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짜증 한 바가지

19.10.04(목)

by 어깨아빠

어젯밤, 먼저 자러 들어가는 아내에게 한 가지 부탁을 남겼다.


"여보. 내일 늦잠을 부탁해"


분명히 어딘가에 숨기고 있을 테지만 결혼 후 7년 동안 찾지 못하고 있는 날개를 감춘 천사 같은(여기까지 수식어) 아내(이게 주어)는 정말 내 늦잠을 지켜줬다. 아내와 애들은 비슷하게 깨서 거실로 나갔다.


시윤이의 울음소리, 땡깡 소리, 짜증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한 시간 정도는 그 소리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얼핏 시계를 봤을 때 9시 30분이었다.


'엄청 많이 잤네'


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차려서 나가려는데, 그게 아니었다. 10시 30분이었다.


'응? 10시 30분?'


고작 한 시간이지만 느낌이 많이 달랐다.


"여보. 미안. 너무 많이 잤네"


아내는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시윤이는 여전히 걸핏하면 울고 징징대기를 반복했다. 이미 내가 나오기 전에도 몇 시간을 그렇게 보낸 아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아빠아. 노이터 가도 되여어어?"

"놀이터?"

"네. 엄마가아 아빠 나오시믄 노이터 가도 된다고 했떠여어"

"그래, 가자"


아침에 그렇게 늦게까지 잤는데도 뭔가 개운치 않았다. 애들은 아침까지 다 먹고 아내가 설거지도 해놨는데 깨자마자 놀이터 가자고 보채는 게 오늘따라 유독 싫었다. 거기에 남은 잠을 떨쳐내기 위해 거실에 누워 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번갈아 가면서 놀이터는 언제 갈 거냐고 계속 물어봤다. 그냥 막 짜증이 났다. 얼마나 싫고 짜증이 났냐면 놀이터 가기 싫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속에서 천불이 나서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아아아아. 놀이터 진짜 가기 싫다"


당연히 모두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참 바보 같기도 하고 후회도 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소윤이는 약간 눈치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시윤이는 뭐 별로 신경 안 쓰는 듯했고. 그냥 막 다 싫었다. 나 혼자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싫고, 쉴 때마다 나가는 것도 싫고, 준비하고 있는데 보채는 것도 싫고, 툭하면 징징대는 것도 싫고.


짜증이 내 육체와 영혼을 지배하려 할 때 이성이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나갈 건데 기분 좋게 나가지, 괜히 애들이 눈치 보면 그게 좋냐'


는 음성과 함께. 의지를 가지고 짜증을 억눌렀다.


현관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맞는 순간 피가 새로 도는 느낌이었고, 완전히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는 순간 새사람이 되었다. 애 키우다 보면 자연 따위(?)에 감동할 겨를이 없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아무리 복잡하게 얽힌 속이라도 파랗고 맑은 하늘 아래서 선선한 바람 한 번 맞으면 스르륵 풀리기도 한다. 오늘 같은 날이 1년으로 치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아쉽지만.


"소윤아, 시윤아. 날씨 진짜 좋다. 그치?"

"아빠. 진짜 시원하다여"


소윤이는 자전거를, 시윤이는 킥보드를 가지고 나갔다. 오늘도 놀이터에 아무도 없었다. 다들 쉬는 날 뭐 하는 거지? 멀리 놀러 가나? 아니면 집에 있나? 매우 궁금했다.


나란히 앉아 그네를 타는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서서 [그네 밀어주는 기계]가 되어 양팔로 소윤이와 시윤이를 번갈아서 밀었다. 자전거와 킥보드도 타다가, 다시 그네도 타다가, 매달리기도 했다가, 다른 놀이터로 옮겼다가.


저녁에는 아내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처가 식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그전에 아내는 처치홈스쿨 교재를 받으러 근처 교감 선생님 집에 잠깐 다녀와야 했고. 시윤이는 아침 먹다가 행패(?)부리는 바람에 그릇을 회수당했고, 점심 먹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벌에 처했다. 시윤이가 배가 고플 것 같기도 했고, 간식을 먹으려다가도 형기(?)가 끝나지 않은 시윤이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니 답답했다.


"여보. 뭐해?"

"아, 나도 나가려고"

"아, 그래? 점심은 어떻게 할까?"

"여보 놀이터에 있으면 서브웨이 같은 거 사가지고 와서 먹을까 했지"

"애들은?"

