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애도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해?

19.10.01(화)

by 어깨아빠

소윤이는 일어나서 내가 안 보이면 꼭 나를 찾는다.


"아빠는여?"


정작 거실에 앉아 있거나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나를 마주하면 심드렁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웃어 달라고 하면 [자녀의 의무 방어용 웃음]을 짓곤 한다. (물론 잠이 얼마나 깼느냐에 따라 다르다.) 오히려 시윤이는 빼놓지 않고 내게 와서 안기고 뽀뽀도 하고 그런다.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움직임일 때가 많기는 하지만.) 오늘은 아내와 소윤이가 날 배웅했다.


"소윤아. 오늘 처치홈스쿨 잘 갔다 와. 여보도 수고하고"


오늘은 퇴근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혹시 처치홈스쿨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두 아이와 함께하면 으레 겪는 분주함 때문인 듯했다.


"여보. 어디야?"

"아. 나 오빠네 집 놀이터"

"아. 그래? 그럼 나 원흥에서 내리면 되나?"

"어. 여보 원흥에 도착했을 때까지 내가 연락 안 하면 그냥 이쪽으로 오면 돼. 내가 먼저 가게 되면 여보한테 전화할게"

"알았어"


막 원흥역에서 내렸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방금 원흥역에 내렸어"

"아 그렇구나. 여보. 오늘도 여기서 분식 사서 먹을까?"

"그럴까?"

"어. 사서 집에 가서 먹자"

"그래 알았어"


어둑어둑했는데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애들은 삼촌도 있고 좋았겠지만 아내에게는 버티기의 시간이었을 거다. 형님(아내 오빠)하고는 거기서 헤어지고 장에 가서 떡볶이와 튀김을 비롯한 분식류를 사서 집으로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낮잠을 잘 잤다고 했다. 낮잠과는 상관없이 시윤이가 하루 종일 땡깡을 많이 부렸다고 했는데 나랑 만나고 나서도 약간 그 모습이 나왔다. 낮잠을 안 잤을 때처럼 이성을 잃을 정도로 피곤하지 않아서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게 다행이었다.


"밥이 있나? 애들 밥을 좀 줄까?"

"밥이 있기는 한데"

"밥 주지 말까?"

"어. 그냥 안 줘도 괜찮을 거 같아"

"그래 그럼"


애들의 주식은 튀김이었다. 순대는 둘 다 별로 안 당기는지 잘 안 먹었다. 튀김, 어묵, 빵이 아이들의 저녁인 셈이었다. 아주 조금, 잠깐 미안함이 스쳤다. 어쩌다 한 번까지는 아니어도 그렇다고 매일 이러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


퇴근할 때부터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열심히 저녁을 먹고 나니 또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나의 진심은 숨기고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애들 샤워 시켜야겠지?"

"그냥 내일 하자"

"그럴까?"

"내일 낮에 내가 할게. 안 되면 목요일에 하고"

"목요일에는 기도 모임 가야 되잖아"

"안 가는데?"

"왜?"

"한글날이야"


두 가지 기쁜 소식이었다. 오늘 샤워 안 시켜도 된다는 것과 목요일이 휴일이라는 것.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하루 종일 나도 땀을 삐질삐질 흘렸는데 소윤이의 앞머리도 오늘 하루의 날씨를 담아낸 듯 촉촉이 젖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개운하게 감겨주고 싶었지만 몸은 마음 같지 않았다.


아내도 많이 피곤해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별로 지친 기색이 없길래 좀 나아졌냐고 물었더니 속은 여전히 울렁거린다고 했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한 날 ~ 처음 병원에 간 날 : 보통

처음 병원에 간 날 ~ 추석 연휴 전 : 매우 나쁨

추석 연휴 기간 : 매우 좋음

추석 연휴 후 ~ 9월 중순 : 나쁨

9월 중순 ~ 9월 말 : 보통에 가까운 나쁨

요즘 : 대부분 보통이다가 가끔 나쁨


물론 내 느낌이다. 유력한 정황 증거는 더러 있다. 오늘은 평소에도 한두 개 집어 먹고 마는 순대를 몇 개 집어 먹었다. 심지어 맛있다고 하면서.


다만 임신 이후 변하지 않고 늘 비슷한 건, 급격히 저하된 체력과 해가 지고 나면 두드러지는 피곤함이다. 아내가 완전히 입덧에서 해방되었음을 스스로 선포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치킨 한 마리 무료 쿠폰]을 잘 모셔두고 있다.


"아빠. 오늘도 우리 들어가서 오늘 뭐가 좋았는지 얘기하자여"

"그래"

"아빠. 저부터 얘기할게여. 우리 두 가지씩 얘기해여"

"그래. 소윤이 얘기해 봐"

"어, 어, 저는 처치홈스쿨에 가서 친구들하고 예배드린 거랑 우리 가족하고 맛있게 저녁 먹은 게 감사했어여"

"아, 그랬구나. 짱인데? 하이파이브"

"이제 아빠 말해여"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소윤이랑 시윤이 만난 거랑 오늘도 맛있게 저녁 먹은 게 감사했어"


소윤이가 쇼윈도 언행을 보일 때도 종종 있지만 그 안에 섞이는 진심이 굉장히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 요즘은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거나 롬이를 위해서 기도할 때 자주 그렇다. (아내가 그렇게 전해줬다.)


"아빠아. 아빠아. 나두"

"그래. 시윤이도 감사했던 거 말해 봐"

"아빠. 나늠. 어, 어, ㅁ;ㅇㄹ;ㅏㅁㅇㄴ러민;아러. 감자했더여어"

"아, 그랬구나. 시윤이도 짱인데? 하이파이브"


옆에 누워있던 아내가 말했다.


"시윤이 뭐라고 한 거야?"


시윤이 못 듣게 고개를 저으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몰라. 나도 몰라)"


시윤아, 미안. 얼른 눕히고 오늘 하루를 끝내고 싶었어. 반성한다. 너희들에게 그렇게 건성건성, 대충대충 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말이야. 너의 말을 완역할 때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을 갖추도록 노력할 게.


집요함은 집요함이고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니. 눈이 막 감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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