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위해서라면

19.09.29(주일)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배고프다며 얼른 밥 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난 어제만큼 늦게 일어났고.


"여보. 오늘 아침은 뭐 먹이지"

"그러게"

"그냥 김에다 싸 줄까?"

"좋다"


균형 있는 영양 공급 따위는 저세상에 던져 버렸다. 시간이 없으니 간편함이 최고의 덕목이다. (어제 오리 고기 먹었으니까 괜찮다. 인생은 마라톤이니까 길게 봐야지.)


시윤이가 요새는 엄지손가락 빠는 게 많이 줄었는데 차에 타기만 하면 자동으로 손이 들어간다.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넣었다가도 빼라고 하면 씨익 웃으면서 빼는 게 대부분인데 차에서는 고집을 부린다. 오늘도 교회 가는 길에 손 빼라고 했더니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빼라고 한 거 자체가 서러웠나 보다.


"소윤아. 오늘 아빠랑 축구 갈 거지?"

"생각 좀 해 볼게여"

"뭘 생각을 해 봐. 같이 가자. 날씨도 좋은데"

"생각하고 이따 말해 줄게여"


도도하기 굴긴. 소윤이가 안 가면 시윤이도 못 데리고 가기 때문에(시윤이만 데리고 가면 분명히 축구하고 있는 나를 향해 운동장에 난입할 게 분명하다.) 반드시 소윤이를 데리고 가야 했다.


예배를 마치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갔다. 어린이 예배 시간에는 항상 간식이 나오는데 오늘은 젤리와 초코 우유였다. 대학생 때 교회에서 유치부 교사하던 시절에 가끔 "우리 000는 간식 먹이지 말고 그냥 싸 주세요. 그거 먹으면 밥을 잘 안 먹어서요"라고 부탁하시는 집사님들이 있었다. 사실 그때는 속으로 '그냥 먹이면 되지. 유별나시긴' 하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무려 15년 가까이 지나고 나서야 그분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다. 세상에 끊을 수 없는 게 세 가지 있다. 도박, 나오기 시작한 오줌, 그리고 이미 입에 들어가기 시작한 소윤이와 시윤이의 간식.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미 나오면서 젤리와 초코우유를 먹고 있었다. 소윤이는 초코우유를, 시윤이는 젤리를 밥 먹기 전에 이미 먹어 치웠다.


"소윤아, 시윤아. 남은 건(소윤이는 젤리, 시윤이는 초코 우유) 밥 먹고 먹자"


조금 매운맛이 있는 국이었는데 다행히 끝까지 먹었다. 소윤이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정도였고, 시윤이는 모르는 척 먹였는데 잘 먹었다. 그러다 중간쯤에


"아빠. 매워여어"


라며 혀를 쭉 내밀길래 아내와 함께 정신없게 만들었다.


"아니야. 괜찮아. 안 매워"


그러면서 한 숟가락 더 넣어주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소윤아. 아빠랑 축구장 가려면 낮잠 꼭 자. 알았지?"

"네"


시윤이는 교회에서 집에 가는 길에도 손가락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쳤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는 잠들었는데 집에 올라가서 눕혔더니 눈을 떴다. 당연히 다시 자겠거니 생각하고 나왔다.


밥 먹고 나서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 데려다주고 난 다시 교회로 가서 목장 모임을 했다. 목장 모임이 끝났을 무렵,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응, 소윤아"

"아빠. 저 낮잠 자고 지금 일어났어여"

"그랬어? 푹 잤어?"

"네. 엄마는 시윤이 재워주고 전 혼자 잤어여"

"와. 기특하네. 잘 했어. 시윤이는?"

"시윤이는 아직 자여"

"그래, 알았어. 아빠 이제 끝나서 가니까 좀 이따 보자"


시윤이는 내가 집에 막 도착했을 때 깼다.


"소윤아, 시윤아. 가자"


커다란 축구 가방과 함께 기저귀, 물티슈, 각종 간식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모기의 습격을 막기 위해 분사형 모기 퇴치제, 모기 퇴치 패치도 잊지 않았다.


