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30(월)
"알람 안 맞춰?"
"괜찮아. 어차피 애들이 먼저 깰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에이. 그런 일은 어쩌다 한 번이지"
어제 누워서 아내랑 나눈 대화였는데, 오늘 그 일이 일어났다. 다행히 아내는 진작 일어나서 늦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내 빼고 나머지는 모두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다.
아내는 오늘 파주에 간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좀 쉬기 위해서였다. 소윤이는 조금 먼저 깨서 옷을 갈아입었지만, 시윤이는 깨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그대로 집에서 나왔다.
"아빠아. 하무니 집에 가니까 조아여어"
오후 늦게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는 잘 쉬고 있나]
[응, 실컷]
[지금은 뭐해?]
[잠깐 카페 옴]
친정 찬스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퇴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왔다. 처가댁에서 사무실까지 한 15분 거리인데 시윤이는 그새 잠들었다가 깼다고 했다. 시윤이는 입을 삐쭉 내민 슬픈 표정으로 내게 와서 안겼다.
"시윤아. 잤어?"
"네"
"졸려?"
"네"
그대로 차에 타면 다시 잠들 것 같아서 사무실에 좀 놀면서 잠을 깨웠다. 웃으면서 깔깔댔더니 잠이 좀 깼는지 금방 활력을 찾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서 향긋한 비누 향이 풍기길래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나오기 전에 씻었따고 했다.
아내는 내일 처치홈스쿨 반찬으로 찜닭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들어가면서 장도 봐야 하고. 시윤이가 잠이 좀 깬 것 같기는 해도 집에 가는 시간이 30분은 걸릴 텐데 다시 잠들 것 같았다.
"여보. 아니면 여기서 장도 보고 밥도 먹고 갈까?"
"어디서?"
"홈플러스에서"
"그러자 그럼"
"여보 편한 대로 해. 그냥 얘기해 본 거야"
"나도 좋아. 그렇게 하자"
시윤이는 오늘 무려 세 번이나 똥을 쌌다고 했다. 처가 댁에 있었던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내리사랑이어도 하루 삼똥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힘드시겠지?
마트에 가서 장을 본 다음 저녁을 먹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여러 군데의 식당이 있었는데 최종 후보는 수제비 집과 즉석떡볶이집이었다. 아내는 전혀 욕구가 없다며 나에게 전권을 넘겼지만 갈팡질팡이었다.
"그럼 저기 안 가 봤으니까 오늘 저기 가 봐"
아내의 말에 즉석 떡볶이 가게로 들어갔다. (아내는 교회 사람들과 가 본 적이 있었고 난 없었다.) 여러 재료를 직접 가지고 와서 만들어 먹는 곳이었다. 재료는 물론이고 소스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냄비는 하나였다. 일단 애들한테 먹일 궁중 떡볶이를 만들었다.
"여보. 그럼 우리가 먹을 건 어떻게 끓여?"
"이거 다 익으면 덜어 놓고 여기다 끓여야지"
애들 그릇에 떡을 덜어주고 남은 건 또 다른 접시에 담아놨다. 그러고 나서 아내와 내가 먹을 매운 떡볶이를 새로 끓였다. 우리가 먹을 떡볶이를 끓이고 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이미 떡을 다 먹고 더 달라고 했다. 너무 조금만 끓였나 보다.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엄마, 아빠 꺼 다 만들어지면 다시 만들어 줄게"
매운 떡볶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나서 다시 그 냄비에 애들 떡을 좀 익혀줬다. 매운 양념은 최대한 걷어내고 육수를 부어서 익혔다. 애들 떡을 다 익히고 나서는 다시 매운 떡볶이. 하아, 세상 귀찮은 식당이었다. 도대체 몇 번을 앉았다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재료도 직접 가지고 와야 하고, 떡볶이는 도대체 몇 번을 바꿔 끓인 건지. 그래도 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일단 앉으면 맛있게 먹는 능력. 진짜 웬만큼 맛이 없지 않고서는 누가 보면 진짜 맛있어서 먹는 줄 알 만큼 잘 먹는다. 다음에 안 올지언정. (물론 실제로 90% 이상은 맛있어서 먹는 거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특별히 땡깡을 피우거나 귀찮게 한 게 아니었는데도 분주했다. 진득하게 앉아서 먹을 식당이 아니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요령이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여기는 또 못 오겠다'
정신 사나운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시윤이가 또 구석진 곳을 찾아 몸을 숨겼다.
