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25(수)
아내가 며칠 전부터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어제 돼지고기도 사 놨는데 미처 만들어 놓지를 못했다. 아침에 아내와 애들은 일찍 일어나서 진작부터 거실에 나갔고 그 소리에 나도 일찍 잠에서 깼다. 아침에 김치찌개를 만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팔을 걷어붙였다. 시간이 좀 빡빡하긴 했지만 오늘은 아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을 테고, 나도 밤에는 축구하고 오면 또 미룰 것 같았다.
아이들 아침으로는 아내가 사 놓은 돈까스가 있어서 그걸 튀겨줬다. 총 세 덩이가 있었는데 김치찌개 신경 쓰느라 한 덩이는 태워먹었다. 김치찌개 맛집에서 먹는 것처럼 한 숟가락 뜨면 "으어어어어"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맛은 아니었지만, 김치찌개의 정체성을 상실한 정도의 나쁜 맛도 아니었다.
"여보. 괜찮아?"
"응. 맛있는데"
아침부터 음식을 했더니 설거지가 좀 쌓였다.
"여보. 오늘 설거지 하지 말고 그냥 둬. 이따 내가 와서 할 게"
"아니야. 내가 쉬엄쉬엄 해 놓으면 돼"
"아니라고. 그냥 두라고"
그래도 뿌듯했다. 아침부터 아내가 먹고 싶은 걸 해놓고 나오다니.
점심시간쯤에 영상통화가 왔다.
"소윤아"
"아빠"
"응. 뭐해?"
"우리 지금 요거트랑 빵 먹고 있어여"
"아, 그게 점심이야?"
"네"
"아빠아"
"어, 시윤아"
"빵이양 여거뜨 먹구 이떠떠여어"
"그랬어? 맛있어?"
"네에"
아내도 함께 먹었는데 속이 느글거린다면서 김치찌개와 밥을 뜬다고 주방으로 갔다. 그 사이 소윤이가 요거트를 빵에 막 발랐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었는데 아내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소윤이가 아내에게 얘기했다.
"엄마. 시윤이가 빵에 요거트 막 발랐어여"
"시윤아. 엄마가 그렇게 먹지 말라고 했지요. 하지 마세요"
응? 뭐지?
"소윤아. 너도 빵에 요거트 발랐잖아. 시윤이만 고자질하면 어떻게 해.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으면 소윤이도 하지 말아야지"
"전 안 했어여"
"뭘 안 해. 아빠가 다 봤는데"
"아니에여. 잘못 봤겠져. 저는 안 했는데"
"소윤이 또 거짓말하네"
"아니에여. 그럼 저도 모르게 발랐겠져"
아내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통화를 끝냈다. 요거트야 뭐 바르든 말든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거짓말이 문제다. 요즘 소윤이하고는 이 거짓말에 집중하고 있다. 가끔씩 속이려고 할 때가 있다. 완전한 고의일 때도 있고, 오늘처럼 자기도 모르게 그럴 때도 있고. 소윤이는 아내와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
퇴근하고 집에 갔을 때 아내는 소윤이 발을 닦아주고 있었고, 시윤이는 거실에 있었다. 어딘가 나갔다가 막 들어온 모양이었다.
"어디 나갔다 왔어?"
"응. 놀이터"
"아, 방금 들어왔구나"
"어"
"얼마나 놀았어?"
"한 세 시간?"
"한참 있었네"
소파에 앉아 거실에 있던 시윤이를 안았는데 퀘퀘한 냄새가 났다.
"시윤아. 똥 쌌어?"
"아니여"
"어디 볼까?"
"안 싸 떠여어"
"그러네. 진짜 안 쌌네"
"여보. 시윤이 놀이터에서 똥 싸서 그래. 너무 한참 있다가 닦아줬더니 바지에 냄새가 뱄나 보다"
시윤이는 매우 졸려 보였다. 낮잠을 안 잔 건가 싶었는데 역시나 맞았다. 아내는 저녁으로 또 김치찌개를 먹었다. 다행이다. 삼시 세끼를 먹는 걸 보면 맛있다는 게 순 거짓말은 아닌가 보다. 애들은 두부와 야채맛 동그랑땡을 구워줬다. 시윤이는 너무 졸려서 원활한 식사가 불가능해 보였다. 저녁을 엄청 조금만 줬다. 밥 몇 숟가락에 두부 두 개, 동그랑땡 두 개.
"아우. 나도 졸리다. 너무 졸리다"
소윤이도 마찬가지로 피곤함을 호소했다. 그래도 소윤이는 졸리다고 앞뒤 안 보고 막 짜증내는 일은 거의 없다. 시윤이는 두부부터 먹어 치우더니 누나의 두부까지 얻어서 먹었다. 대신 동그랑땡을 누나에게 줬다. 워낙 양이 적었고 아내가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별 탈 없이 식사를 마쳤다.
아내와 아이들이 밥 먹는 동안 난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이따가 축구하고 와서 해야 하니 어떻게든 다 해놓고 가는 게 최선이었다. 지금 있는 고난은 장차 있을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며 열심히 수세미질을 했다.
애들을 내가 씻겨주려고 했는데 시윤이가 끝까지 아내를 고집했다. 아내는 매우 힘들어했다. 하루 종일 지친 것도 있지만, 가만히 숨만 쉬어도 울렁거리는 판에 시윤이의 엉덩이를 닦아야 하니 그게 보통 일이 아닌 거다. 평소 같았으면 좀 오래 설득하거나 고집을 꺾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울음이 터졌다가는 더 피곤한(내가) 상황이 벌어질 듯했다.
"그래. 엄마랑 씻어"
다행히 오늘은 다 눕힌 다음에 집에서 나왔다.
"소윤아, 시윤아. 잘 자. 장난치지 말고.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네"
모든 걸 다 마쳤고 애들도 워낙 피곤해서 금방 잘 테니 홀가분하게 집을 나왔다.
축구를 끝내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뭐해?"
"어, 노트북 앞에 앉았어"
"지금 일어났어?"
"아니 그건 아닌데 나도 좀 잠들긴 했어"
"애들은 금방 잤고?"
"응"
말끔한 싱크대를 보며 다시 한 번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