"여보. 고생해"

"고생은 뭘. 놀러 가는데"


날씨는 아주 좋았다. 볕이 좀 뜨겁긴 했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놀기에는 괜찮았다. 유일한 잠재적 위험은 시윤이가 어제 똥을 안 쌌다는 거였다.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긴 했다. 뭐 예비 다둥이 아빠로서 축구하고 싶으면 운동장에서 똥 닦는 수고쯤이야 감수해야 한다.


오늘은 다른 아이들도 많이 오고 특히 소윤이보다 한 살 많은 여자아이, 시윤이랑 동갑인 남자아이를 둔 집사님도 오셨는데 아내분도 함께 오셨다. 그 아내분이 우리 애들이랑 잘 놀아주시고 봐주셨다. 옆에 딸린 놀이터에도 데리고 갔다 오시고. 덕분에 큰 방해 없이 축구를 했다. 소윤이가 킥보드 타다 넘어졌다면서 떠나가라 울길래 잠깐 가서 위로해 준 것 말고는. 무엇보다 시윤이가 똥을 싸지 않은 게 고마웠다. 진심으로.


"여보"

"응. 끝났어?"

"어. 지금 끝났어. 윤재 지하철역에 데려다주고 가려고. 여보는 뭐 했어?"

"난 하람이네 있었어"

"아, 그랬구나. 잘 쉬었어?"

"응. 저녁은 밖에서 먹을까?"

"그래"

"어디서 먹지?"

"여보가 정해"

"해까득이나 생선구이 둘 중에"

"여보 먹고 싶은 걸로"

"그럼 해까득 가자"


처음에 가려고 했던 식당은 문을 닫아서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다. 차에서 시윤이를 내리는데 구린 냄새가 났다. 바로 기저귀를 확인했고, 맞았다.


"시윤아. 똥 쌌어?"

"네"


축구할 때 싸는 거랑 밥 먹기 전에 싸는 거랑 뭐가 더 안 좋은지는 모르겠다. 바로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닦아줬다. 양(?)이 많지 않아서 불안했다.


'이거. 또 싸겠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생선구이를 먹고 난 물회를 먹었다. 엄청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축구장에서 군것질을 하도 많이 해서 밥을 잘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엄청 잘 먹었다. 세 시간을 열심히 뛰어서 그런가 배가 고팠나 보다.


밥 먹고 잠깐 마트 구경을 하는데 시윤이가 갑자기 장바구니를 모아둔 곳 옆의 구석진 곳으로 들어갔다.


"시윤아. 나와. 가자"

"아아앙"

"시윤이 똥 싸?"

"네"

"알았어. 다 싸면 말 해"


자신만의 헛간에 머물던 시윤이는 아내 손을 잡고 마트를 나왔다. 차에 데리고 가서 태우려고 하는데 카시트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시윤아. 얼른 타"

"아빠아. 시더여어"

"얼른. 아빠 힘들어. 얼른 타"


그러면서 강제로 카시트에 앉혔더니 시윤이가 말했다.


"아빠아. 똥 땄는데 왜에 카지트에 앉아여어어"

"시윤아, 지금은 못 닦아주니까 그렇지"

"화장실에 가믐 대자나여어어어"

"집에 금방 가니까 집에 가서 깨끗하게 닦아줄게"


이해는 된다. 얼마나 찝찝할지.


집에 가자마자 시윤이부터 씻겼다. 이제 말이 많아져 가지고 똥 닦을 때도 어찌나 종알거리는지.


"아빠아. 너무 제게(세게) 따끄니까 아프자나여어어"

"깨끗하게 닦으려면 어쩔 수 없어"

"그래두여어. 안 아프게 해야지여어어"

"알았어. 좀 숙여봐"

"아빠아. 여기 너무 제게 잡으니까늠 아프자나여어어"

"넘어질까 봐 그랬지. 알았어, 미안해"

"아빠아. 다 따까떠여어?"

"아니 아직. 좀 더"

"왜케 오래 따가여어어"


소윤이도 씻겼다. 소윤이 머리를 말려줄 때쯤에는 축구로 유발된 건지 똥에서 비롯된 건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육아로 인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빠. 오늘은 누구랑 들어가서 자여?"

"엄마"


본능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축구로 인한 즐거움이 매우 크지만 대가 또한 못지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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