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7(목)
아내는 처치홈스쿨 기도 모임에 갔다가 파주에 오기로 했다. 머리를 자른다고 했다. 마침 나도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아내와 아이들은 장모님, 장인어른과 저녁을 먹기로 했고.
아내는 기도 모임을 마친 뒤 장모님에게 소윤이와 시윤이를 맡기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손질했다.
"여보. 나 엄청 많이 잘랐지?"
영상통화를 건 아내가 말했다. 이런 폐쇄적인 질문을 봤나.
"어.어. 그러네"
"이만큼이나 잘랐어. 티 많이 나지?"
"어. 어"
아무래도 아내와 나의 기준이 다른가 보다. 내 생각에 '엄청 많이'는 적어도 어깨 위에서 머리카락이 끝날 정도는 돼야 하는데, 아내에게는 손가락 하나 길이 정도만 돼도 '엄청 많이'인가 보다. 하긴 내 머리 기준으로 손가락 하나면 두발 통제 당하던 중학생 시절 머리처럼 되긴 하겠네.
퇴근 후 약속을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어디야?"
"난 홍익돈까스 앞. 시윤이 훈육 중이야"
"그래? 소윤이는?"
"엄마랑 아빠랑 건강공원 쪽으로 갔어. 우리 여기서 밥 먹고 있는데 예서가 지나갔거든. 얼른 따라가서 예서 만난다면서 갔어"
"그럼 난 어떻게 하지? 그쪽으로 갈까?"
"어. 지금 바로 가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이쪽으로 와"
"알았어"
시윤이는 세발자전거에 앉아 있었고, 소윤이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소윤이가 날 먼저 발견했다. 보통 같으면 바로 달려와서 안겼을 텐데 왠지 모르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소윤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기분 안 좋아?"
"휴우. 아니, 기분 안 좋은 건 아니구"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얘기했다.
"소윤이 왜 그래?"
"아, 예서 못 만나서"
"아, 여기 없어?"
"저기 자전거랑 유모차는 있는데 안 보이네. 한 바퀴를 돌았는데도"
마침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서 엄마(아내의 친한 언니)에게서. 아내는 소윤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통화를 시도했으나 눈치가 빠른 소윤이는 바로 알아차렸다.
"엄마. 엄마. 누구에여? 예서에여? 문희 이모에여?"
아내는 소윤이의 질문을 무시하고 통화를 이어갔다. 잠시 후 통화를 끊고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어, 아니야. 문희 이모 아니고 다른 사람이야"
"누구여?"
"소윤이가 모르는 사람"
그러고는 나에게 와서 첩자가 지령을 전달하듯 은밀하게 말했다.
"예서 저쪽에 있대. 구령대 뒤에"
"그런데? 왜 안 만나?"
"지금 만나면 너무 한참 있어야 할까 봐"
"아, 하긴"
아내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빨 리 집 에 가 고 싶 다]
한 10분 정도 더 놀고 처가댁으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세발자전거를 서로 타겠다고 투닥거렸다.
"아으. 저 세발자전거. 저거 가지고 하루 종일 저런다니까"
아내가 학을 떼며 말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강시윤이 문제였다. 소윤이는 나름 자기 차례도 지키고 시윤이한테 후하게 양보도 하고 그랬는데, 시윤이는 바득바득 욕심만 내고, 뜻대로 안 되면 울고, 드러눕고. 자전거를 타지 않는 동안에는 아빠가 목마를 태워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세발자전거 양도/양수 계약이 보다 수월하게 이뤄졌다.
애들은 나오기 전에 목욕까지 했고, 아내는 잠옷까지 챙겨왔다. 시윤이는 낮잠을 잤고 소윤이는 지난 월요일 명동에 다녀올 때를 생각하면 (낮잠 안 잤다고 가는 길에 무조건 자고 그러는 시기는 지난 듯 보였다.) 오늘도 안 잘 것 같았다.
내 예상은 틀렸다. 둘 다 엄청 깊이 잠들었다. 각자 가장 깊이 잠들었을 때 취하는 자세를 하고. (소윤이는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히고 입을 헤 벌리는, 시윤이는 한쪽 어깨에 자기 턱을 파묻듯 뭉개는) 둘 다 방에 눕힐 때까지 전혀 깨지 않았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오는 내내 숨 쉬듯 하품을 하던 아내는 애들을 방에 눕히고 소파에 앉자마자 얘기했다.
"동백꽃 봐야지"
옷도 안 갈아입고 씻지도 않은 채 휴대폰을 들고 앉더니 이내 깔깔거렸다. 웃긴 장면이 있었나 보다.
오늘도 집이 깨끗했다. 설거지가 좀 있긴 했지만 많지 않았다. 아내에게 늘 얘기한다. 홀몸이 아니니 집안일은 그냥 두고 그럴 시간에 좀 쉬라고. 물론 진심이다. 진심인데 집에 와서 할 일이 하나라도 없으면 좋은 것도 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