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26(목)
어제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던 아내가, 오늘은 다소 벅찬 일정이었다. 오전부터 밤까지 물 샐 틈 없이 빡빡하게 약속이 잡혀 있었다. 일단 오전에는 처치홈스쿨 기도 모임이 있었다. 그게 끝나면 주엽역에서 장모님과 장모님 친구분을 만나기로 했고, 또 그게 끝나고 저녁에는 아내 친구네 부부를 만나기로 했다.
난 퇴근하고 친구네 부부 만나는 일정부터 함께 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처가댁에서 쉬고 있다면서 그리로 오라고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났다는 아내의 얼굴이 좀 푸석푸석했다. 엄청 피곤해 보였다.
"몸이 안 좋아?"
"그런 건 아니고 너무 피곤해서"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내만큼이나 졸려 보였다.
"애들도 낮잠 안 잤어?"
"소윤이는 안 잤고, 시윤이는 한 20분 잤나"
"오늘 괜찮을까"
"그러게"
걱정스러웠다. 밤 시간까지 잘 버티며 기분 좋게 놀 수 있을지. 대화동에 살 때 자주 가던 주상복합아파트 상가에서 아내 친구를 만났다. 친구 남편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중이라 좀 늦었고, 아내 동생(여)이 잠깐 함께 나왔다. 아내 친구도 딸(4살), 아들(1살) 두 아이의 엄마다. 아내 친구 동생이 만나자마자 애들을 데리고 다이소에 가서 스티커를 하나씩 사줬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전에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봤어도 아마 엄청 잠깐이었을 거다) 처음 보는 이모가 친근하게 다가오니 약간 당황한 듯 보였지만 금방 벽이 허물어졌다.
친구 남편은 많이 늦는다고 해서 우리끼리 먼저 저녁을 먹었다. 아내 친구 동생은 아내 친구의 아들을 전담해서 봤다. 그러더니 결국 아기 띠로 안고 먼저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퇴근하자마자 곧장 거기로 온 거라고 했는데. 역시 이모가 최고다. 그걸 보며 다시 한 번 우리 롬이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성별이 결정되었을 롬이야. 혹시나 아니라면, 너무 서운해하진 말고.) 나의 손주들에게 이모와 외삼촌을 주고 싶다. (시윤이의 자녀들아, 고모도 나쁘지는 않아) 롬이가 11주라니까 한 4주 후면 알게 되겠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밥을 잘 먹었다. 밥 거의 다 먹었을 때쯤에 아내 친구 남편도 도착했다. 밥 먹고 나서는 같은 건물의 야외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애들이 뛰어놀기에는 충분히 넓고, 어른이 가만히 앉아서 보기에는 적당한 크기의 공간이었다. 물론 가만히 앉아 있지는 못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높은 계단이 있었는데 다들 거기서 놀았다.
"아빠. 나 잡아줘여"
"아빠. 나두나두"
소윤이는 세 칸, 시윤이는 한 칸이 본인 힘으로 뛰어내릴 수 있는 최대치였는데 그보다 높이 올라가서 내 손을 잡고 붕 날아서 맨 밑까지 내려가는 놀이(?)를 반복했다. 간단히 말하면 내 어깨의 팔을 바치는 놀이였다. 아니 애들은 힘들지도 않은가. 그 높은 계단을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지치지도 않고. 아내 친구 딸도 범상치 않은 활력을 소유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 명의 아이들이 모두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었던 시간이 한 10분 정도 있었다. 아내 친구가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 왔을 때였다. 아내 친구는 1인 1 구슬 아이스크림을 제공했다. 역시 이모가 최고다. 핏줄 이모든 호칭 이모든 어쨌든 이모가 최고다. 아빠(나)는 하나 사 주고 나눠 먹이면서도 온갖 생색은 다 내는데.
소윤이랑 아내 친구 딸은 이제 뭔가 좀 통하는지 제법 잘 어울렸다. 물론 시윤이도 잘 따라다니긴 했다. 다만 아직은 두 누나의 뜀박질을 따라가기가 좀 벅찰 뿐이었다. 그래도 뭐 서로 싸우지도 않고 짜증 내는 녀석 하나 없고. 그 정도면 잘 놀았다. 헤어지기 전에 아내 친구가 애들을 다이소에 또 데리고 가서 색종이, 스티커북, 물감색칠북(?) 같은 걸 사줬다. 역시 이모가 최고야.
계단에서 놀면서 바닥에 구르고, 손으로 짚고 그랬다. 집에 가는 동안에 잠들 게 분명했는데 그대로 재우기에는 너무 찝찝했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손과 얼굴만이라도 씻겼다. 집에 갈 때가 되니 소윤이와 시윤이도 피로가 한계에 다다랐는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내도 애들만큼이나 피곤해 보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반갑게 인사하며 헤어진 뒤 차에 탔다. 시윤이는 손가락 빠는 걸로 조금 칭얼대다가 금방 잠들었다. 소윤이는 집에 갈 때까지 안 잤다. 정말 대단하다. 자기 입으로 졸리다고 계속 얘기하면서도 잠들지는 않았다. 억지로 잠을 물리치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 정도의 체력이 길러졌나 보다.
"소윤아. 오늘은 엄마가 같이 못 들어가"
"왜여?"
"엄마 내일 처치홈스쿨 준비할 게 있어"
"아빠. 그럼 엄마 대신 아빠가 재워줄거져?"
"아니, 소윤아. 오늘은 소윤이랑 시윤이만 들어가서 자. 아빠도 할 일이 있어"
슬쩍 한 번 던져봤는데 소윤이는 매우 서럽게 울었다. 너무 훅 들어가긴 했다.
"소윤아. 아빠가 재워줄게"
엄청 피곤했다. 내가. 오늘따라 왜 그랬지. 평소에도 퇴근하자마자 육아 출근할 때가 많았는데.
소윤이는 옷을 갈아입히고 양치를 시켰다. 시윤이는 계속 잤고.
"아빠. 꽃베개 베면 안 돼여"
"아, 괜찮아. 오늘만 봐 줘"
소윤이가 정해준 아내 전용 베개다. 그걸 내가 베면 엄마 냄새가 사라지고 내 냄새가 난다고 난 못 베게 한다. 오늘은 그거 바꾸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피곤해서 소윤이의 의견을 묵살했다. 미안, 소윤아.
"아빠. 자장가 불러주세여"
[엄마가 섬 그늘에]를 한 세 번 불렀더니 잠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도 몇 번을 졸았다. 얼른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처치홈스쿨 예배 준비를 한다며 소파에 앉았다. 난 작은방 노트북 앞에 앉았다. 잠의 기운이 남았는지 노트북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샤워를 하며 잠을 쫓으려고 거실로 나갔는데 아내가 소파에서 졸고, 아니 자고 있었다.
"여보"
"어. 어"
"들어가서 자야겠다. 어차피 오늘은 뭐 못하겠네"
"아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여보야 피곤할만하지. 일단 씻어"
"그래야겠다"
아내는 씻고 나와서 그대로 들어갔다.
아내가 남은 김치찌개 한 번 더 끓여 달라고 부탁했다. 잊기 전에 미리 해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