"시윤아. 똥 싸?"
"네"
"알았어. 다 싸면 말해"
"네"
조금 더 기다렸는데 계속 그 자리였다.
"시윤아. 아직도 싸?"
"네"
"알았어. 힘 많이 줘"
잠시 후.
"시윤아. 이제 가자"
"아니에여어어어"
"왜. 아직 안 쌌어?"
"쪼꿈 더 싸구여어"
"그래, 알았어. 얼른 힘주고 싸"
잠시 후.
"시윤아. 이제 다 쌌지? 가자"
"아아아앙"
"뭘 또 아아앙이야. 다 쌌으면 얼른 가야지"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닦아주는데 떡볶이의 포만감이 싹 사라졌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꼭 밥 먹기 전에만 밥맛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밥 먹고 나서도 얼마든지 밥맛이 떨어질 수 있다. 오늘이 그랬다. 물티슈로 닦고, 물로 닦고, 중지로 닦고.
하아. 내 중지야 오늘도 니가 희생했구나. 좋게 좋게 생각해. 원래 넌 태생이 그런 애야. 다른 이를 향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면 욕설이 되잖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투를 벌이는 너의 헌신적인 삶. 칭찬한다.
"아빠아. 비누 왜케 많이 해여어"
"어. 시윤이 똥 닦아줬더니 냄새가 나서"
"왜여어?"
"원래 똥은 냄새가 나"
잠시 후.
"아빠아. 왜 또 비누 해여어?"
"냄새가 안 지워져서"
"왜여어?"
"그러게. 강력하네"
잠시 문구점을 둘러보며 마음의 안정을 꾀했다. 소윤이가 액세서리 앞에서 서성이길래 얘기했다.
"소윤아. 반지 하나 사 줄까?"
"네, 좋아여. 좋아여"
"아빠아. 나두우우"
"시윤이가 할만한 게 있을까?"
"아빠아. 나 저거어. 저거어"
뽀로로 반지도 있었다. 시윤이는 그걸 골랐다. 조금 이따 크롱 반지로 바꿨다. 소윤이는 너무 반지가 많으니 혼란스러운지 쉽게 고르지 못했다. 아내의 도움으로 꽃반지 하나를 손에 넣었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괜히 밖에서 밥 먹었나 하는 쓸모없는 후회도 하고. 서둘러 차에 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오면서 잠들었다. 시윤이는 그대로 계속 잤는데 소윤이는 지하 주차장에서 집에 올라갈 때 깼다. 그러고 보니 소윤이는 요즘 이렇게 옮기는 도중에 깰 때가 많다. 이것도 커서 그런 건가. 소윤이는 깬 김에 옷도 갈아입고 화장실도 한 번 다녀왔다. 아내가 소윤이와 함께 들어갔다. 한 20분이 지났을까. 아내가 씩씩거리면서 나왔다.
"왜?"
"소윤이 안 자"
"그래서?"
"그냥 나왔어"
"안 울어?"
"울지"
"잘 설명해주고 나와"
"설명은 해줬어"
다행히 소윤이는 그대로 잤다.
찜닭 만들어야 한다. 너무 즐겁다. 닭 요리는 언제나 맛있으니까. 사랑하는 아내랑 이 늦은 시간에 요리라니. 고것도 우리가 먹을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먹을 걸 만든다니.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싶다. 너무 즐겁다. 너무 행복하다. 어떻게든 맛있게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