"애들은 저번에 꼬마 김밥 먹었던데 맛있더라고. 거기서 사 주고"

"아, 그래. 일단 지금 바로 나올 거야?"

"응. 다 씻었어. 나가기만 하면 돼"

"알았어"


아내는 점심 먹고 바로 교재 받으러 갈 예정이었다. 아내는 애들과 함께 주먹밥을 사서 서브웨이로 갔고, 난 꼬마 김밥을 사서 서브웨이로 갔다. 애들은 주먹밥과 김밥, 나와 아내는 샌드위치를 먹었다. 다 먹었을 무렵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난 언니가 지금 시간이 안 될 거 같다고 해서 그냥 이따 나가는 길에 잠깐 들르기로 했어"


우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랄까.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한살림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줬다. 쭈쭈바였는데 소윤이는 물론이고 시윤이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야물차게 먹었다.


"이제 들어가서 낮잠 자자"

"누구랑여?"

"엄마랑 자"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해방. 마침 LG vs NC 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막 시작할 시간이었다. 일단 개운하게 샤워부터 했다.


'육아의 묵은 때가 다 씻기게 하소서'


아내도 애들을 재우고 금방 나왔다. 소윤이가 깰 때까지, 한 시간 정도 아주 편안하게 야구를 봤다. 거기에 LG가 경기도 아주 잘 풀어가는 바람에 스트레스도 풀렸다. 소윤이가 먼저 깼고, 30분 정도 있다가 시윤이도 깼다.


소윤이부터 샤워를 해줬다.


"아, 아빠. 물만 뿌렸는데도 개운하다여"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그럴 만했다. 너무 오랜만이었으니까. 시윤이도 씻겨서 옷을 갈아입혔다. 애들부터 나갈 준비를 싹 시키고 나서 나도 옷을 입으려고 했는데 시윤이랑 작은방에 들어간 소윤이가 제보했다.


"아빠. 시윤이 똥 싸는 거 같아여"


나도 모르게, 본능적인 반응이 나왔다.


"아아아아. 진짜 싫다"


그러면서 거실 바닥에 털푸덕 드러누웠는데 작은방에 있던 시윤이가 쭐래쭐래 걸어 나오더니 문턱 위에 서서 다소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아. 그여케 말하지 마여어. 진짜 싫다 이케에(이렇게)"


뜨끔했다. 미안하기도 했고. 시윤이는 정말 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아, 아니야. 시윤아. 시윤이한테 그런 거 아니야. 시윤이 똥 쌌어? 괜찮아. 아빠가 닦아주면 되지. 이리 와"

"아니에여어. 아직 더 싸 꺼에여어어"

"그래, 알았어. 다 싸면 얘기해"


시윤이는 다시 작은방으로 모습을 감췄다. 시윤이는 이제 똥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는 것 같다. 더욱 조심해야겠다. 거사를 마친 시윤이를 데리고 가서 다시 엉덩이를 닦았다. 평소보다 한결 더 과하게 신난 척하면서.


식당에서 장인어른, 장모님, 형님(아내 오빠), 아주머님(형님의 부인, 이게 공식 호칭이다. 한 번도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지만)을 만났다. 음식은 아구찜이었다. 당연히 애들이 함께 먹지는 못했지만 대신 밑반찬 중에 애들이 먹을 게 좀 있었고, 주먹밥도 있었다. 그래 봐야 밥과 김을 버무려 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어설픈 어린이 메뉴보다 나을 때가 많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도 엄청 잘 먹었다. 어른 중 누구라도 애들 신경 쓰느라 제대로 못 먹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아서 잘 먹었다.


2차로 카페에 갔다가 집에 돌아왔다. 나가기 전에 샤워를 한 게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사실 평소에 샤워를 했든 안 했든 간략하게 손, 발, 얼굴만 씻기고 재울 때가 허다하다. 샤워를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재울 때의 죄책감에 비해 당연히 해야 할 샤워를 하고 재울 때의 떳떳함(내적 생색)이 훨씬 크다.


집에 돌아오니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간단히 씻기면 되는데 그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여보. 애들 좀 씻겨줘"

"알았어"


아내에게 맡기고 그대로 거실에 누웠다. 쪽잠을 잤다.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뭐지.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가면서 내 잠도 가지고 갔나. 애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니 정신이 또렷해졌다.


육아의 신비다. 육아 피사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수면 욕구가 증발해버리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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