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0(주일)
아내가 눈을 뜨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했다. 밥은 2.5인분씩 두 그릇에 나눠 담아서 얼려 놓은 게 있었다. 두 개 다 꺼내자니 너무 많고 한 개만 꺼내자니 좀 부족할 듯싶어서 고민하다가 한 개만 꺼냈다. 반찬도 딱히 없어서 냉동실에 있던 새우와 만두를 털어서 볶음밥을 만들었다. 아내 먹을 건 나중에 깍두기도 넣었다. 아내에게 아내에게 1인분, 소윤이에게 0.8인분, 시윤이에게 0.7인분 이렇게 배분했다.
"소윤아. 맛있어?"
"네, 아빠. 너무 맛있어여. 아빠 요리 진짜 잘한다여"
소윤이는 순식간에 자기 몫을 먹어 치우고 추가분을 요청했다.
"아빠. 밥 더 주세여"
"밥이 없는데. 미안"
"그럼 또 만들어 주세여"
"아, 또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오늘은 점심 일찍 먹으니까 이따 점심 또 맛있게 먹자"
"아쉽다. 또 먹고 싶은데"
시윤이는 여전히 툭하면 징징대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자기 뜻이 막히거나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그저 울음과 떼로만 응수하려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우. 그만 좀 징징거려라"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안 그래도 바쁜데 사사건건 주저앉으며 울상을 짓는 시윤이까지 다루느라 더 분주했다. 기분 풀어주려고 조금 달래주면 또 금방 헤벌쭉 웃고 그랬다.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분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오늘은 목장 모임이 없어서 축구하러 갈 때까지 시간이 있었다. 예배드리고 밥 먹고 잠시 카페에 들렀다.
"여보. 시윤이 태어났을 때 나 혼자 소윤이 데리고 여기 왔던 거 생각난다"
"맞다. 그랬었지"
"내년에는 나 혼자 둘 데리고 오겠네"
또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내 마음이 나를 속이고 있나 보다. 내년에는 정직하게 눈물이 흐르겠지.
시윤이는 거기서 오늘의 첫 똥을 쌌다. 기쁘게(실은 기쁜 척하며) 닦아줬다. 카페에는 잠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집에 가서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다. 난 목장 모임이 없어서 집에 머물렀지만 애들한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빠가 집에 있다는 걸 알면 혹시라도 낮잠에 방해가 될까 봐.
아내와 아이들이 자는 동안 아무런 의미 있는 행위를 하지 못했다. 그저 소파에 앉아 반 무의식의 상태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너무 달콤해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거의 1시간 30분을 잤다. 더 지나면 축구에 지장이 생길 시간이라 내가 들어가서 깨웠다.
모두 푹 자고 일어났는지 개운해 보였다. 아내는 오늘도 우리를 데려다 주고 차를 쓴다고 했다. 교회 끝나고 카페 갔다 오면서 [맑음케이크]에 갔다 오자고 말하려다가 말았다는 걸 보니 아마 혼자라도 다녀오지 않을까 싶었다.
아내는 떠나고 아이들과 남아 즐거운 축구의 시간을 시작했다. 두 게임 정도 뛰었을 때 시윤이가 똥을 쌌다. 자세나 표정, 행동이 딱 똥 쌌을 때랑 같아서 의심 없이 한 쪽으로 데리고 갔다. 기저귀를 들췄는데 똥의 흔적이 없었다.
"시윤아. 똥 쌌다며. 안 쌌는데?"
"쌌는데"
"똥 쌌어?"
"네. 싸떠여"
"그래?"
똥구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시윤이를 닦아주고 왔더니 이번에는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똥 마려워여"
"어, 그래. 가자"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소윤아. 그래도 아빠 쉴 때 마려워서 다행이네"
"그러네여"
하아. 날씨 좋은 날 야외에 있으면 배변 활동이 원활해지고 뭐 그러는 과학적 근거가 있나? 얘네가 밖에만 나오면 왜 그럴까. 소윤이는 그 뒤에도 내가 경기를 뛰고 있는데 이렇게 외쳤다.
"아빠아아아"
"어어어어"
"나와여어어어"
"왜에에에에"
"똥꼬가 간지러워여어어어"
"조금만 기다려어어어"
"아빠아아아. 그냥 나와여어어어어"
"끝나고 나가서 닦아줄게에에에에"
축구를 얻는 대신 똥도 얻었다.
아내는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다시 왔다. 역시나 [맑음케이크]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내는 저녁 먹을 식당 후보 세 곳을 추려왔다. 그중에 한곳을 고르라고 했다. 돈까스 가게를 골랐다. 가봤더니 폐업하고 없어진 식당이었다. 생고기 김치찌개 가게를 골랐다. 주말과 공휴일은 휴무였다. 마지막 남은 한 곳인 차돌박이 가게를 골랐다. 저렴한 차돌박이긴 해도 어쨌든 고기인데다가 내 욕망대로 시켰다가는 가계에 큰 위험을 초래할지도 몰랐다.
배를 채울 수 있는 곁들임 메뉴를 적절히 조합해서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축구장에서 피자를 한 조각씩 먹어서 배가 어느 정도 찬 상태였음에도 꽤 잘 먹었다.
"여보. 얘네 배고플 때 오면 감당 못하겠다"
"응. 그럴 때는 오면 안 되겠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숟가락질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아내는 계속 나더러 충분하게 못 먹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지는 않았다. 애들한테 줬던 밥과 고기 남은 걸 먹었더니 딱 배가 불렀다. 그래도 고깃집을 부지런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불판에 직접 구워 먹는 고깃집에 둘을 데려가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내년 4월까지 시한부라는 거다. 롬이가 나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빠. 오늘은 누구랑 자여?"
"오늘? 엄마랑"
"여보. 여보도 애들 재우기 지겹겠다"
"맞아"
"내일은 내가 재울게"
"그래"
아내는 오늘도 애들과 함께 잠들었다. 오늘은 나도 피곤했다. 책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축구 때문인지 똥 때문인지 오늘도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