각자 잘 드리고 식당에서 만났다. 점심은 잘 먹었다. 하루 종일 내린다던 비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축구할 시간에도 마찬가지일 듯했다.
"아빠. 오늘 축구 갈 수 있어여?"
"글쎄. 비가 안 오네. 아마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도 가면 안 돼여?"
"오늘은 안 될 거 같아"
오늘도 동선이 애매했다. 이런저런 안을 고민하다가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일단 스타필드에 데려다줬다. 커피 캡슐도 살 겸 목장 모임 끝날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난 다시 교회로 가서 목장 모임을 했다. 목장 모임을 마친 뒤 스타필드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태워서 집에 데려다줬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다시 차를 가지고 축구하러 갔다.
아내는 두 시간 정도를 스타필드에서 보낸 건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내내 잘 있다가 막판에 고난을 겪었다. 시윤이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드러눕는 바람에 난리였다고 했다. 대충 달래서 데리고 오면 금방 끝나겠지만 우리의 방침은 그게 아닌지라 시간도 걸리고, 애도 써야 한다.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았어. 막판에 강시윤이 힘들게 해서 그렇지"
2주 동안 애들 데리고 가다가 두고 가려니 뭔가 더 미안하고 걱정이 됐다.
"여보. 언제든 전화해. 알지?"
"응"
진심이지만 참으로 덧없는 작별 인사로구나.
비는 거의 오지 않았다. 오늘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는데 애들 데리고 갔어도 될 뻔했다. 데리고 오지 못해 아쉬운 마음(혹은 미안한 마음)과 자유의 몸으로 홀가분하게 뛴 개운함을 동시에 안고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뭐 해?"
"애들 막 저녁 먹였어"
"아, 뭐?"
"남옥 언니가 카레 줘서 그거 먹였어. 다행히 잘 먹네"
"오, 다행이다"
"여보. 그리고 김치를 좀 찾았어"
"아, 그래?"
"어, 좀 오래되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그럼. 내가 뭐 사 가야 되지?"
"부침가루 하나 사 와"
어제 아내랑 "내일 비 오면 부침개나 부쳐 먹을까"하는 얘기를 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우리의 먹부림 약속은 굳게 남았다. 이런 건 어쩜 그리 철석같이 잘 지키는지.
아이들은 이미 저녁을 다 먹고 난 뒤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 더 놀게 하고 난 샤워를 했다.
"아빠. 샤워 다 했다. 소윤이 들어와"
"네, 아빠"
"누나 다 씻었네. 시윤이 들어와"
"네, 아빠"
차례대로 씻겼다. 시윤이는 엉덩이에서 꾸린내가 너무 많이 나서 샤워를 시켰다.
"아빠. 왜 나늠 샤워해여어?"
"아, 시윤이 엉덩이에서 냄새가 많이 나서"
"왜여어?"
"아, 기저귀에 똥을 싸니까"
"누나늠여?"
"누나는 변기에 싸서 좀 덜 나지. 시윤이도 쉬 마렵거나 똥 마려울 때 아빠한테 얘기해. 그러면 아빠랑 화장실에서 싸자"
아빠 이제 기저귀 그만 갈고 싶어. 내년 4월 되면 또 지겹게 갈 텐데 잠시라도 휴식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 시윤이도 이제 얼른 기저귀 떼자.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한참 걸릴 거 같다. 아내도 나도 아예 시도조차 할 생각이 없었다. 시윤이도 전혀 의지가 없고)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는 동안 김치부침개를 준비했다. 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인터넷에서 찾아가며 했는데 간은 잘 맞았다. 오래된 김치도 제법 맛이 괜찮았고. 다만 농도와 부치는 두께 조절에 실패해서 식감은 꽝이었다.
"여보. 우리 비도 안 오는데 이거 왜 먹어?"
"그러게"
아직 치킨 같은 육류에는 전혀 욕구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에 아내랑 앉아서 야식을 먹으며 수다를 떤 게 얼마 만인지. 부침개를 다 먹고도 한참을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아내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