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1(월)
어제 그렇게 일찍 잤는데도 아침에 피곤한 건 큰 차이가 없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신체의 유익함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억울한 마음을 달랬다. 소윤이는 요즘 가장 먼저 일어나면 시윤이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르긴 몰라도 은근슬쩍 고의적으로 깨우기도 하는 것 같다.
"시윤아. 일어났어? 누나랑 나갈까?"
그렇게 데리고 가서 잘 놀다가도 꼭 울음 소리가 들린다. 주로 시윤이의 소리다.
"으아아아아앙. 왜그에에에에에에"
"알았어. 알았어. 자. 이거 너 해"
그간의 경험상 꼭 소윤이가 잘못하는 건 아닐 거다. 오히려 강시윤이 억지 쓰는 경우도 많을 거다. 아무튼 덕분에 그때그때 다르긴 해도 조금이나마 아침의 자유를 얻을 때도 있다.
퇴근하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소윤이었다.
"아빠"
"어, 딸내미"
"아빠. 어디에여?"
"어, 지금 가고 있어. 소윤이는?"
"어, 우리는 지금 한살림이에여"
"아, 한실림 갔구나. 한살림 가기 전에는 뭐 했어?"
"한살림 가기 전에여? 어. 뭐했더라"
"매트 커버도 맡기고 왔어?"
"아, 거기 갔는데 안 된다고 해서 실만 받아 왔어여"
"아, 거기서는 못한대?"
"네. 못한대여. 그래서 실만 주셨어여"
"그랬구나. 엄마 좀 바꿔줘"
소윤이하고만 통화해도 꽤 정확한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굳이 아내에게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여보. 우리 오늘 피자스쿨에서 피자 같은 거 먹을래?"
"그럴래? 그래 그럼"
그리하여 오늘도 외식. 아내와 아이들은 여전히 한살림에 있었다. 놀래주려고 숨어 있다가 한살림에서 나오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워"
아내는 깜짝 놀라고 소윤이는 신나서 깔깔댔는데 시윤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뚱한 표정으로 불안한 듯 두리번거렸다.
"시윤이. 왜? 기분 안 좋아?"
"여보. 시윤이 지금"
아내가 대신 대답했다. 뒷말이 없었지만 표정으로 얘기했다. 또 똥이었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마 얼굴은 일그러졌겠지.
"여보. 내가 갔다 올게"
"아니야. 내가 갈게"
아내도 이미 집에서 세 번이나 거사(?)를 치른 뒤였다. 내가 아무리 똥에 진절머리가 난다 한들 아내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꼴이다. 1일 3똥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들 테니 내가 가려고 했다. 시윤이가 협조하지 않았다. 아내가 가겠다고 한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엄마랑 가겠다고 징징댔다. 이 똥징징이가.
아내가 갔다. 아내가 격렬한 운동을 한 듯한 표정과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보. 고생했어"
피자 가게에 들어가서 피자를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똥 마려어여"
그 얘기를 하는 소윤이의 얼굴에 약간의 미안함, 당황함 같은 게 스쳐 지나갔다.
"하아. 왜 그래 진짜. 앉기 전에 얘기 좀 해"
그러면 안 됐는데 나도 모르게 소윤이를 향해 하소연(?)을 분출했다. 똥이 그때 마려운 걸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소윤이는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지만 그 표정에 미묘한 멋쩍음 같은 게 있었다.
"다 싸면 얘기해, 소윤아"
"아빠"
"어?"
"사랑해여"
"그래. 아빠도 소윤이 사랑해"
소윤이가 거기까지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엄마, 아빠도 얼마나 힘들면 저러겠나 하는 마음으로 아내와 나의 실수를 품어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똥에 조금 더 의연하게 대처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라고 아무리 다짐해봤자 하루 삼똥, 사똥을 마주하면 그게 어디 쉽게 되냐는 말이다.)
시윤이는 낮잠도 안 잔 상태였다. 눈에 졸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소윤이도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둘 다 잘 먹었다. 크기만 좀 작게 잘라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들고 먹어서 크게 손이 가지도 않았다.
피자 먹고 나왔는데 소윤이, 시윤이 처치홈스쿨 친구들(같은 아파트)을 만났다. 애고 어른이고 예정에 없이 만나면 다 반갑나 보다. 다들 방방 뛰면서 난리였다. 소윤이는 저녁 먹고 먹겠다며 손에 쥐고 있던 팝콘을 후하게 나눠줬다. 친구 두 명한테 한 주먹씩 넉넉하게 나눠줬고, 유모차에 앉아 있던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시윤이만 빈손이었다.
"누나아아아. 왜 나느으으음 없떠어어어"
시윤이의 칭얼거림을 듣고 나도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그러게. 소윤아. 시윤이만 안 줬네. 시윤이부터 줬어야지"
서로 떠드느라 굉장히 혼란스럽고 시끄러웠지만 난 소윤이가 흘리듯 내뱉은 한마디를 들었다.
"시윤아. 넌 그냥 꺼내 먹으면 되지"
시윤이에게는 나름 특권을 준 거였다. 아마 소윤이는 요즘 이런 수많은 오해 속에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샤워를 시켜줬다. 내일 처치홈스쿨에도 가야 하니까.
"아빠. 오늘은 누구랑 자여?"
"아빠랑"
"왜여?"
"뭘 왜야. 아빠랑도 자는 거지. 어제 미리 말해줬잖아"
"아아아아. 엄마라아앙"
"시윤아. 오늘은 아무리 울고 떼써도 아빠랑 잘 거야. 그만 징징거려"
소윤이와 시윤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둘 다 금방 잠들었는데도 그 새를 못 참고 나도 몇 번이나 잠들 뻔했다. 겨우 살아서 나왔다. 좀 집중할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노트북을 싸 들고 카페에 갔다. 한 두 시간쯤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거실에 소윤이가 대자로 누워 있었다.
"뭐야?"
"목마르다고 둘 다 깼어"
그러고 보니 안방에는 시윤이가 깨서 앉아 있었다. 나의 귀가와 함게 아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랑 아빠 떼어놓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이 녀석들.