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덧

19.10.16(수)

by 어깨아빠

오후쯤 아내가 두통이 심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집에 종일 있어서 심해지나]


합리적인 추론이다. 바깥 날씨가 그렇게 좋은데 집에만 갇혀서, 그것도 두 아이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한껏 들이마시며 보내면 머리가 아플만하다. 그렇다고 밖으로 데리고 다니자니 몸이 힘들고. 육아인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다.


롬이가 입주한지 어느덧 14주가 되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완전한 정상인으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초기처럼 꾸엑꾸엑 하거나 아무런 섭취 욕구가 없는 건 아니어도 여전히 속이 불편하고 체력 고갈이 심하다. 거기에 두통까지. 두통덧으로 명명했다. 배 속에서 실컷 머리 아프게 하고 나와서는 말 잘 듣거라, 롬이야.


퇴근하려고 차에 탔는데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잠시 형님(아내 오빠)네에 갈 거라며 그리로 오라고 했다. 오는 길에 반찬 가게에 주문해 놓은 반찬도 찾아 오라고 했다. 감자 고로케, 호박볶음, 감자 샐러드 이렇게 세 개였다 반찬을 찾아서 형님네 집으로 갔다. 시윤이는 한눈에 봐도 낮잠을 안 잔 듯했다. 기분이 안 좋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끔뻑끔뻑하는 눈꺼풀이 단서였다.


"시윤이 안 잤지?"

"응"


특별히 뭘 한 건 아니고 그냥 앉아 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신이 났다. 삼촌과 숙모를 참 좋아한다. 퇴근하는 숙모의 얼굴을 보고 가겠다고 해서 잠깐 놀이터에서 기다렸다. 숙모가 올 때까지 계속 그네만 탔다. 곧 숙모가 왔고 귀가를 통보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마지막으로 시소 타겠다, 진짜 마지막으로 미끄럼틀 한 번 타겠다, 진짜 진짜 마지막으로 다른 미끄럼틀 한 번 타겠다면서 질척거렸다. 시윤이가. 결국 또 울음과 눈물로 마무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마음이 분주했다. 소윤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는데 시윤이가 따라 들어가더니 막 소윤이를 밀치면서 자기가 먼저 씻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시윤아. 누나가 씻고 있는데 누가 그렇게 밀면서 짜증을 내. 시윤이가 기다려야지"

"아니야아아아아아. 내가 먼저어어어어어어"


워낙 졸린 상태라 약간 고민했지만 그대로 두고 가면 잠들 때까지 그럴 것이고, 그럼 아내가 너무 힘들어질 테니 내가 나서기로 했다. 일부러 조금 강하게 훈육을 했는데 엄청 졸린 것치고는 잘 받아들였다. 다행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식탁에 앉아 막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집에서 나왔다.


"여보. 미안하네"

"뭐가. 괜찮아"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서"

"씻겨서 재우기만 하면 되는데 뭐"


3시간의 축구를 마치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며 우리 집 베란다를 올려다봤다. 방과 거실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오늘도 탈출에 실패했구나'


들어가서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문을 열었는데 아내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매우 퀭한 얼굴을 하고.


"30초 전에 일어났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사이에 깼나 보다. 재우는데 엄청 오래 걸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소윤이와 시윤이가 모두 자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잠깐 누워서 쉬려다가 잠든 거다. 홀몸이 아니니 충분히 자고, 많이 자는 게 좋긴 하지만 육아 - 잠 - 육아 - 잠 - 육아 - 잠의 무한 반복이 이어지면 자아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독립과 고립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 드라마 볼 거야"


아내는 [동백꽃 필 무렵]을 봤다. 무료 업로드 사이트에 올라오는 건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종의 양심선언) 결제하고 보라고 했더니 그건 또 돈이 아깝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본방 사수파가 되었다. TV도 없는데.


드라마를 다 본 아내에게 슬쩍 얘기했다.


"여보. 치킨 먹을래?"

"먹고 싶으면 먹어"

"여보는? 안 먹을 거지?"

"나도 좀 먹을게"


아내는 무려 세 조각이나 먹었다. 롬이를 가지고서는 치킨을 입에 댄 것도 처음인데 세 조각이나 먹다니.


"여보. 나랑 먹으니까 더 맛있어?"

"어. 훨씬"


잠시 곁을 떠났던 동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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